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눈을 떴다. 어젯밤 끊임없는 피로감에 일찍 눈을 감은 탓에 평소보다 1시간이나 일찍 눈을 떠버렸다. 다시 눈을 감으면 더 잘 수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침대에서 얼른 몸을 떼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스트레칭을 하며 찌뿌둥한 몸을 풀고 간단하게 샤워를 마쳤다. 여전히 출근 시간까지는 1시간 30분의 여유가 있어 컴퓨터를 켰다. 화근이었다.
할 일 없이 포털 사이트의 뉴스들을 읽다 얼마 전 있었던 서울의 거리에서 일어난 참변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기사만 읽었어야 할 것을 댓글창까지 스크롤을 내렸고, 그게 하루의 시작을 짓눌렀다. 아무래도 뭔가가 단단히 이상하게 흐르고 있었다. 아주 단단히.
생각을 환기하고 싶어 창문을 열었다. LP장에 들어있는 레코드판 중 하나를 턴테이블에 올려뒀다. 쳇 베이커의 'Sings'였다. 바늘은 내 복잡한 머릿속과 달리 직관적이게 레코드판을 긁어나갔다. 그 진동은 스피커로 증폭돼 내게 쳇 베이커의 음성을 또렷하게 전달했다. 부드럽게 음을 따라 내뱉는 그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무엇이 와도 깨부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생각의 증폭은 멈추지 않았다. 쳇 베이커의 음악을 들으며 그의 죽음을 떠올렸다. 59세의 나이로, 암스테르담의 호텔 앞 거리에서 삶을 마감한 채 발견된 한 사람의 모습. 나는 실제로 그것을 목격하지 않았고, 글로만 읽었지만 또렷하게 이미지를 떠올렸다. 내게만 존재하는 이미지. 내가 상상한 것뿐인 그의 마지막. 단단하게 존재할 것만 같았던 한 존재의 끝.
오래전에 만났던 연인이 내게 남긴 말이었나. "세상 근심은 혼자 떠받들고 있는 것 같다"였는데, 확실한가. 그저 내가 혼자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일까. 분명 내게 그 이미지는 또렷한데, 그렇기에 그녀가 했던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 말. 어쩌면 지금 내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인 것 같은, 그 순간의 언어가 내게 다가왔다.
장맛비가 여전히 추적추적 아스팔트 위를 흘러 군중처럼 떼를 지어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떠올린 내가 누군가의 마지막을 두고 떠들어대는 여느 군중과 다를 바 있나. 나 역시 저 내리는 비 중에 한 방울일 뿐일 텐데라는 생각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창문은 열려 있지만, 그 밖으로 내 생각은 빠져나가지 못했다.
당시 여자친구가 내게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뭐라고 했을까. 왜 그 말은 기억나는데 내 대답은 기억나지 않을까. 어쩌면 실없이 농담으로 대답했을까 싶어, 그 농담이라도 떠올리려 했는데 머릿속에서 도통 어떤 실마리도 잡을 수 없었다. 그 순간의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누군가의 슬픔을 삼켰는데, 내뱉을 수 없어 우울로 소화했다. 누군가의 분노도 삼켰지만, 그것 역시 입 안에서 우물거리다 꿀꺽 삼켜버렸다. 아주 단단할 것 같은 것들도 입속에서 씹다 보니 그렇게 단단하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결국 소화가 되는 것일까. 출근 시간이 다가왔다. 이미 재생이 끝난 자동 턴테이블에서 레코드판을 꺼내 케이스에 고스란히 넣어뒀다. 다시 반복되는 하루의 일상이다. 분명 무언가를 잃었고, 무언가를 느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