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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나가다, <미생>(2014)

by 안태현

2014년은 떠올리면 가슴 한 구석이 쿵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든다. 그해 4월 있었던 세월호 사건이 여전히 사회의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이유 때문이다. 당시 나는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 중이었다. 출근을 하고 뉴스를 보는데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이 뉴스를 통해 전해졌다.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인가 싶었다. 그러다 한 시간이 지났을 때인가, 뉴스에서는 다행히 배에 타고 있던 모두가 안전하게 구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뉴스를 같이 보던 근무지의 직원들과 다른 공익근무요원들이 마음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그건 30분도 채 되지 않아 번복됐다. 전원 구출은 오보였고, 너무 많은 생명들이 차가운 바닷물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처참히 스러져갔다. 이후 TV를 틀면 계속해서 세월호 참사의 이야기가 계속됐다. 침몰 당시 희생자의 휴대폰으로 찍은 영상들이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됐고, 실시간으로 세월호가 침몰되고 있는 모습이 24시간 TV에서 흘러나왔다. 구조 작업을 하는 모습도 계속해 생중계 됐다. 우리 모두 안타까워하면서 조금이나마 희생자가 더 나오지 않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희생자의 수는 줄지 않았다.


모든 공식적인 구조 작업이 끝이 난 후 사회에서는 세월호 침몰의 원인, 침몰 후 구조 단계에서의 문제점 지적 등의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 그때의 참사를 언급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터부가 됐다. ‘세월호를 기억하자’라는 말은 편향된 의견으로 치부받았고, 함부로 꺼낼 수도 없는 얘기가 됐다. 세월호는 정말 이제 그만 기억해야 하는 일이 됐을까. 이 고민을 거듭하다 이때의 드라마로는 꼭 tvN <미생> 얘기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바둑에는 ‘집’이라는 용어가 있다. 바둑돌로 공간을 에워싸서 영역을 만들었을 때를 말한다. 돌을 말로 친다면 이 말들이 집을 만든다. ‘미생’은 확고한 집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나, 그래서 말들의 사활이 불분명할 때 쓴다. 반대말인 ‘완생’은 어떻게든 집을 만들고, 상대가 내 영역을 침범하지 못할 만큼 확고하게 자리 잡았을 때를 이르는 용어다. 드라마 <미생>은 그 단어의 뜻처럼, 아직 사활(죽거나 살거나)의 문제가 확실하게 자리 잡지 않은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다.


<미생>은 윤태호 작가의 만화를 영상화한 작품으로, 만화와 드라마 모두 큰 사랑을 받으면서 당시 대한민국에는 ‘<미생> 신드롬’이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 직장인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기도 했거니와, 그 속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우리네 인생을 공감 가득하게 그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미생.jpg tvN <미생>


<미생>의 주인공은 장그래(임시완 분)다. 어린 시절, 프로 바둑 기사를 꿈꾸면서 바둑만 두고 살아왔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에는 불안정해진 가정 사정 탓에 꿈을 포기한다. 이후의 장그래는 번듯한 직장 하나 잡지 못하고, 변변찮은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간다. 이미 한 번 꿈을 포기했던 장그래에게, 꿈이란 사치 그 이상도 아니었다. 그러던 중, 장그래는 한 후원자의 소개로 대기업인 원 인터내셔널의 인턴이 된다. 하지만 다른 인턴들에게도, 상급자들에게도 장그래는 ‘낙하산’ 인턴일 뿐이다. 좋은 대학 출신도 아니고, 좋은 스펙을 가진 것도 아닌 그에게 사회의 시선은 차가울 수밖에 없다. 당장 자신은 열심히 대기업 입사를 위해 노력해 왔는데, 바둑만 평생 둬 왔던 누군가가 나의 노력을 부정하는 느낌을 주면서 등장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 속, 장그래는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다. 바둑을 두면서 배웠던 삶의 지식들을 동원해서 원 인터내셔널에서 ‘미생’이 아닌 ‘완생’으로 거듭나려고 한다. 하지만 노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됐다면, 이 사회는 누구나 살아남을 수 있는 유토피아와 다름없었을 거다. 인턴들의 시기 질투는 계속되고, 다른 인턴들이 정직원으로 전환되는 상황에서도, 장그래는 좋은 실적을 냈지만 2년 계약직으로 밖에 회사에 남지 못했다.


