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던 집에서 먼 거리에 위치한 대학에 진학한 스무 살의 나는 자취방을 구했다. 아마 그게 내 ‘혼밥’ 역사의 시작이었으리라.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밥을 먹거나 가족들과 식사를 챙겼다. 하지만 당장 ‘혼자’ 살아야 하는 삶에서 나는 ‘혼밥’해야만 하는 사람이 됐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지. 대개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혼자 키득키득 웃으면서 나는 혼밥을 즐겼다.
그리고 2012년 나는 군대에 가게 됐다. 하지만 어린 시절 앓았던 기흉의 여파로 나는 군에서 공익근무 ‘에이전트’(요원)라는 특수한 직책을 맡게 됐다. 현역을 가지 않았고, 덕분에 난 한 복지관에 잠입해 요원의 신분으로 출퇴근을 할 수 있었다. 이 뜻이란 따뜻한 집밥을 복무 내내 먹을 수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공익 월급이 너무 부족해서 집에서 밥이나 축내고 있는 나 자신이 처량하기도 했다. 겸직을 하는 요건이 까다로웠기에 꿈도 꾸지 못했고, 밖에 나와 있는 대신에 가난하게 살기를 실천해야만 했다. 그래도 집밥 먹는다는 걸 행복해하던 그 해, 내 나이 스무세 살이었다.
공익근무의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었기에, 매번 부모님의 시간에 맞춰 밥을 먹을 수는 없었다. 밖에서 밥을 사 먹는 일도 많았는데 앞서도 말했듯이 부족한 에이전트의 월급으로 비싼 음식을 먹는 거란 언감생심이었다. 그래도 소일거리를 해서 조금의 돈을 벌 때는 혼자서 사치스럽게 만원이 넘는 외식을 감행하기도 했다.
이미 자취 2년의 공력이 있었던 나에게 혼밥은 일도 아니었다. 혼자 먹는 것에만 집중하면 10분 안에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물론, 배만 채울 수 있었다. 정적은 스마트폰에 틀어둔 예능 프로그램으로 채웠다. 그때 당시 밥을 먹을 때면 항상 MBC <무한도전>을 틀어뒀다. 지금도 가끔씩 혼밥을 할 때 <무한도전>을 밥 친구처럼 틀어두는데, 덕분에 <무한도전>의 모든 에피소드를 달달 외울 정도의 지식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배와 정적을 채울 수 있었을 뿐, 밥을 먹으면서 마음까지를 채울 수는 없었다. 혼자 먹는 건 대충 식사를 때운다는 성격이 강했고, 함께 먹을 때만큼의 ‘식사 흥’을 낼 수 없었다. ‘같이 먹는다는 것’. 이 중요함에 대한 욕심이 강해질 때 만난 드라마가 tvN <식샤를 합시다>였다.
<식샤를 합시다>의 주인공은 보험 설계사 구대영(윤두준 분)이다. 드라마 이름과 똑같은 ‘식샤를 합시다’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운영 중인 구대영은 밥 먹는 것에 있어서는 자신만의 철학이 확고한 인물이다. 블로그 이름부터가 식사였으니, 구대영에게 식사가 가지는 의미는 컸다. 그래서 구대영은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밥을 먹으면서 회복하려 하고, 일상의 피곤함 역시 밥을 먹으면서 풀려고 한다. 그에게 식사는 삶의 목표였고, 삶을 이어갈 수단이기도 했다. 그런 구대영이 옆집 여자들과 우연한 기회로 엮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 <식샤를 합시다>의 메인스토리다. 여자와 남자만 있으면 로맨스를 만들어내는 한국 드라마의 힘은 식사 앞에서도 로맨스를 소환했다.
구대영과 엮이게 되는 두 여자는 805호의 이수경(이수경 분)과 804호 윤진이(윤소희 분)다. 두 사람 모두 구대영과 똑같은 1인 가구다. 하지만 구대영과 살아가는 방식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어떻게든 해 먹거나, 좋은 음식을 시켜 먹거나 하면서 삶의 활력을 채우는 구대영과 달리 두 사람에게 식사란 대충 때우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수경도 먹는 걸 좋아한다. 이혼 전에는 맛있게 밥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이혼 후에 혼자 살게 되면서 이수경에게 ‘혼자 먹는 일’은 그저 식욕을 채우기 위한 일이 됐다. 구대영의 블로그를 열렬하게 애정하면서 넘치는 식욕을 자제하면서 집에서는 김밥이나 먹는 비루한 삶을 산다. ‘혼밥’하는 것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서 누구와 함께 먹는 일에만 집중한다. 윤진이는 또 다르다. 금수저 출신이었지만 아버지의 회사가 부도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그런데도 천성이 밝다. 예전만큼 돈을 못 쓰더라도 윤진이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분수에 맞는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집안일은 젬병이다. 어린 시절부터 누가 해주는 밥을 먹고, 누가 치워주는 집에서 살았던 윤진이는 집안일 앞에서는 낙천적이지 못하다.
