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이 되어 쓴 편지 2
있잖아, 기억나? 내가 얼마나 여름을, 그 푸름을 사랑했는지. 여름밤에 말이야, 뒷산 공원의 가장 큰 버드나무 아래 정자에 앉아 모기를 쫓으면서 우리 함께 여름밤을 마셨었잖아. 길게 늘어진 버드나무의 그림자는 가로등 아래에서조차 싱그러웠던 것 같아. 난 그때 우리가 상록수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버드나무였으려나. 아, 추억 얘기를 하자는 건 아녔어, 그냥 풀 얘기를 좀 할까 하고.
여기는 예상대로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해. 애써서 교외로 나가지 않고 창문만 열어도, 온통 세상이 초록이야. 어떤 날은 너무 선명해서 눈을 몇 번 비비고 다시 보기도 해. 올여름도 무척이나 푸르렀지. 재밌는 얘기 해줄까? 있지, 나는 여전히 초록을 사랑하고, 또 마침내 싫어하게 됐어. 참 간사해, 그렇지?
비가 오면, 해야 할 일, 음 그렇니까 텃밭에 풀을 뽑는다거나 쓰레기를 내다 놓는다거나 찰스를 산책시킨다거나 가끔 좀 미루고 싶은 그런 일들 있잖아, 그런 것들을 하지 않아도 돼서 참 좋아. 비가 타닥타닥 내리기 시작하면 일상을 잠시 멈추라는 소리처럼 들려. 당연히 나는 죄책감 없이 할 일을 미루고 얼른 국물요리를 해. 소주를 한 잔 마시면서 비 오는 순간을 잡아두려고. 그러고 보니 길고 길었던 작년 장마에는 정말 자주 취해 있었네. 문제는 그 후야. 비 온 뒤 풀 자라는 속도는 내 게으른 호미질로는 절대 따라갈 수 없거든. 첫 여름엔 미루고 미루다가 마당에 잡초가 무릎까지 커버리고서야 겨우 낫질을 몇 번 했지. 허리 펼 새 없이 땅만 보면서 잡초 제거에 눈이 벌게져 있었는데 열심히 자라다 마침내 꽃까지 피어버린 개망초 앞에서는 잠깐 멈칫했어. 몰랐는데, 사실은 걔도 기다리면 꽃이 피는 풀이었던 거야. 하마터면 마음이 약해질 뻔했어. 메추리알 프라이 해 놓은 것 같이 생긴 꽃, 알지? 네 생각에 난 어떻게 했을 것 같아? 전부 밀어버렸을까, 그 꽃 남겨두었을까.
종종 사람들이 그 질긴 생명력에, 잡초를 근성의 의미로 시에 가져다 쓰거나 이름 없는 풀이라 연민을 덧대어 노랫말에 포함시키곤 하는 것을 어쩐지 나는 진부하다 느끼곤 했는데, 내가 이렇게 가까이에서 두고 보니 정말 이것들은 할 이야기를 생각나게 하는 풀이었던 거야. 어쨌든 난 우리 집을 정글로 만들어 버릴 순 없어서 열심히 낫질을 했어. 그 메추리알 프라이 꽃은 말해 뭐해, 차마 못 베었지. 걔네들이 결국 바람에 흩어져서 내년 봄에 더 무성히 마당을 덮을 새 잡초가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야.
지난 여름, 처음 맞은 시골의 여름은 정말 무시무시했어. 처음 이 집에 왔을 땐 마당에 잔디도 없이 맨 땅만 너무 휑해서 몰랐는데, 집주인 아저씨가 이따금씩 와서 마당에 제초제를 뿌리곤 하셨던 거였나 봐. 내가 살게 되면서 키 큰 풀이 무성해져 버린 우리 집 마당을 보면서 할머니들은 나 모르게 혀를 끌끌 차셨을 거야. 참고 참으시다가 몇 마디씩 하시곤 하셨거든. 풀이 그리도 많이 자라면 사람들이 숭(흉) 본다면서. 나는 알고 있었지, 당신이 못 견디시겠다는 것을 완곡하게 일러주신 거라는 걸(웃음)! 시골에서 풀은 곧 태도야. 나는 초록이 좋다는 말로 대강 헤헤거리면서 넘겼는데, 사실 나도 마음 한 켠으로는 이렇게 매섭게 자라는 거라면 풀이 조금 무서워질 참이었거든. 어설픈 호미질로 풀을 매면서 버티다가 결국은 12만 원짜리 플라스틱 날이 껴진 예초기를 주문했어. 처음 잡아본 내 키 만한 예초기가 조금 겁이 나긴 했는데 금방 익숙해지더라. 숭덩숭덩 잘려나가는 잡초를 보니까 꽤나 속이 후련하더라고. 이거 정말 농촌생활 필수템이었던 거야. 배터리가 20분 정도만 쓸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그 이상까지 가능했더라도 난 멈췄을 거야. 다음날 팔이 얼마나 뻐근하던지, 전완근이 아주 끊어져 버린 줄 알았어, 정말.
