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온 Jul 08. 2022

아무도 없는 강의 둘레길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옆동네 감성카페에 놀러 가는 그런 작은 일에 불과한 것들 말고, 작은 연못과 뒷산이 있으며 대나무로 울타리를 쳐놓아 남들이 쉽사리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없지만 늘 그 안에서는 따뜻한 장작 타는 소리가 들리는 그런 작은 원목 소재의 집. 그곳은 함부로 찾을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쉽사리 들어올 수 없는… 그런 곳이 있다면 떠나고 싶다. 한 번은, 강의를 나가서 아이들에게 이것과 비슷한 질문으로 ‘나만의 공간이 생기면 어떻게 사용하고 싶나요?’ 란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수줍은 미소를 띤 아이가 조심스레 손을 들고 했던 대답이 기억난다. 그 아이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숙제도 많아지고 학교도 늦게 마쳐서 힘이 든다고, 나만의 공간이 생기면 그 속으로 들어가 푹 쉬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 어린 초등학교 4학년이 발표를 끝내고 보여주는 그 미소가 왠지 모르게 쓸쓸하게만 느껴졌다.


역시 힘듦이란 것은 나이나 성별 따위의 단순한 사고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 분명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들의 인생에는 급정거를 할 수 있는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왜, 자동차도 오랜 시간 쉬지 않고 달리다 보면 스스로 멈춰 서서 결국 기름으로 목을 축여줘야만 움직이지 않나? 인간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 연료 소진이다. 목표도 꿈도 잃어버린 내게 무작정 달려야 하는 길만 남은 것이 너무 가혹하게만 느껴진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하고 있는 일의 특성상 쉽사리 허락되지 않고, 그렇다고 이 일이 주는 효용 감에 모든 것을 쏟아붓기에는 더 이상 얻는 것이 없을 것만 같이 느껴진다. 현재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담당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적지 않은 수의 사람을 통솔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단톡방과 같은 곳에서 주도적인 멘트로 대화를 이어나가고 그렇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채로 한 프로그램이 끝나면 또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 사람들은 생각들이 모두 나와 같지는 않아서, 때로는 새벽에 뜬금없는 연락을 보내오는 사람도 있고, 자신만의 날카로운 언어로 질문이나 말을 던지기도 한다. 가끔 옷도 갈아입지 못할 만큼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 위에 어색한 자세로 누워있다 보면 지잉하는 소리와 함께 휴대폰 진동이 울리곤 하는데, 설레는 마음으로 휴대폰 화면을 터치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선생님, 매니저님이라는 지칭으로 시작하는 메마른 문장들뿐이다. 이 정도면 차라리 전 남친이 보내는 잘 지내? 가 오히려 나을 수준이다. 그는 내 안부라도 물어주니까 말이야.


이렇게 삶을 연명하는 것에 회의적이고 지친 마음을 가지게 될 때면 난 약속이라도 한 듯 천안으로 떠나곤 했었다. 천안에 살고 있는 령이 언니는 친언니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따뜻한 마음으로 늘 언제나 날 안아줬다. 때론 쓴소리도 분명히 해주는 그런 언니. 그러면서 언니는 늘 내게 도망치고 싶을 때가 생기면 언제나 찾아오라고 말해줬다. 그러나 그런 밝은 에너지의 언니도 그토록 자신이 경계하던 깊은 어둠을 만나 스스로 깊은 땅굴을 파고 그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가 어떤 빛을 비춰도, 얼마 남지 않은 따뜻한 빛을 내어줘도 언니는 쉽게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마치 오랜 기간 땅굴에서 거주한 두더지처럼 빛을 비출수록 더더욱 깊은 곳으로 숨어든다. 순간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듯 막막한 심정이 들었지만 언니의 시간을 인정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아마 언니도 자신의 인생에 브레이크를 건 것이겠지. 그리고 난 우울한 감정에 휩싸였을 때 무작정 밖으로 나오라는 권유가 긍정적인 효과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두 나름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난 그 시간 동안 낮은 자세를 유지하며 나의 결핍과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 생각들 속에서 지금은 아무도 없는 강의 둘레길을 걷고 있다. 우선은 미루고 미루었던 소설집 출간을 10월 전에는 해야겠지, 우울한 감정도 우울한 감정이 필요한 글에 쏟아내고 무작정 기쁜 마음도 행복한 글에 쏟아내야겠다. 지금은 이 사소한 감정조차 아까우니까. 난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아마 글을 놓지는 못할 것이다. 글을 쓰는 이 순간이 이토록 행복하니 말이야. 그리고 나보고 선생님, 꼭 다시 올 거죠? 약속해달라던 그 아이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강의자료를 만들어야겠지. 그다음은 뭘까? 이 넓은 강에 끝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그 끝이 있다면 되도록 성정동으로 이어지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남녀 사이엔 친구란 없는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