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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책 May 31. 2023

아빠는 외계인

  아빠는 주책방으로 가는 문을 옆으로 밀기 시작했다.

  “아빠, 또 놀러 올게. 안녕.”

  “잘 가. 시현아. 게임 너무 많이 하지 말고.”

  내 뒤로 책장은 닫히고 내가 알던 주책방의 모습이 보였다. 아빠 집의 문을 열면 주책방으로 갈 수 있다는 건 아직도 믿기 어렵다. 주책방에는 로봇 아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현아. 이제 집에 가자.”

  오늘은 어린이날. 특별한 날이니까 엄마와 함께 특별히 아빠의 집에 갔다. 아빠의 집은 여러모로 특별했다. 지구가 아니라 다른 행성에 있었으니까. 책장의 특정 부분을 잡고 옆으로 밀면 아빠의 집에 갈 수 있다.  

    

  아빠는 외계인이다. 행성 이름이 길어서 차마 내가 외울 순 없지만 지구와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에서 살고 있었다. 그 행성은 인류와 같은 모습의 외계인이 살았다. 아빠는 겉보기에는 여느 지구인과 다르지 않다. 

  지구보다 기술의 발전이 빠른 행성이라 다른 우주의 행성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볼 수 있는데 아빠는 하필이면 지구에 빠져 버렸다. 그것도 지구의 자전거에. 아빠는 자전거가 엔진이 없는 무해한 교통수단이라 생각해서 반했다고 했다. 자전거를 직접 보고 싶어 일하던 회사에 지구 시간으로 10년 휴가를 내고 무작정 지구로 여행을 떠났다. 

  아빠의 자가용 우주선을 지구 시간으로 한 달 정도 타고 2009년 대한민국 창원에 도착했다. 2008년부터 창원에서 공영자전거가 운행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자전거가 더 궁금했다고 한다. 공영자전거를 수리하는 부서에서 아빠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원하던 대로 실컷 자전거를 만지며 수리했고 그곳에서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퇴사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아빠와 사내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도 퇴사는 참지 못해 엄마는 이직했다. 그 사이 아빠는 공영 자전거의 일이 늘어나면서 경륜 공단의 직원이 되어 정비가 아닌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엄마와 아빠는 4년 연애 끝에 2013년 결혼했다. 엄마는 아빠와 연애를 시작하면서 외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이 세상에 별일은 다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별별 책들을 읽었던 엄마라 그랬던 것 같다. 아니면 엄마가 아빠를 많이 사랑했나 보지.

  2015년 1월 28일 내가 태어났다. 육아하면서 지친 엄마는 2019년 꿈을 이루어 보겠다며 주책방을 준비했고, 아빠는 공사하는 김에 아빠의 집과 주책방을 연결했다. 워낙 전기 소비가 많아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아빠의 집에 다녀올 수 있었다. 

  아빠의 행성은 지구와 대기가 달라 엄마와 나는 아빠의 집에서만 생활했다. 다른 행성에 가면 뭐 하나. 아빠의 집 말고는 다른 곳을 갈 수도 없는데. 아빠에게 우리가 외출할 방법을 연구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너무 바쁜 것 같다.

  지구로 온 지 십 년째 되는 2019년. 지구에 더 머물고 싶었던 아빠는 고향의 회사에 휴가 연기 신청을 했지만 복직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엄마의 신경질을 뒤로한 채 아빠는 자가용 우주선을 운전해서 아빠의 행성으로 떠났고 바쁜 일 때문에 우리를 자주 보기도 어려웠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아빠는 더 이상 지구에 올 수 없었다. 아빠의 집으로 갈 수 있는 책장을 잘 만들어 둔 것 같다. 

  그리고 아빠는 로봇 아빠를 남겨두었다. 아빠와 똑같은 로봇 아빠는, 아빠 대신 회사에도 다니고 엄마의 신경질도 받아주고 살림도 하고 나도 키웠다. 아빠와의 연락도 로봇 아빠를 통해 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로봇 아빠도 있고, 아빠의 집으로 가는 책장도 있으니 크게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오늘이 어린이날이라고 엄마와 함께 아빠의 집에 갔지만 나는 박강우랑 저녁 8시에 게임을 하기로 했다며 빨리 가겠다고 했다. 엄마와 아빠 둘만의 시간도 좀 주고 해야지. 어린이도 눈치가 없으면 안 된다. 나는 아홉 살이지만 외계인인 아빠의 아이기도 하니 반쯤은 외계인이니까 지구의 보통 아홉 살 아이보다는 조금 더 똑똑하다. 뭐. 그렇다고 생각한다.

  주책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로봇 아빠와 함께 집에 갔다. 박강우랑 통화하면서 신나게 <운명> 게임을 하고 있는데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주책방으로 가는 문이 안 열려서 지금 바로 주책방에 가서 확인 좀 해보라고. 로봇 아빠와 함께 책장을 밀기 시작했는데 맙소사. 열리지 않았다.

  “엄마. 주책방에도 책장이 안 열려.”