뭐 이젠 20분 동안 잡초 제거를 해도 거뜬해. 다음 날 근육통도 별로 없지, 후후! 예초기를 처음 구입하고서는 보호안경을 끼고 왜왱 소리가 나는 예초기를 돌리는 거친 내 모습이 마음에 쏙 들어서 열심히 일주일 간격으로 잡초 제거를 했었어. 근데 웃긴 건, 이젠 그마저도 낫질만큼이나 귀찮아져 버린 거야. 내 게으름은 진짜 아무것도 못 막나 봐. 두 번째 여름, 우리 집 뒷마당은 결국 밀림이 되었어. 한 번 때를 놓치면 풀이 걷잡을 수 없이 커버려서 하루 20분 잡초 제거로는 어림없거든. 고추랑 방울토마토 모종들도 전부 잡초에 깔려서 올해는 토마토 몇 알 정도만 겨우 건졌어. 그런데도 난, 여름 뒤엔 어쩔 수 없이 가을이 올 거고 그럼 알아서 시들겠지 하면서 내버려 뒀어. 뱀이 나올 것 같아서 걱정이 좀 되긴 하지만.
도시에서는 대부분 잔디가 깔린 마당을 가진 집에 사는 걸 동경하는데 여긴 좀 달라. 돈이 있는 집들은 전부 마당에 돌이나 시멘트를 깔거든. 하루가 모자라게 흘러가는 농촌에서는 마당의 잔디까지 돌볼 여유가 없어. 비가 와도 질척이지 않고, 따로 손이 가지 않아도 되는 바닥에 기꺼이 쌈짓돈을 내지. 때가 되면 마당에 생긴 시멘트의 균열 그 좁은 틈과 길가에 꼼꼼히 제초제를 뿌려. 멀리서 바라보던 시절엔 왜 다들 저렇게 보기 싫게 회색으로 덮어버렸을까 했는데, 살아보니 알겠더라. 역시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그러니 너도 알겠지? 내가 이 시간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얼마나 아껴 보내고 있는지 말이야. 언젠간 시골에 가서 살 거라던 내가 그 '언제'를 미루지 않고 지금 겪고 있는 게, 너무 시의적절해.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온전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말이야.
나는 이제 정말로 이 동네 최고의 게으름뱅이가 됐어. 제초제를 뿌리는 건 어떻겠냐고 올여름도 어김없이 한 소리를 들었거든.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마침내 초록을 싫어하게 됐음에도 왜 여전히 제초제를 쓰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건지. 마당을 뛰어다니는 찰스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땅이 자생력을 잃고 망가지는 게 싫어선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이런 건 왠지 표면적인 이유라는 생각이 들어. 진짜 이유를 알아낼 수 있을까 싶어서 쓰기 시작했는데, 네게 풀 얘기를 하면서 뭔가 짚이는 게 생겼어. 정말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메추리알 프라이 같이 생긴 꽃. 그걸 봐버렸잖아 내가. 나는 그냥 기다려주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어, 내가 지금 나를 아주 천천히 기다려주듯이.
시골 마당에 그냥 내버려 둔 무성한 풀은 곧 나태함이라 동네 분들은 우리 집 마당의 풀을 지켜보는 걸 불편해하시지만, 그래도 난 여전히 내 무릎까지 오는 잡초들을 내버려 두고 있어. 그래, 한편으론 기다리고 있어. 그러는 사이에 이르고 또는 더디게 무성한 잡초 밭 사이에서 꽃들이 피고 져. 음 글쎄, 나는 아직이야. 조금 더 기다려 볼까 해. 곧 필 것 같아서.
초록은 아직 여전해도 밤 사이 여름은 더 멀리 가고 있어. 곧 낙엽이 지겠지?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서, 영원보다 아득하게 느껴지네. 문득 궁금하다. 요즘 넌 뭘 기다리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