이처럼 답답한 삶을 살아가는 두 사람 앞에 구대영이 나타난다. 보험 판매왕이 될 만큼, 일머리가 좋고, 성격도 싹싹한 구대영. 그런 만큼 오지랖도 심해서 구대영은 시종일관 이수경과 윤진이의 삶에 참견해 댄다. 로맨스가 들어간다고 했으니, 이 두 사람과 엮이는 건 시간문제다. 특히 한국 드라마에서 ‘홍반장’ 캐릭터들은 늘 ‘인기는 있는데, 자기는 몰라’ 같은 설정을 가지고 있어서, 그 매력이 극대화되지 않나. 구대영 역시 마찬가지다. 매력은 9점인데 눈치는 0점이다. 그래서 이름이 9대0인 걸까. 하여튼 이수경과 윤진이는 구대영과 엮이게 되면서 그의 ‘식사 철학’까지 배우게 된다. 이제 이들도 구대영처럼 먹는 게 일이 아닌 먹는 일 자체의 기쁨을 느끼게 되는 거다.
그러면서 <식샤를 합시다>의 내용은 열심히 삶을 살아가지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인물들이 밥을 먹으면서 성장한다는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다루게 된다. 구대영을 중심으로 ‘식사’를 하는 내용이 담기면서, 다양한 음식들이 소개되고, 그 과정에서 이 음식들을 주제로 하는 에피소드들이 펼쳐진다. 덕분에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먹방’의 향연이 펼쳐진다. 특히나 구대영 역을 연기하는 윤두준의 먹는 연기란, 자연스럽게 침샘이 자극된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나 역시 꽤 많은 식욕을 느꼈다. 드라마를 보다가 출출함이 느껴지면,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이라도 꺼내 혀를 안정시켰다. 그 덕분에 드라마를 보면서 시청률 대신에 체중계 속 내 몸무게 수치가 늘어나는 걸 아주 잘 느낄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식샤를 합시다>를 보면서 나 역시 함께 식사를 했다. <무한도전> 대신에 나의 혼밥을 함께 했던 때도 여러 번이었다. 느긋하게 드라마를 보면서 등장인물들의 템포에 맞춰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극 중 인물들이 삶에서 느낀 애환에 공감하기도 했으며, 그들의 성장을 통해 위로를 얻기도 했다. 혼자 밥을 먹고 있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극 중 인물들이나 나나 ‘혼밥’을 하지만 다른 의미로 ‘함께 먹는 것’의 가치가 생겨나는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한자어로 된 말은 꼭 어원을 따지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식사’의 한자도 풀이해 보겠다. ‘식사’(食事)는 ‘먹을 식’과 ‘일 사’를 함께 쓰는 단어다. 한자 그대로 말하자면 ‘먹는 일’이다. 먹는 것도 하나의 노동이라는 의미이겠다. 그리고 이런 노동을 같이 하는 이들이 바로 식구(食口)다. ‘끼니를 먹는 입’이라는 표현처럼 사전적 의미도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다. 사전적 의미는 그렇겠지만 한자 그대로 보자면 함께 먹으면 그 자체로 ‘식구’인 법이다. <식샤를 합시다> 속 인물들도 각자의 집에서 1인 가구로 살아가지만, 함께 밥을 먹고, 웃고, 울면서 ‘식구’가 된다. 단순히 집에 같이 사는 ‘가족’(家族)은 될 수 없을지 몰라도 이들은 ‘식구’로서 하나의 연대를 형성한다.