  “아. 이거 아무래도 문이 고장 났나 보다. 아빠가 수리하는 시간이 빠를지. 아니면 엄마가 우주선을 타고 지구에 가는 게 빠를지. 확인을 해봐야 될 것 같다고 하네. 당분간 엄마는 못 갈 것 같은데. 주책방 창고에 로봇 엄마 좀 켜볼래? 엄마 대신 로봇 엄마랑 있어. 시현아. 미안해.”     

  엄마는 일하기 싫으면 주책방에 로봇 엄마를 일하게 했다. 주책방에 손님이 많이 없으니 가능했지. 로봇 아빠를 그렇게 부러워하더니 아빠를 달달 볶아서 로봇 엄마도 만들게 한 엄마. 로봇 엄마의 전원을 켜보니 배터리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도대체 로봇 엄마를 얼마나 쓴 거야. 엄마? 이 정도면 로봇 엄마의 주책방이 아닌가 싶은데.

  “엄마, 로봇 엄마 배터리가 많지 않아서 하루 정도만 켜지겠는데. 충전해야겠어.”

  “어쩔 수 없지. 내일 토요일만 일하고 당분간 휴업한다고 공지 좀 해줘. 주책방 인스타그램 할 줄 알지? 부탁해.”

  하아. 로봇 엄마 충전하려면 며칠 걸릴 텐데. 충전을 빨리하려고 로봇 아빠와 로봇 엄마를 아빠의 집에 종종 보냈었는데 이제는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나는 로봇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로봇 부모님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혼자가 아니야. 

    

  5월 9일 화요일. 5월 9일 화요일부터 5월 11일 목요일까지 주책방은 임시 휴무를 한다고 공지했다. 그럴듯한 핑계가 있어야 할 것 같아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했다고 썼다가 손님들 걱정시키게 했다고 엄마한테 혼났다. 

  혹시나 몰라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병원 식단을 찾아서 부지런히 올렸다. 엄마가 환자복을 입고 링거 부분 위로 창을 들고 있는 주 장군 합성 사진을 올렸다. 올리고 나서 걱정하는 디엠을 많이 받았다. 손님들 걱정하지 마시라고 웃긴 사진을 올렸건만 이런 반응이라니. 인생은 예측불허. 엄마한테는 비밀!

  5월 11일. 충전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 로봇 엄마는 주책방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로봇 엄마는 모임을 진행한 적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마침 목요일 저녁에 바로 <슬픔의 방문> 독서 모임이 있었다. 집에서 로봇 엄마의 모임 진행을 걱정하면서 지켜보았다. 웬일로 참석자는 세 분밖에 되지 않았고 소규모 인원이라 오히려 다행이었다. 엄마가 로봇 엄마인지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로봇 엄마는 글쓰기를 싫어했다. 하지만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려면 일요일까지 글을 써야 했다. 이번 글쓰기 주제는 영화. 로봇 엄마는 <이터널 선샤인>을 보며 겨우겨우 글을 완성했다. <영원한 햇살>을 읽어줬더니 엄마는 반전이 없다고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그냥 그대로 하라고 했다. 소재는 좋다며 다음 기회에 후속 편을 써보겠다고 다짐하던데 글쎄.     


  결국 문을 빨리 고칠 수 없어서 엄마는 아빠가 새로 산 우주선으로 지구에 돌아온다는 소식을 전했다. 전보다 우주선이 더 좋아져 지구까지 한 달은 안 걸릴 것 같지만 최대한 빨리 올 거라고 하면서 출발했다. 차 운전도 못하는 엄마가 걱정되는데, 새로 산 우주선이야 자동 운전이니 잘 도착하겠지. 

    

  엄마와 내가 제일 걱정했던 5월 16일 화요일 저녁 7시 주주글방 글쓰기 모임. 참석하신 분들은 <영원한 햇살>이 엄마의 글인지 몰랐다는 평이 많았다. 역시 엄마의 글은 반전이 중요한가. 아. 로봇 엄마! 그래도 들키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엄마가 로봇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로봇 엄마는 교통사고로 등이 아파 오래 쓸 수 없었다는 핑계를 잘도 대며 <영원한 햇살> 후속 편을 쓰겠다고 했다. 자기가 안 쓸 것 같으니까 당당하게 말하네. 이럴 때 보면 엄마와 로봇 엄마는 똑같다. 다음 주제인 우주는 엄마가 정했다던데, 로봇 엄마가 우주에는 주책방이 나올 거라며 또 뻔뻔하게 말했다. 

  엄마가 보고 싶다. 어서 돌아와. 엄마!   

   

  California Dreamin’ 혜림 님, 나타샤 준태 님, 더할 나위 없는 태연 님, 상상 지은 님, 터널 그 너머 수연 님 주주글방 친구들에게 질문합니다.

     

  <아빠는 외계인>은 엄마가 쓴 글일까요? 로봇 엄마가 쓴 글일까요?

  월요일 아침 주주글방 메일은 엄마가 보냈을까요? 로봇 엄마가 보냈을까요?

  그리고 주주글방에서 지금 여러분과 함께 있는 사람은 엄마일까요? 로봇 엄마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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