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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삶에 대한 환멸, 글과 음악을 짓는 삶.

by 헤아리다

중학생 시절, 나는 평범하게 대학교를 진학하고 취업하여 평범하게 살아가는 삶을 환멸했다. 그렇게 살아가기 싫을뿐더러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마 당시 열다섯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팔 년이 지난 지금조차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아마 그때의 생각들 중 이제 와서까지 옳았다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일 것이다.


사람들에게 조금씩은 있는 특별함에 대한 동경을 제하더라도, 평범한 삶은 역겹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역겹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그렇다는 것이다. 정해진 시일과 시간에 노동하고, 상사의 눈치를 보며 머리를 조아리고, 물질에 얽매이고, 이런 쓸모없는 것들에 고뇌하고, 그렇게 늙어가고, 연로한 후에 좋은 인생이었노라 미화하는 모든 상황들은 상상조차 고통스럽다.


글과 음악을 짓는 입장에서 나 자신이 특별하다 느끼는 것 또한 아니다. 이쪽 분야를 원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주변인들은 나를 치켜세우고, 동경의 대상으로 만든다. 그것에 도취되어 '나는 특별하다'라고 믿는 순간, 많은 일에 소홀해지고 겸손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나는 주변인들의 말을 속에서 내치며, 나의 존재는 한없이 부족하기에 겸손해야만 하고, 절대 특별하거나 범인을 벗어났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혹 내가 비범인이 되고자 한다라고 해도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고통이 덜할까, 이 고민의 끝에서 찾아내고 타협한 것이 예술 분야인 것이다. 이렇게 살다간 어느 순간 삶의 심각한 궁핍이 기어들겠지, 시간이 지나도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삶을 이상으로만 생각하는 한심한 어른이 되겠지, 이런 생각들이 얽매여와도 현재로선 자유와 창작이 이러한 것들을 이길 수 있노라 생각한다. 나에겐 이런 삶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나의 생각에 멋있다, 대단하다고 표현하는 일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나의 입장에 서보면, 내가 걸을 수 없는, 보편적으로 평범이라 일컫는 삶(진학, 취업, 결혼)을 살아가는 이들이 훨씬 대단하다. 너의 입장에서는 내가 대단하고, 나의 입장에선 너와 같은 이들이 대단하다. 그들은 누군가를 대단해할 것이고,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대단한 사람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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