최근 1인 가구의 비중이 늘어가고 있다. 고독사 비율도 그만큼 늘어가고 있단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벌어먹고 사는 일에 쫓겨 ‘먹고사는’ 일을 까먹는 걸까. 어쩌면 너무 혼자 먹다 보니깐, ‘먹고사는’ 것의 의미 자체를 잊고 있는 거 아닐까. 같이 먹는다면, 무엇을 먹을지 함께 고민하고, 어떻게 먹을지 함께 고민하게 될 텐데, 혼자 먹다 보니깐 그냥 허기 채우기에 급급한 거다. 그래서 진짜 필요한 마음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는다. 혼밥을 자주 즐기는 나 역시 그러할 것인데 혼밥을 즐기지 못하고, 그저 일처럼 느끼는 이들의 애환은 더 클 거다.
이런 슬픈 현실의 상황 속, <식샤를 합시다>는 혼자 먹더라도 왜 잘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 얘기한다. ‘먹는 일’에 대한 의미를 채우다 보면 ‘사는 일’의 의미도 찾을 수 있다는 게 드라마가 전하고자 하는 바다.
그래서 <식샤를 합시다>를 보고 난 뒤, 나는 혼밥을 하더라도 잘 먹기 위해 노력했다. 시켜 먹더라도 일회용 그릇에 담긴 음식을 먹지 않고, 예쁜 그릇에 음식을 담고 먹었다. 그 사소한 행동이 나의 먹고사는 삶에 윤택함과 의미를 선물해 준다고 믿었다. ‘나는 비루하지 않다’라고 세뇌하는 행동이기도 하지만, 세뇌가 일상이 되면 그것이 삶이 되는 법이다.
자취 생활이 오래된 지금은 혼자 먹더라도 최대한 직접 요리를 해서 먹으려는 편이다. 뭘 만들지 고민하고, 어떻게 만들지를 생각하다 보면 당장 허기를 채우는 음식도 삶에서 큰 의미를 가지게 된다. 특히 나의 고민이 녹아들어 간 음식은 편의점에서 5000원 주고 사온 도시락 보다 훨씬 따뜻하다. 그 따뜻함을 먹다 보면 내 삶에도 온기가 서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조금은 귀찮을지 몰라도, 내가 만든 음식이 생각보다 맛있게 만들어지면 그것도 하나의 성취감으로 이어졌다. 힘든 일에 지쳐서 집에 돌아왔는데, 그런 성취감을 느끼면서 내일을 살아가는 힘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됐다.
이런 일련의 삶을 살아가면서 내게 ‘먹는 일’은 ‘벌어먹고 사는 일’ 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됐다. 음식의 재료를 사기 위해 돈을 벌고, 먹기 위해 요리를 한다. 먹으면서는 사는 것의 의미를 곱씹는다. 다 먹고 소화를 시키면서는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이러한 ‘먹는 일’ 메커니즘 덕분에 내가 누군가에게 요리를 대접하는 일도 꽤 큰 의미를 가지게 됐다. 내가 만든 음식을 내어준다는 건, 내가 ‘벌어먹기 위해 노력한 삶’의 일부를 내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소중한 사람에게는 내가 만든 음식을 꼭 내어주고 싶어 진다.
음식 안에는 내 인생이 담겨 있고, 음식을 나눠 먹는 건 내 인생철학을 공유하는 일이기도 하다. ‘식사’를 통해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것. 이게 내가 <식샤를 합시다> 속 구대영에게 배운 ‘식사’ 철학이었다.
<식샤를 합시다>가 시즌3까지 이어지는 동안, 나 역시 수많은 변화를 맞았다. 요원에서 다시 학생이 됐으며, 직장인이 됐다. 그동안에도 나는 쉴 틈 없이 먹었다. 욕도 먹었고, 나이도 먹었고, 고생도 밥 먹듯 했다. 그러면서 사는 것의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 발악했다. 그리고 발악 속에서 휴식을 찾으려고도 했다. 그 반복은 물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 반복 속에서 나는 버티고, 성장하고 끊임없이 나아가려 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먹기 위해서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다. 일단 뭐든 먹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다들 잘 먹고살까. 잘 먹어야 할 텐데, 잘 살아야 할 텐데를 생각한다. 나만 잘 먹고 잘 산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다. 결국 먹는 건 ‘함께’해야 의미가 있다. 혼자 먹더라도 함께를 생각한다면, 그 자체로도 꽤 많은 영양분을 섭취하는 일이라고 난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식샤를 합시다>를 되돌아보며 차곡차곡 소화돼 내 마음을 배부르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