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말 Dec 18. 2022

그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그가 싫다는 사실은 감정적으로는 너무나 분명하다. 하지만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잘 설명을 할 수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이혼하려는 이유와 그가 싫은 이유를 말하려고 하면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된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쌓인 빅데이터와 나의 직감, 판단 같은 것들을 어떻게 타인에게 단시간에 전달할 수 있을까. 애써 말을 뱉는다고 해도 그것이 나의 생각을 10%도 반영하지 못하는 듯하다.


  친한 친구나 가족들에게도 단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뿐 내가 느끼는 것을 그대로 전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엄마와 다툼을 하기도 했다. 내가 더 이상 그를 상대해주지 않고 피하자 그는 나의 부모님께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힘들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나와 친정부모님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왜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계시느냐고, 어떻게 그러실 수 있냐고 따지는 건 물론이고 자신의 결혼생활이 파탄난 것이 장인 장모님 때문이라고 궤변을 늘어놓아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나는 엄마에게 그와 연락을 끊으라고 했다. 더 이상 전화도 받지 말고 메시지가 와도 답장을 하지 말아 달라고. 그게 나를 도와주는 일이라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엄마는 알았다고 대답하고선 또다시 그의 전화를 받고 메시지에 다정하게 답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가 그렇게 하니까 아직 그가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 엄마한테 연락을 하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연락 자체가 나중에 소송했을 때 나에게 불리한 증거가 될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나와 그가 화해를 하고 다시 사이가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확실했기에 엄마를 설득해야 했다. 실제로 엄마가 그의 연락을 모두 차단하기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나는 엄마에게 거의 울부짖듯 애원한 적도 있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렵냐고, 왜 날 이해하지 못하냐고 묻고 또 물었다. 이처럼 내가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도 온전히 내 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아빠가 엄마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그의 실체를 파악하신 것이다. 연락도 단호하게 끊어내셨다. 내 상황을 그나마 제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아빠였다.


  이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마음먹기도 어렵지만 소송을 통해 이혼해야 하는 경우 변호사 선임부터 증거 확보, 소장과 준비서면 작성 등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아무도 내 상황을 나보다 더 잘 알지는 못하기에 내가 직접 소송의 모든 과정에 관여해야 하고 고통스러운 지난 기억을 수도 없이 헤집어야 한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 이러한 일들을 챙기려면 상상 이상의 체력과 강심장이 필요하다. 그래서 내가 첫 번째 소송을 그렇게 쉽게 포기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다 귀찮고 힘들었다. 현실이 힘들고 시궁창 같더라도 그냥 안주해버리고 싶었다. 더 나빠지지는 않을 거라고 합리화했다. 바닥을 찍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


  나는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어느새 매사에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 척했지만 나는 그의 평가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것이 합리적이든 그렇지 않든. 책잡히고 싶지 않아서 내 힘에 부치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해내려고 노력했고 그가 나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더욱 똑똑하고 냉정해지려고 했다. 보이지 않는 눈이 나를 감시하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긴장하며 사는 것이 하나도 즐겁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실험실의 쥐가 전기 충격 같은 스트레스 요인을 피하는 것처럼 나는 필사적으로 나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그렇게 아등바등하는 동안 피해를 보는 것은 아이였다.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아이의 사소한 행동에도 화가 많이 나곤 했다. 조용히 타이르고 끝날 일도 크게 야단쳤고 아이는 주눅이 들었다. 나와 그의 사이가 좋지 않으면 아이는 중간에서 눈치를 봐야 했다. 아이는 싸움을 말리려고 애쓰기도 하고 나를 위로하려고도 했다. 생존본능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내가 배우자를 잘못 고른 탓에 아이가 고통받는 것이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첫 번째 소송을 취하하고 난 시점부터 집을 나오기 전까지의 시기에 쓴 일기를 보면 '그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고 쓴 적이 많다. 그만큼 그와 마주치는 것이 싫었고 그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몸서리쳐지게 끔찍했다. 하지만 내 상황을 어느 누구에게도 정확하게 설명하기 힘들다는 사실이 나를 정말 외롭고 힘들게 만들었다. 나 스스로도 내가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고통은 내 스스로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강한 의지와 노력이 없으면 끝나지 않을 것임이 분명했다. 이렇게 살다간 내가 죽거나 내가 누굴 죽이거나 할 것 같았다. 나는 그를 지독하게 혐오하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괴로운 상황에 놓였는지, 또한 내가   상황을 벗어날  없는지 이유를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있을  같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든 건지  정체를 알아야 했다. 내가 잘못된 건지 그가 잘못된 건지, 내가 혹시 원인이 아니라면 그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는 어떤 사람인지, 혹시 괴물이면 어떤 종류의 괴물인지. 나는 그때부터 심리학 관련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을 피하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