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이란 건, 까마득하게 막연하다. 누군가와 함께 했던 삶이 이제는 역사가 되어버린다는 것. 기록되든, 기억되든 그게 그저 어떻게든 새겨진 채로만 머물러야 한다는 뜻이다. 돌에 새겨진 흔적을 지우기 위해 한없이 사포질을 하다든가, 몸에 새겨진 문신을 지우기 위해 고통을 참아가며 레이저 치료를 받는다든가, 애써 기억을 지우기 위해 나의 추억의 일부조차 깡그리 다 지워버리려 애쓴다. 그걸 우리는 고통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깐 헤어짐이라는 건 까마득하고 막연한 고통이다. 얼마큼의 고통이 밀려올지 우리는 모르고, 그 순간이 닥쳐와야지만 이 고통이 얼마큼 아픈지를 알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따끔할 겁니다'라는 의사의 말이 주사 하나의 고통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메스로 살을 긋는 것과 같을 수도 있으니깐. 코끼리와 개미에게 바늘로 찌르는 고통이 다를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헤어짐의 아픔에서는 누가 코끼리가 될지, 개미가 될지 모른다.
떠나가는 사람과 떠나보내는 사람 중에 그 누구도 마음이 편한 사람은 없다. 떠나가는 사람이라면 남겨질 사람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남기 마련일 것이며, 떠나보내는 사람이라면 떠나갔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련과 떠나보낸 후 남을 허전함을 견뎌야 하는 고통이 남는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우리는 늘 떠나가거나 떠나보낸다.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다. 그저 자연의 이치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허나 썰물 후 저 멀리 떠나간 바다를 그리워하는 갯벌의 어느 조개가 있을 수도 있지 않는가. 그렇기에 이치를 몸소 받아들인다고 해도 우리에게 남는 건 바다가 남긴 갯벌에 새겨진 파도의 흔적들이다. 그 흔적들이란 또 다른 파도가 오지 않는 이상 지워지지 않는다. 마치 어느 순간 사랑했던 사람이 듣던 노래, 보던 영화의 취향들이 내게 인장처럼 남아있는 것처럼. 또 누군가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만들었던 반찬을 여전히 곰팡이가 핀 채로 놓아두는 것처럼.
우리는 '결코'라고 말하지만 '결국'을 맞이할 때가 있다. 그건 우연 같지만 필연이다. 어떻게든 오는 것들이어서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보편적인 감정들이다. 울컥, 또 왈칵 쏟아지는 그 감정들을 주워 담기란 힘들 일이지만, 우리는 언젠가 그 감정들을 받아들인다.
받아들인다는 건 지우는 고통보다 더 막막해서 언제 올지 모르는 택시를 잡기 위해 바람 부는 겨울 거리 위에서 손을 흔드는 것만 같다. 언젠가 오겠지를 속으로 되뇌면서 계속해서 속으로 부르짖는다. 안 올 것 같다고. 하지만 결코가 결국이 되는 것처럼 결국 그러한 순간들은 온다. 기어코 온다. 그 기어코라는 시간을 맞이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지질한 감정들의 연속 속에서 삶은 끝없이 죽음과 이별을 예찬하며 헤엄친다.
아름다운 백조의 헤엄이 물밑의 지리한 물장구 덕분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물론 안다는 건 느끼는 것과 차원이 다른 문제다. 지금 슬픔에 가라앉은 이들에게 감성보다 이성을 들이댄다면 그건 올바른 구조의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나의 목을 잡고 더 깊은 물 밑 속으로 함께 끌고 들어가려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함께 그 물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존재라는 걸 공감해야 한다. 그때의 공감이란 드디어 공존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로 묶이는 삶은 끝없는 만남과 이별의 반복 속, 불안정함에서 부유하는 어떠한 불완전한 찰나일 뿐이다. 찰나가 초 단위로 어떠한 물리적인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면, 그 찰나 속에서 끊임없이 떠다니는 원자와 원자처럼, 결국 우리는 '끝'없는 순간 속에서 기어코 살아내고야 마는 존재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한없이 함께이고 한없이 고독하지만 '우리'라고 표현하는 범주 안에서, 그 말대로 '존재'한다.
물론 우리가 결국 나와 너로 나누어지듯 그 순간들은 늘 잠깐일 뿐이다. 하지만 그 잠깐은 지나온 시간 속에서 영원히 기억된다. 기억은 그래서 슬프고도 찬란하다. 양가적이라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만큼 진실하다는 뜻이다. 한 면만 바라보기보다 양쪽을 다 들여다보니 말이다. 그렇기에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이 지속되는 삶은 얼마나 진실된 것인가. 우리는 그저 슬프기보다 행복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다. 그 찬란하고도 진실되고 아름다운 찰나들이 나와 우리를 감싸고, 까마득한 우주 속 '나'라는 빛 하나를 만들어 낼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