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화가들은 그리고자 하는 대상에서 눈을 떼지 않고 끝까지 대상을 응시하며 그림을 완성시킨다.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식>이다.
반 에이크가 마음만 먹는다면 아르놀피니의 속눈썹 하나까지도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서양의 생생한 미술 탓에 “이런 관찰력의 차이가 동서양의 미술을 가른 원인인가?”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관찰력이 동서양을 나눈 기준이 아니다. 관찰력에 있어서는 동양의 미술도 그리 만만한 미술이 아니었다.
중국 남당(南唐 937-975) 시기, 고굉중(顧閎中 910-980)이라는 화가가 있었다. 그가 그린 <한희재야연도>이다. <한희재야연도>란 한희재라는 재신이 개최한 야연(夜宴), 즉 밤의 연희를 그린 그림이다. <한의재야연도>는 두루마리 형태로 그려진 꽤 길다는 그림으로 야연(夜宴)의 여러 가지 장면들이 담겨 있는데, 마치 연회에 참석하여 관찰하여 그린 듯 아주 사실적이다.
언젠가 고굉중은 남당(南堂)의 왕 이욱(李煜)의 명령으로 당시 재신(宰臣)이었던 한희재의 집에서 일어나는 은밀한 밤의 연희를 그려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왕은 한희재가 밤에 무슨 일을 하고 지내는지를 궁금해했다. 그래서 화가 고굉중을 시켜 밤에 그의 집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살피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 바치라는 것이었다. <한희재야연도>는 그 결과로 제작된 그림이다.
스파이처럼 몰래 숨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려야만 했던 고굉중이 몰래 스케치북을 가지고 한희재의 집에 갔었을까? 아니다. 그랬다가는 한희재의 부하들에게 화구(畵具) 다 빼앗기고 흠씬 두들겨 맞고 내패댕이쳐 쫓겨났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했을까? 당시에는 몰래카메라도 없었는데...
고굉중은 마치 초대된 손님인 듯 한희재의 집을 방문했을 것이다. 그는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누가 참석했고, 그의 집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빠짐없이 관찰했다. 연희가 끝난 후 그는 작업실로 돌아와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지난밤 자신이 본 것들을 모두 그려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림이 <한희재야연도>이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동양의 화가는 한 번 본 것을 그대로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굉장한 관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당나라의 전설적인 화가 오도자(吳道子 710-760)의 일화는 더 극적이다. 언젠가 당(唐)의 왕 현종(玄宗 712∼756)이 가릉(嘉稜) 지방의 경치를 그리워하여 오도자에게 그림을 그려오게 하였다. 오도자는 가릉 지방을 빙 둘러보고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현종이 그 이유를 물으니 “저는 비록 밑그림을 그리지는 않았으나 모두 마음속에 담아 왔습니다.”라고 답하였다.
훗날 오도자는 대동전이라는 건물에 벽화를 그리게 되었는데, 거기에다 삼백 리에 걸친 가릉 지방의 풍경을 하루 만에 완성하였다. 화성(畵聖) 다운 일화이다. (진복조, 동양화의 이해)
동양화가들의 그림 수행법을 들으면 더 놀랄만하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중국 고대에는 초상화를 가르칠 때 선생과 학생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한다. 선생 앞에는 각양각색의 서로 다른 잔과 그릇들이 놓였고 학생 앞에는 붓과 벼루, 그리고 먹과 종이 등의 그림도구들이 널려 있었다.
먼저 선생이 잔을 하나 들고 학생에게 그 주둥이를 기울여 보여주면 학생은 눈대중으로 그 컵의 주둥이와 같은 크기의 원을 그린다. 선생이 잔이나 그릇을 한 번 들 때마다 학생은 계속하여 그것을 따라 그리는데 주둥이가 큰 잔을 들 때에는 그 시간은 점점 길어지게 된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면 시간은 점점 빨라지고 스승은 그릇 크기의 순서에 관계없이 임의로 크고 작은 것을 번갈아 들어 올린다. 이렇게 하여 학생이 그려낸 원과 그릇의 주둥이가 완전히 같아 둥글면서도 정확하고 거침없이 될 때까지 연습을 반복하였다고 한다(진복조, 동양화의 이해).
동양의 화가는 단순히 정지된 사물을 그리드로 측량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움직이는 물체까지도 순간적으로 관찰하고 정확히 그려내야 했다. 동양의 미술가들에게는 예리한 관찰력과 기억력은 아주 중요했다. 관찰력이라는 면에서 동양의 미술가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유송의 화가 왕미(王微 415~443)는 그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꼬불꼬불하고 어지럽게 얽힌 것을 모두 마음의 눈에 기록하였다가... 한번 상고(詳考- 꼼꼼하게 따져서 검토하거나 참고함) 하여 찾으면 모두 방불케 할 수 있다(갈로, 중 국회화이론사)
순수하게 관찰력이라는 측면에서만 보자면 동양 미술가들의 실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다 빈치나 라파엘로만 대단한 것이 것이 아니라 중국의 미술가들도 그에 못지않은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