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갱년기를 겪고 계신다. 비슷한 연배의 친구분들은 대부분 갱년기를 조금 더 일찍 겪으셨다고 들었다. 엄마 나이 올해로 58세. 사람마다 다르다고는 하나 평균보다 확실히 늦게 온 것 같기는 하다.
지난봄부터 엄마가 좀 이상하긴 했다. 별로 덥지 않은 날씨임에도 유난히 더워하거나, 옷을 입었다 벗었다 했던 것 같다. 얼굴에 열이 오른다고 하거나, 얼굴이 빨개진 것 같다고 하거나.
가장 뚜렷한 증상은 역시 우울감과 무기력감이었다. 언제부턴가 심심해, 뭘 해도 재미가 없어, 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사소한 일에 짜증도 많이 냈다. 누군가가 별생각 없이 한 말 한마디에 크게 상처받고 한참 동안 그 기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했다.
가을 들어 증상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갱년기에 좋다는 석류즙도 부모님 댁에 보내 놓고,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엄마를 보러 오갔다. 휴직하고 나서 시간이 좀 더 여유로워진 덕분이기도 했다.
하루는 엄마가 바람 쐬고 싶다고 하셔서 한강에 함께 산책을 나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걷는데 엄마가 교회에서 설교 중에 들은 얘기를 꺼냈다.
어떤 여자 교수가 있었는데 정년퇴직하면 남편이랑 같이 전원생활하려고 어디 시골에 땅도 사놓고, 집도 지어놓고, 주말마다 가서 정원도 가꾸고 하면서 10년을 보냈다는 거야. 10년을.
근데 퇴직을 앞두고 남편이 암으로 돌아가신 거지. 혼자 남은 그 교수는 어땠겠어. 남편이랑 같이 노후를 보내려고 열심히 꾸며놓은 집에 혼자 살 수 있었겠어? 집이 다 무슨 소용이야. 남편은 없는데.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밥도 안 먹고 밖에도 안 나가고 그러고 있길래, 이 부부와 잘 알고 지냈던 친구 부부가 밖에 데리고 나와서 밥도 먹이고 드라이브도 시켜주고 그랬대.
나중에 그 교수가 친구 부부를 만나서 그랬다는 거야. 남편이 죽고 나서, 학생들에게 자신이 한 4개월쯤 뒤에 죽는 시한부 인생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무엇을 할지 써서 내라고 했대. 그랬더니 어떤 학생은 여행을 갈 거라고 쓰고, 어떤 학생은 그동안 먹고 싶었던 것들 많이 먹을 거라고 하고, 어떤 학생은 사랑하는 사람들이랑 시간을 많이 보낼 거라고 쓰고 그랬다는 거야, 응?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잖아.
근데 한 학생이 시간이 다 되도록 앞에 빈 종이만 두고 멍하니 있더라는 거야. 이 교수가 걱정되니까 아무것도 안 쓰면 F라고, 뭐라도 써서 내라고 했더니 그 학생이 한참 고민하더니 뭔가를 막 써서 냈대.
나중에 교수가 보니까 그 학생은 친구들이랑 전혀 다른 글을 써서 낸 거지. 자기 상황을 얘기하면서 당장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너무 힘에 부치고 너무 버겁다고 했대.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날 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는 것뿐이라고. 삶이 얼마나 남아 있든 자기한텐 중요하지 않고, 매일 그렇게 열심히 살아낼 거라고 썼다는 거지.
엄마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그래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지, 생각했다고 했다. 먼 미래만 바라보지 말고, 매일매일 충실하게. 생각해보니 엄마는 가게를 하면서도 등산을 꾸준히 다니셨고, 몇 년 전에 워십과 피아노도 배우셨다. 최근엔 라인 댄스도 하신다. 나름대로 뭔가를 계속 찾아서 하고 계셨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따라 거울 볼 때마다 점점 눈가의 주름이 깊어지는 것 같아 우울해지고, 나이 드는 게 무섭고, 죽음이 무서워진다고 했다. 장례식을 너무 많이 간다고도 했다. 어디 장례식을 다녀오면 또 다른 데서도 부고 연락이 온다고. 이렇게 평생 아빠와 가게에만 매어 살다가는 나중에 후회할 것 같은데 아빠가 가게를 계속하고 싶어 하시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 답답하다고 했다.
나는 엄마의 나이를 다시 떠올려봤다. 나한테 엄마는 늘 엄마이고 작년이나 재작년에 비해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우리 엄마에게도 어느새 환갑이 코 앞에 와있었다. 환갑이라니. 아빠의 환갑 생신을 맞아 온 가족이 괌으로 여행을 다녀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아빠와 여섯 살 차이 나는 엄마도 얼마 안 있으면 환갑이라니.
엄마. 애들이 어른이 되려고 사춘기를 겪듯이 노년기를 잘 준비하기 위해 누구나 겪어야 하는 게 갱년기라고 하잖아. 앞으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면 되지. 아빠랑 잘 얘기해서 이제 가게도 좀 정리하고 그렇게 노래 부르던 대로 마당 있는 집 짓고 예쁘게 정원 가꾸면서 살아. (어디서 주워들은 말로 위로랍시고 던져봤지만 ‘노년’이라는 말이 엄마에게는 또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말에 엄마는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언젠가 「눈 떠보니 선진국」의 저자 박태웅이라는 분의 인터뷰를 우연히 들었던 기억이 난다. 1963년생이므로 우리나라 나이로는 올해 60세. 작년에 낸 이 책이 그의 생애 첫 책이었다.
왜 여태까지 책을 안 내셨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오십 대까지 준비만 하는 사람이었다고 그는 자신을 설명했다. 오래전부터 책을 쓰고는 싶었으나 자기도 잘 모르는 말을 할까 봐, 그저 칼만 갈고 있었다고. 무르익고 나서 쓰려고 했다고 했다. 무르익고, 나서.
그러면 왜 지금 책을 쓰실 생각을 하게 되었냐고, 지금이 무르익은 때라고 생각하느냐는 농담 섞인 질문이 돌아왔다.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칼을 갈다가 자루만 남을까 봐요.
나는 엄마가 자루만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빠도, 동생도, D도, 나도. 내가 아는, 내가 사랑하는 그 어느 누구도 자루만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루만 남겨진 모습을 떠올리면 목이 콱 막힌다. 왠지 길 가의 아무 데나 아무렇게나 놓여있을 것 같다.
언젠간 가게를 접을 거고… 언젠간 은퇴할 거고… 언젠간 아빠랑 전원주택에서 살 거고… 엄마는 이런 말씀을 오래전부터 많이 하셨다. 그런데 그 언젠가가 언제까지 유효할까. 이쯤 되면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시점에 뜻밖에도 자루만 남은 당신을 발견하면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되실지.
갱년기라는 게 엄마를 바닥 깊은 곳까지 끌어내려 오랫동안 괴롭힐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믿는다. 엄마가 마음은 여리지만 정 많고 귀여운 할머니가 되어, 그렇게 좋아하시던 수국을 마당 한가득 심으면서 나는 잘 무르익었네, 흥얼거릴 날이 올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