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스 Aug 20. 2023

로드킬, 길 위의 죽음을 만나다. (픽션)

그들을 애도하는 방법


나는 비가 쏟아지는 숲에서 태어났다.



비는 한 달간 지속되었지만, 나를 돌보는 나와 비슷하게 생긴 커다란 존재의 도움으로 죽지 않았다. 이 짧은 삶 속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연약한 존재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 말고도 지금 막 태어난 수많은 생명체는 누군가의 돌봄으로 살아남았다. 그 돌봄이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돌봄은 당연하지 않다.



한 달 동안 내리던 비가 잦아들자,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이 더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나무 밑에 가기, 흙을 조금 파서 배를 가져다 대기, 내민 혀에 흐르는 침이 하늘로 날아가는 그 감각에 집중하기 뿐이었다. 너무나 더웠지만, 함께 태어난 형제자매들과 숲을 뛰어다니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나를 돌보는 존재는 힘들어 보였다. 다리를 절뚝이며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어떤 이유로 다리를 절뚝이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많이 지쳐 보였다. 가지고 오는 음식은 점점 줄어갔다. 나는 근처에 있는 곤충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배고픔을 달래는 목적도 있었지만, 재밌는 놀이 같았다.



평소 처럼 숲을 누비다가 큰 돌을 만났다. 검은색인 그 돌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었다. 끝이 없었다. 잠시 큰 돌의 경이로움에 빠져있다 보니 어떤 것이 눈앞에 지나갔다. 무엇인지 보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무언가였다. 그것은 다리가 없었다. 솔방울 같은 것이 몸뚱이에 달려있었고 그것이 데구루루 구르며 몸뚱이를 빠른 속도로 이동시켰다.


커다란 검은 돌 맞은편에 내가 좋아하는 잠자리가 있었다. 잠자리를 잡기 위해서 뛰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뛰었다. 검은 돌은 너무나 뜨거웠다. 그래도 잠자리가 먼저였다. 잠자리만 보며 달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끼익 -’


그 솔방울 달린 몸뚱이가 빠른 속도로 나에게 다가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검은 돌 위에 누워있었다. 내 몸에서 버찌를 먹을 때 나오는 즙이 흐르고 있었다. 버찌와 다른 것이 있다면, 달콤한 냄새가 아닌 비린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그 검붉은 액체는 나를 적셔갔다. 그 액체가 조금씩 마르며 이 뜨거운 돌 위가 아주 조금 시원해졌다. 의식이 점점 사라져 갈 때, 다리 없는 회색 몸뚱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 몸뚱이는 불빛을 뿜으며 멈추어 섰다.


그 몸뚱이 안에서 두 발로 걷는 동물이 나왔다. 그중 한 동물이 말했다. “아기 너구리 같은데” 그들이 나에게 걸어오는 모습을 보며 나는 잠들었다. 깨어날 수 없는 잠에 든다고 생각하지도 못 한 채.





[사람의 이야기] 

남원에서 춘천으로 가는 길, 길 위에서 죽은 아기 너구리를 만났습니다. 피가 굳어있지 않은 아기 너구리였습니다. 그 너구리를 주변 풀숲에 두고 꽃을 꺾어 준 뒤, 친구들과 애도했습니다. 벌써 일주일 전의 이야기지만 아직도 그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몇 개월 살지 못한 그 생명을 애도합니다. 



글쓴이: 누

2012년부터 동물과 관련된 활동을 시작했고 생명과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시민단체 직원으로 2년의 시간을 보냈고 호주에서 2년의 시간을 보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방랑하며 살아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