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가계부 이야기가 나오면 하나 같이 이렇게 반응한다.
"어차피 쓸돈 쓰는 건데 뭣하러 적나?"
"관리하면 피곤하기만 하다"
뭐.. 이해는 된다만,
돈이라는 것의 원리, 그리고 사람이 돈을 바라볼 때의 감정 같은 것들을 깊이 연구해 본 내가 느낀 바로는
자산관리 전문가들이 가계부를 작성하라고 말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난 그냥 심플하게 딱 하나의 이유를 든다.
가계부를 작성하는 행위는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의 돈을 소중히 여기도록 만드는 의식 행위라고.
즉, 가계부 작성이, 어떤 1차원 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의식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의식을 마친다고 해서 바로 효과가 나타나진 않지만,
그 행위 자체로 가치가 있는 그런 의식말이다. (리츄얼이라고도 하더라)
이 가계부 의식을 통해,
나는 내가 가진 수많은 자원들 중에서 '돈의 소중함'을 계속해서 깨닫게 된다.
돈이 능력인 사회?
돈이 능력인 사회라고 말하지만,
단순히 내가 뭔가를 잘한다고 빠져나가거나 들어오는 것만은 아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예상치도 못한 기회로 돈이 생기고,
정말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도 빠져나가는 게 돈이다.
그래서 가계부를 작성하다 보면,
세상이라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잘 버티고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자신감과 동기부여를 가져다준다.
그러면서 나의 자원을 더 소중히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 가계부 작성 행위이다.
혹자는 이렇게들 말한다.
"가계부 적다가 구두쇠 되더라"
"어차피 월급 정해져 있는데, 뭘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 사업해서 한 1천 당길 거 아니면, 그냥 쓰면서 살자"
모두 맞는 말이고 일리가 있다.
하지만 대게 이런 말들은 가계부 작성을 안 해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우리는 제대로 해본 사람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겠다.
가계부 작성을 제대로, 꾸준히 해본 사람들은 일단 찾기가 힘든다.
하지만, 제대로 지속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는데,
하다가 포기하는 일이 없다.
왜 없을까?
그 효과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효과? 돈이 모이는 효과가 있다고?
그렇지 않다.
단순히 가계부 적는다고 해서 돈이 모이지는 않는다.
좀 전에도 의식행위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다만, 이게 바뀐다.
내가 돈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라지게 만들어준다.
가계부 작성은 내가 돈을 대하는 태도, 돈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준다.
구두쇠라는 표현이 나왔지만,
구두쇠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쓸 가치를 못 느낄 뿐이지, 자신이 가치 있는 일에는 돈을 쓴다.
그 말은 바꿔 말하면, 내가 누군가를 구두쇠로 본다면, 반대로, 구두쇠인 사람은 당신에게 돈 쓸 가치를 못 느꼈을 뿐이다.
이게 매정한가? 나는 그렇게 많이 해줬는데.. 나에게 쓰는 게 없는 것 같은가? 그러면 관계를 끊으면 된다. 그게 두렵다면 구두쇠도 변하겠지.
결론적으로, 돈을 쓰는 것 자체를 어렵게 만들어야, 돈을 쓰는 행위가 고결해지고, 그 사람이 돈을 쓰는 행위 자체에 가치가 부여된다.
돈을 아무 데나 막 쓰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베풀더라도,
그 누군가의 감사함이 떨어진다. 왜냐하면 원래 막 쓰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돈을 잘 쓰지 않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기버(giver)로써의 행위를 베푼다면
정말 가치 있는 일로 느끼게 된다.
돈 쓰는 행위자체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그것보다 더 귀한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이 돈을 사용하는 것을 상당히 신중하고, 어렵도록 스스로에게 만들어야 하고,
그래야만 돈 쓰는 행위가 가치가 생긴다.
정말 아이러니하다.
돈을 잘 안 써야만, 돈을 쓰는 일에 가치가 부여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1차원적으로 보이는 것에만 집중한다.
이러한 시각 때문에 수많은 삶의 영역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가계부를 적는다고, 지출이 비약적으로 줄거나, 쪼들리던 생활히 갑자기 풀리거나, 가세가 갑자기 상승하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가계부는 꾸준히 써가면서 나의 의식 수준을 바꿔나가는 일종의 운동 같은 것이다.
운동은 하루이틀한다고 몸이 안 바뀐다. 계속해서 내 육체를 단련하고,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하지 않아서는 안 되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다 (아마 운동을 해본 사람은 공감한다)
다이어트도 마찬가지이다. 매일 같이 체중계에 올라가는 이유는, 하루 이틀 만에 1kg가 빠져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보살피고, 지속적으로 내가 체중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일종의 선포다.
가계부도 마찬가지란 거다.
그래서 단기간 가계부 쓰고, 별 효과가 없어 포기했다는 말이 앞뒤가 안 맞는 거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실수를 가장 많이 한다.
요약해 보겠다.
1. 가계부 작성을 하는 이유를 많이들 잘 못생각 하고 있다.
2. 가계부 작성은 지출감소나, 소득 수준 증대 등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3. 가계부를 작성함으로써 돈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달라진다.
4. 물론 꾸준히 몇 달간 지속하면, 돈을 쓰는 게 고귀하고 고결한 일이 된다. 나에게 있어서.
5. 내가 돈을 쓰는 순간 박수를 받는다. 나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누군가에게 베풀었을 때, 그 자체로 큰 가치가 생긴다.
5번까지 반복하다 보면 따라오는 부수적인 효과가 있다. 이게 바로바로 점점 불필요한 지출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다. 보통은 가계부를 쓰면 이 부수적인 효과가 바로 나타난다고 생각하는데, 완전히 잘못된 부분이다. 이 단계 전까지는 엄연히 필요했던 지출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나타난다(의식 수준이 달라졌기 때문에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6. 그러면 돈이 아껴지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파이프라인 확장을 위한 동기부여를 받는다.
7.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된다.
6,7번 단계로 가기 전에 일단 5번까지 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