그래도 장그래는 끝까지 완생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가끔씩 실수는 하더라도, 시스템에 순응하면서 살아왔던 이들과 달리, 시스템 밖에서 살았던 사람의 눈으로 원 인터내셔널 속 문제들을 바꿔 나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밝혀지는 건, ‘완생’인 줄만 알았던 원 인터내셔널 속 사람들도 모두 ‘미생’의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장그래의 멘토였던 김동식(김대명 분) 대리, 그를 이끌어줬던 최고의 존재 오상식(이성민 분) 차장을 비롯해 장그래의 입사 동기 장백기(강하늘 분), 안영이(강소라 분), 한석율(변요한 분) 등 모두가 그랬다. 특히나 원 인터내셔널의 전무이자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기세를 펼쳤던 최영후(이경영 분)도 한낱 미생에 불과했음이 극 후반부에 그려지면서 <미생>은 과연 완생의 삶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만든다. 죽을 때까지 죽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삶이 진정 우리 생의 숙명일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거다.


B120144130_photogroup_1667984564425.jpg tvN <미생>


다시 바둑으로 돌아와서 그 생각의 답을 내리자면 ‘그렇다’다. 인생을 바둑 한 판으로 비유해 본다. 우리는 바둑이 끝날 때까지 사활을 반복하고, 집 만들기를 반복하고, 미생의 삶을 이어간다. 이 싸움이 끝나려면 바둑을 끝내야 한다. 삶이 불계를 선언하고 먼저 돌을 던지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 돌을 던지고 바둑을 끝내기도 한다. 그때의 우리는 한 생을 다 살았다고 표현한다. 바둑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인생도 바둑과 같다.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다. 첫 회가 있으면 마지막 회도 있다. 누군가의 삶은 미니시리즈처럼 짧게, 또 누군가의 삶은 일일드라마나 가족 주말드라마처럼 길게 펼쳐진다.


하지만 바둑을 얼마나 오래 뒀나나 드라마가 얼마나 길었나가 그 작품의 가치를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니듯, 삶을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가 중요한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삶을 어떻게 살았느냐’ 일 터다. 그러나 그 답을 쉽게 내리지 못해 우리는 계속되는 삶을 살고 싶은 거다. 더 오래 산다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마음을 품는다. 그러면서 우리는 인생이라는 바둑판 위에 돌 하나를 놓는 것에, 집을 만들어가는 것에, 사활에서 빠져나오는 것에 소중한 의미들을 부여하면서 내 인생의 기보(바둑을 둔 내용을 기록한 것)를 가치 있게 만들어가려 한다.


장그래 역시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삶의 기보들을 작성하고 돌아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이, 자신이 살아온 삶이 의미 없지 않았음을 스스로 되새기려 하는 의지다. 산다는 건 이처럼 처절하면서 지지부진하다. 힘들어도 계속해서 살아야 하고, 되돌아봐야 한다. 어쩌면 ‘완생’의 삶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계속해서 붙잡으려 한다.


그런 처절한 삶 속에서 너무 많은 생명들이 아스라이 스러져 간 참사를 목격하게 되면, 우리는 마음의 병을 앓게 된다. 소중한 생명들이 완생의 꿈을 이루지도 못하고 바둑을 그만둬야 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안타까움도 있지만, 인생은 정말 황망한 것이구나를 느끼면서 드는 회의주의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남긴 사회적 트라우마는 ‘안전하지 않은 사회’라고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삶을 의미 없게 잃어버릴 수 있다’라는 불안감이었다. 더군다나 내 삶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을 그렇게 떠나보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까지 얹혔다.


그 해 4월, 우리는 304명의 생명들이 돌을 놓을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 바둑을 끝내야 하는 슬픔을 봐야 했다. 수많은 생명들의 이야기들을 뭉뚱그려 304명이라는 숫자 안에 비집어 넣으면서, 그들의 삶을 숫자로 밖에 쓰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우면서도 슬프다. 내가 느낄 이런 슬픔을 여전히 안고 살아가는 삶들도 있다. 그들 역시 슬픔에 무너져, 삶에 불계를 선언하고자 했던 마음이 있었을 거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슬픔을 버티면서 꾹꾹 바둑판에 돌을 얹었다. 그건 승리하고자 하는 당당한 발걸음이 아니라, 기억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묵묵한 전진에 가까웠다.


