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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나라는, <뉴스룸>(2012)

by 안태현


2012년, 미국은 또 한 번의 대선을 앞두고 있었다. 대결에 나서는 이는 버락 오바마와 밋 롬니. 버락 오바마는 재선을, 밋 롬니는 정권 교체라는 각자의 위대한 업적을 세우기 위해 날을 세우고 맞붙었다. 이 시기, 대한민국 역시 대선 격전지였다. 당시 새누리당의 박근혜와 민주통합당의 문재인이 양립한 것. 두 선거의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이러한 국내외 격변의 정세 속에서, 미국에서는 하나의 드라마가 등장했다. HBO <뉴스룸>이다.


<뉴스룸>의 첫 장면은 그 유명한 “왜 미국이 가장 위대한 국가인가”라는 한 대학생의 질문이 장식한다. 뒤를 따라오는 답변은 윌 맥어보이(제프 다니엘스 분)의 “미국은 더 이상 위대한 국가가 아니다”였다. 이 충격적인 발언으로 포문을 연 <뉴스룸>이 얼마나 발칙한 이야기를 그려낼지는 당시 나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하지만 <뉴스룸>의 이야기는 지지부진했다. 이 표현이 <뉴스룸> 자체가 지루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란 걸 알아줬으면 한다. 내가 얘기하고자 한 부분은 드라마 속에서 인물들이 펼치는 지지부진함이었다. 극 자체는 흥미롭다. 실제로 벌어졌던 멕시코 만 석유 유출사태와 애리조나 총기난사 사건 등이 등장하고, 제목이 <뉴스룸>인 만큼 이 사건들을 취재하고 보도하는 언론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내가 이들처럼 언론인이 될지는 아무도 몰랐던 때였기에, 나는 <뉴스룸>의 이야기를 보면서 기자들은 참 힘들게도 산다라고 생각했다. 단순한 사건 하나 보도하는 데에도 계속해서 사실 확인 작업을 이어가고, 이미 그게 공식화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꼬투리를 잡고 ‘이것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묻는다. 윌 맥어보이를 비롯해 그가 진행하는 ‘뉴스 나이트’의 총괄 프로듀서 매켄지 맥헤일(에밀리 모티머 분), 수석 프로듀서 제임스 하퍼(존 갤러거 주니어 분), ACN 뉴스 국장 찰리 스키너(샘 워터스톤 분) 등 모두가 그랬다.


HBO <뉴스룸>


드라마의 소개를 하자면, 이게 다다. <뉴스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무엇이 진실인가?’보다 ‘무엇이 사실인가?’를 중시한다. 사실과 사실이 겹쳐지면 결국 진실의 윤곽이 드러난다는 신념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로맨스도 존재한다. 과거에는 전도유망한 앵커였으나 매켄지와의 이별 후 그저 그런 가십이나 씹어대는 앵커가 된 윌. 그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자는 찰리의 말과 함께 전 연인 매켄지를 자신의 프로그램 총괄 프로듀서로 맞으면서 재회하게 된다. 과거 연애사에서 큰 문제가 있었던 건지, 사이는 껄끄럽다. 그래서 뉴스를 진행하면서도 두 사람은 끝나지 않은 과거 연애사를 들먹이며 싸우기 일쑤다.


이들 밑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뉴스 나이트’의 전임 EP 돈 키퍼(토머스 새도스키 분)와 연애 중인 마거릿 매기 조던(앨리슨 필 분)은 돈의 바람 이후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고, 수석 프로듀서 존과 새로운 썸을 타게 된다. 언론인들의 취재 열기보다 더 뜨거운 이들의 연애사를 들여다보는 것도 재밌는 포인트다.


따지고 보면 언론인들의 참 단순한 이야기를 다뤘다고 생각하겠지만, <뉴스룸>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앞서 등장했던 “미국은 더 이상 위대한 나라가 아니다”라는 결과를 도출한 윌 맥어보이의 생각에 대해 말해야 한다. 윌 맥어보이가 결과의 이유로 댄 말을 글로 옮기기 너무 길기에, 내 방식대로 줄여보자면 이렇다. ‘미국도 과거에는 정의와 도덕, 신념을 위해 투쟁하면서 위대한 업적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올바른 정보도 없고, 지성을 열망하지도 않으며, 지난 선거에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로 사람을 평가하며, 쉽게 겁을 먹기 때문에 미국은 더 이상 위대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우선되는 방법은 문제를 인식하는 것부터”라는 단서를 붙인다.


당시 대학생 2학년이던 나는 이런 윌의 이야기에 제대로 경도됐다. 정치와 관련된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었던 당시의 나이기도 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 문장이 과거형이라는 건 지금의 나를 이야기해주는 슬픈 설명이기도 하다. 이 문장의 문제는 제쳐두고, ‘정치적’이라는 전혀 다른 차원에 있는 단어의 문제를 끌어와야 하겠다. ‘정치적’은 사전적으로 ‘정치와 관련된 것’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그렇다면 정치는 무엇인가. 간단하게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다. ‘정치적’이라는 건, 결국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관련된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HBO <뉴스룸>


하지만 이러한 말의 뜻과 달리, 지금의 사회에서 ‘정치적’이라는 건 터부가 됐다. 공인이라면 정치적 발언을 삼가야 하고, 선생이라면 학생들에게 정치적 의견을 전달해서 안 되고, 언론도 정치적인 자세를 취하면 안 된다는 거다. 하지만 이건 단어의 오용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건 하나의 의견에만 치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단어가 오용되면서 정치 자체에 대한 혐오가 생겨버렸다.


