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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들지 않는 아밀리 Oct 18. 2023

비참한 3년간 국제연애의 끝

후회 없이 사랑했고 두 번 다시 반복하지 말자.

“나 이젠 제발 좀 사람답게 살고 싶어”

난 체한 음식을 토해내듯, 말을 게워냈다. 핸드폰 화면 속 화상통화 중인 나의 얼굴은 시뻘겋게 구겨져갔다. 눈물이 쏟아져내렸지만 슬픔이 아닌 서러움에 못 이긴 눈물이었다. 장거리 연애 8개월째 쳐다보고 있는 핸드폰 화면은 정말 좁아터져 미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손바닥만 한 핸드폰 화면인데 그마저도 반으로 나눠 위에는 그 사람과 아래는 내 얼굴을 띄우고, 이걸 연애랍시고… 내 속은 이미 다 문드러 터져 있었다. 아무리 고귀한들 이런 닭장 속 닭 같은 짓은 끝나야만 했다. 송장만도 못한, 산 사람 같지도 않은 삶을 제발 끝내고 싶었다.


“이제 인정해. 우리 서로 삶을 갉아먹고 있잖아. 한국에서도 직장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해놓고 벌써 장거리 연애를 한 지 8개월이 넘어가잖아.”

“나도 이렇게 어려워질 줄 몰랐어…”

”내가 캐나다까지 갔었는데 너희 부모님한테 나 문전박대당했어. 죽어도 난 캐나다에게 살기 싫어. “

”……“

“이게 무슨 연애야. 얼굴 보면서 밥 한 끼 같이 먹으려면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야 하는데, 제발 관둬. 이따위 짓 이제 제발 그만해! “

“은지… 우리 함께 했던 시간을 후회해?”

“아니. 후회하지 않아. 우린 정말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렇지만 이제 두 번 다신 반복하고 싶지 않아”


데이브도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1년 가까이 한국에 100개 넘는 이력서를 돌렸지만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사람만이 흘릴 수 있는 좌절의 눈물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희망고문을 견디며 이 지옥 같은 악몽을 며칠이나 꾸었던 걸까.


“이제 넌, 아니, 우린 자유야. 일상으로 돌아가서 하루하루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자”

“미안해 은지… 그래도 널 만나서 정말 행복했어.”


데이브는 나와 함께 한 시간을 기억할 거라는 말을 했고 나는 부디 내가 기억에 오래 남지 않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1시간이 넘는 길고 긴 통화를 마쳤다. 덕분에 핸드폰은 손난로처럼 뜨거웠다. 그와 함께 마법같이 들이쉬는 숨의 무게가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숨 한숨 들이쉴 때마다 폐 속에 차곡차곡 쌓여가던, 내 목 끝까지 차올라 숨통을 서서히 조여오던 무언가가 단번에 없어졌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정말 오랜만에 내 얼굴이 보였다. 미래의 아내, 미래의 엄마, 우리 부모님의 딸, 어느 회사에서 무슨 일 하는 누구가 아닌 사람 오은지가 보였다.

은지야 이게 얼마만이니. 이게 얼마만이냐.


웃음과 울음이 흉측한 소리로 터져 나왔다. 간신히 막아두었던 낡은 댐이 와르르 무너지듯, 곪고 병들었던 마음이 와장창창 흘러나왔다. 거울 속 내 얼굴은 눈물로 덮여 자꾸만 흐려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 세면대를 잡고 주저앉아 버렸다. 그래도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울음이 끊기지 않았다. 내 삶은 끊어지지 않았다.


이 길고 아름다운 악몽이 끝나고 다시금 아침이 찾아오고 있었다. 목을 짓누르던 무거운 무엇인가가 사라지고 드디어 숨이 쉬어졌다.

그래. 이젠 좀 숨이 쉬어진다. 이제, 이제는 좀 숨 쉬는 것 같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이제는 좀 살아 있는 것 같다.


3년 동안 아등바등 지켜왔던 나의 국제연애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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