그들이 기억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 것은 장그래가 삶의 기보를 작성하는 것과 동일했다. 장그래는 기보를 통해 되돌아보고, 실수가 있었다면 다시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게, 조금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갈 수 있게 하는 건 무엇일까를 고민한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슬픔과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은 빨리 잊히지만, 한 번 마음속에 똬리를 튼 불안함은 계속해서 우리 어딘가에서 자라나며, 삶을 죄여온다. 그 불안함을 이겨내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불안의 원인이 됐던 사건을 잊어버리려고 한다. 그렇다면 불안도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다.


하지만 삶은 기억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기억한다는 건 단순히 ‘기억한다’는 게 아니다. ‘기억한다’는 건 되돌아본다는 뜻이다.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되돌아보면서 그 행복을 간직하고, 행복하지 않거나 힘들었던 순간은 되돌아보면서 앞으로의 삶을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그래서 ‘세월호를 기억하자’라는 건 슬픔과 불안을 계속 안고 가자는 말이 아닌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늘 마음속에서 그들의 희생을 되돌아보자는 뜻이기도 하다.


B120144130_photogroup_1667984564440.jpg tvN <미생>


드라마 <미생>의 끝은, 원 인터내셔널을 나온 장그래가 김부련(김종수 분), 김상협(민복기 분), 오상식이 만든 ‘이상 네트웍스’에서 또 다른 미생의 삶을 시작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원 인터내셔널에서의 바둑을 마치고, 이제는 이상 네트웍스의 미생이 시작된다. 장그래는 여전히 사활을 걸고 산다. 그렇지만 원 인터내셔널에서의 바둑을 기억하고, 실수하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나아가려 한다.


삶이라는 거대한 바둑 한 판 속에는 매번 무수한 바둑들이 펼쳐진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바둑 한 판이고, 직장 생활도 바둑 한 판이며, 가족들과의 관계도 바둑 한 판이다. 그 무수한 한 판들이 쌓이고 쌓여서 인생의 바둑을 완성한다. 이 바둑판 위에서 우리는 여전히 완생이 아니다. 사활의 고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묘수를 생각해 내고, 지난 싸움의 패착을 복기하면서 다음 바둑을 준비한다.


살아나간다고 썼지만, 인생에서 살아나간다는 건 살아서 이 판에서 나간다는 게 아닌 살면서 나아간다는 뜻에 가깝다. 바둑판 위에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전의 수들을 계속해서 돌아보면서 또 다른 수를 놓아야 한다. 삶에 백기를 들지 말지는 마지막 한 수까지 해보고 나서 결정할 일이다. 이왕이면 돌을 던지는 것보다 마지막까지 돌을 두면서 삶에 사활을 걸어봐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많은 안타까운 삶들의 낙화를 봐왔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참사,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천안함 피격, 이태원 참사 등 비극과 삶의 슬픔을 안고, 어떻게든 우리는 살아가려 했다. 아니 계속해 돌을 두면서 살아 나아가려 했다. 끝내 제대로 마치지 못한 수많은 바둑의 기록들을 기억하고 되돌아보면서 그런 비극이 다시는 오지 않도록 소망했다.


<미생>이 우리 삶에 던지는 이야기는 단순히 ‘인생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가 아니다. ‘인생을 어떻게 하면 가치 있게 살아갈까’다. 살아남기보다 살아갈까를 생각하는 것. 우리의 마음속에 똬리를 튼 불안함을 이겨내는 방법은 단순히 그 불안의 원인을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불안의 원인을 극복해야 하는 것에서 온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불안을 이기고 우리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기억해야만 우리가 치유받을 수 있다. 상처를 치유해야지만 예방도 할 수 있다.


지금의 사회를 돌아보면, 그 상처를 우리는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 싶다. ‘이제 잊고 다시 시작하자’라는 말이 과연 어떤 극복의 의지를 담고 있을까. 인생이란 바둑판은 무르고 다시 둘 수 없다. 미생이라면 완생이 될 수 있게 나아가야 한다. 바둑은 마지막 한 수까지 의미 있어야 한다. 그게 우리의 삶이라는 바둑을 가치 있게 만드는 방법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이전의 수와 이전의 바둑들을 기억해야 한다.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늘 이 바둑에서 이길 수 없다. 나아갈 수 없다. 살아나가야 싶다면 우선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바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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