이러한 나의 생각이 나왔으니, <뉴스룸> 시즌1의 마지막 대사가 등장할 때다. 윌이 뉴스 클로징 멘트에서 한 “티 파티는 미국의 탈레반이다”라는 발언이다. 미국의 강경 보수주의 단체인 티 파티가 결국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탈레반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윌의 의견이었다. 이 폭탄 발언은 극 중 상황을 넘어, 현실에서도 커다란 담론으로 형성되며 미국 사회를 뒤흔들어 놓았다. 그 이유는 이것이 극단과 극단은 다를 바 없다는 원론적인 정설을 언급한 것이기도 하지만,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립이 강력하게 펼쳐지고 있는 미국의 정치 상황에서 민주당의 편만 든 의견이라는 비판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윌의 발언은 편향된 의견이었을까. 그렇다면 지금은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으니 바쁜 윌을 대신해 내가 변론해본다. 언론은 원래 비판을 해야 하는 사회적 위치에 있다. 윌이 티 파티를 비판했을 때도 충분히 이를 뒷받침할 근거들이 존재했다. 그래서 그는 당당하게 그렇게 외칠 수 있었던 거다. 이 비판을 편향된 의견이라고 치부한다면, 사회는 위대하게 나아갈 수 없다.


<뉴스룸>이 과감하게 이 대사를 시즌1의 마지막으로 장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윌의 말은 편향된 의견이 아닌 그의 비판이다’라는 걸 표현한 거다. 하지만 이 대사가 미국 사회에서 큰 폭풍을 불고 왔다는 건, 이러한 견해 역시나 작가 아론 소킨의 편향된 의견이라는 지지부진한 싸움이 벌어졌다는 걸 암시한다.


이런 지리한 싸움 가운데에서 <뉴스룸>은 윌이 시즌1 첫 번째 장면에서 했던 대사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미국은 더 이상 위대한 나라가 아니다”라는 대사가 아닌 그가 붙인 단서인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우선되는 방법은 문제를 인식하는 것부터”라는 말. <뉴스룸>은 단지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 사회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의 단면을 보여준다.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정치면 기사의 댓글들, 양극단으로 갈라져 싸우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현실 같은 것들. 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다. 바로 이게 문제라는 걸 인식하는 거다.


그런데 과연 많은 사람들은 이게 문제라는 걸 인식하고 있을까. 여기서 나는 떠올린다. ‘위대한 나라’를 만드는 건 문제를 인식한 ‘위대한 나’라는 것. <뉴스룸> 속 수많은 인물들이 ‘단순 사실의 전달’이 아닌 사실들의 기나긴 대립에서 드러나지는 진실의 윤곽에 집착했듯이, 나 역시 일단 현실의 문제를 인식해야 한다. 싸우고 있는 사실을 그냥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내가 받아들인 사실들이 나의 안에서 싸우도록 해야 한다.


HBO <뉴스룸>


사실과 사실이 싸워야하지, 사실을 가지고 사람이 싸우면 그건 풀지 못하는 자존심 대결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오용해 말하는 ‘정치적’인 문제이든, 당장에 양극화된 사람들의 정치적 견해이든 뭐든, 이게 올바른 방식이 아닌 잘못된 방식으로 싸우고 있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건 인식하면서부터 바꿔질 수 있다.


이 시기 양극화 됐던 대한민국 사회는 지금도 두 개의 이념으로 갈라져 서로 싸우고 있다. 화합을 상징하는 광장이지만, 지금의 광화문 광장은 서로 다른 목소리가 어떻게든 서로를 이겨 먹겠다고 지르는 괴성으로 가득 차 있다. 여유를 즐기려 주말 광화문으로 나가면 시끄러운 앰프 소리 탓에 고막이 찢어질 지경이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란, 과연 ‘저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인가?’였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위해서 나라의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 과연 무엇을 다스리고 있는 것일까.


그들의 구호는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가 대다수다. 그러면서 반대 세력 때문에 무너지고 있다고 외친다. 하지만 광장에 사람들이 올바르게 모이지 못하는 건 그 구호의 시끄러움 때문이다. 일단 조그맣게 외쳐도 들을 사람은 듣는다. 오히려 시끄러운 앰프에 표정을 찡그리지 않고, 더 그들의 가까이에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싸우려는 태도를 가진 사람의 이야기는 원래 듣고 싶지 않은 법이다.


2012년의 나 역시 광장에 나가서 소리를 질렀던 때가 있었다. 그 시기의 나를 돌아보자면 꽤 날카로웠다. 나의 의견을 듣지 않는 사람이란, 무식한 사람이었고, 세상살이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욱 시끄럽게 외쳐댔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 외침에 반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당시 내가 외쳤던 구호도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였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대한민국은 무너지지 않았다. 언제쯤 대한민국은 무너질까. 어쩌면 우리는 ‘무너지고 있다.’라고 외치면서 무너지는 걸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결국 잘못된 방식이다. 우리의 싸움은 적 세력을 규정지으려 한다. 하지만 <뉴스룸>이 던져준 위대한 메시지는 끊임없이 자신의 내부에서 싸움을 일으키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의 내부에서 사실과 사실로 싸우면, 외부와 싸울 힘은 약해진다. 그리고 더욱 단단해진 내면을 갖출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나온 이야기만이 진정한 칼이 된다. 악 지르는 소리 보다 중후한 목소리가 더욱 설득력 있듯이, 싸우고자 들이대면 싸움 밖에 나지 않는다. 그래서 <뉴스룸>은 말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우선되는 방법은 문제를 인식하는 것부터”라고. 싸우는 방식이 잘못됐다면 이제 그 싸우는 방식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 해답은 결국 가까운 데에 있다. 다시 나에게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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