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부재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새로운 공간에 나가지만 어떨 때는, 사람을 알게 되는 것이 무섭기도 하다. 어렵게 꺼낸 그 마음속 이야기가 내가 예상치 못한, 훨씬 더 깊은 수렁 속의 것이면 두 가지 감정이 든다. 용기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공감해 줄 수 없다는 슬픔과 부담감.
내가 아는 슬픔은 일반적이다. '슬픔'이라는 교과서가 있다면 가족, 외모, 인간관계등 대부분의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을 그런 누구나 아는 것들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맞아요! 라는 말이 그냥 나오는 일들. 하지만 인간의 삶이라는 게 천편일률적일 수 없지. 누구나 마주하는 일들 앞에 각자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고 다른 궤적을 걸어오다보면, 품고 있는 슬픔의 얼굴도 달라진다.
사실 저, 왕따 당했었거든요.
사실 저, 생사의 기로에 선 적이 있었거든요.
사실 저, 의식이 없었거든요.
깊이 공감해줄 수 없어 당황스럽지만, 말을 꺼낸 사람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눈빛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로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과거로부터 해방된 눈이랄까. 지울 수 없고 잊을 수 없기에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제법 담담한 어조와 평온을 유지하려 애쓰는 표정을 마주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저도 그런 적 있어요가 아니라 그러셨군요. 라는 말이지만, 공감이 부재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픔이 슬픔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과 표정을 찾아본다. 그 때, 누군가가 말한다.
" 이겨내주셔서 감사해요. "
이렇게 또, 서로의 슬픔을 나누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