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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스 Jul 21. 2023

생명은 소품이 아니다: 미디어 속 동물학대

언제부터인가 역사나 전쟁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를 보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곳에 등장하는 수많은 말을 비롯한 비인간 동물들 때문이다. 물론 CG(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가상 동물 재현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무수히 많은 동물이 영화나 드라마를 비롯한 미디어에 이용되어 온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 동물들은 자신들이 이용되도록 끌려온 촬영현장에서 제대로 된 복지와 권리를 보장받아 왔을까? 또한 지금까지 여러 영화에서 재현된 동물이 현실의 동물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부분도 있지 않을까? 질문을 던져본다.



미디어 속 동물학대는 사실 늘상 존재했다. 하지만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이슈가 된 것은 지난 해 방영된 대하사극 <태종 이방원>로 인한 말의 죽음이었다. 주인공 이성계가 말을 타고 달리던 중 낙마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 하나를 찍기 위해 제작진은 말의 앞다리를 밧줄로 묶은 채 말을 달리게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평생 달려오듯 달린 말은 ‘의도한 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얼마나 당혹스럽고 고통스러웠을까. 다친 후 말은 적절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닷새 만에 죽임 당했다. 애초에 치료 계획도 없었을 것이다. 비인간 동물은 촬영 현장에서 소모되고 말 소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고로 제작진은 이 말을 살해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말을 자신과 같은 생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장면이 방송에 나간 뒤, 카라와 동물자유연대 등 동물보호단체들은 KBS 드라마 제작진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올해 3월 제작진 3명이 검찰에 송치되었다.) 드라마의 방영 중지와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13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로 미디어 속 동물학대 문제가 공론화되어 사회적 인식과 현장의 변화를 불러일으킬 줄 알았는데 그 영향은 미미했다. 아직도 비슷한 관행은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동물자유연대는 넷플릭스 드라마 <썸바디> 1화와 티빙 드라마 <장미 맨션> 4화에 등장하는 고양이 학대/살해 장면을 언급하며 미디어 속 동물 학대의 심각성을 역설한다. 실제로 고양이를 죽이지는 않았다하더라도 촬영 과정에서 고양이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와 생존의 위험을 느꼈을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미디어 속 비인간 동물은 생명으로 존중받지 못한다. 인간의 유희를 위한 장면만에 쓰일 소품, 도구일 뿐이다. 찰나의 장면을 위해 함부로 다루어지고 목숨이 희생되기까지 한다. 최소한의 법적 안전망도, 촬영 가이드라인도 부재한 상황이다. 


미디어는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미디어는 현실에서 비인간 동물을 어떻게 다루어도 되는지 알려주는 사회화의 부분이 되기도 한다. 미디어가 생명을 하찮게 다룬다면 이는 현실 속 동물학대를 정당화하는데 기여하게 될지도 모른다. 미디어에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고, 고양이를 학대하는 것을 하나의 자극적 연출 요소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현실 속 동물 학대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미디어 속 자극적인 동물 학대 장면들이 요즈음 급증하고 있는 고양이 학대 사건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 훌륭한 사례가 등장했다.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에서 재현되는 비인간 동물들이다. 이 영화에서 동물은 귀여운 유희 거리로 납작하게 소비되거나 학대 당하는 등 자극 요소로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착취당하고 있는 실험동물의 참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동물실험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하고 비윤리적인지 폭로한다. 더 나아가 동물실험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린다. 영화는 동물이 몸에 새겨진 번호로, 실험체로, 소품으로, 도구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생명임을 똑똑히 일깨우고 있다. 동물권단체 페타(PETA)는 이 영화를 올해의 최고의 동물권 영화로 선정하기도 했다.


미디어 속 동물학대는 반드시 금지되어야 한다. 그를 위해 여러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먼저 동물이 등장해야 하는 장면에는 되도록 CG(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불가피하게 꼭 동물이 등장해야 한다면, 미디어 출연 동물 보호 가이드라인(현재 동물자유연대에서 힘쓰고 있다)이 제작되고 모든 미디어 업계 종사자들이 이를 따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시 강력한 법적 처벌이 필요하다. 만연한 생명 경시 문화는 사라져야 한다.


생명은 소중하다. 도구가 아니다. 소품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촬영장에 동원되고 있는 비인간 동물과 그 장면에 영향을 받을지도 모르는 비인간 동물들이 피해를 받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의 복지와 안전을 위핸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이 글을 마친다. 



참고자료



글쓴이: 토란

책에 파묻혀 사는 비건 퀴어 에코 페미니스트.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며 사랑스러운 존재들과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모든 존재의 평화를 바라며 글을 읽고 쓰고 목소리 내고 있습니다. 현재는 제주 강정마을에서 제주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평화, 동물권, 페미니즘, 환경, 퀴어 등 온갖 경계를 넘나드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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