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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책 Jun 06. 2023

하늘을 나는 자전거

  “여정아. 저기 잠깐 체육관에 가지 않을래?”

  “무슨 일인데? 체육관에 뭐 있어?”

  “사실은 체육관에서 연진이랑 사라, 혜정이가 네 자전거를 타고 있어.”

  “걔들은 내 자전거를 왜 타고 있냐? 박동은. 너한테 오라고 시키든? 참나.” 

    

  혼자 점심을 먹고 있는데 연진에게 인스타그램 디엠이 왔다. 어김없이 체육관으로 가야 했다. 6월의 햇살은 무척이나 뜨겁다. 오늘은 무슨 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다가 여정이 자전거를 훔쳐 타고 여정의 반응을 보자는 거다. 행동파인 혜정이 보관대에서 잠금장치를 잘라 여정의 자전거를 가지고 왔다. 연진이 자전거를 타다가 수업이 끝나면, 나에게 어떻게든 여정과 함께 체육관으로 오라고 했다. 입학 후 여정에게 말을 거는 건 처음이었다. 

  여정은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이 동네로 이사 왔다. 나는 여정이 무서웠다. 중학교 때부터 연진과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으니까 내 따돌림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여정은 나와 반대로 같은 반인 우리 모두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었다. 이름도 마여정. 전에 다녔던 중학교에서 마녀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했고 우리에게도 그 소문은 퍼졌다. 늘 어두운 분위기로 모두를 압도했다. 연진은 여정의 그런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들었을 것 같다.      

  “야. 박동은. 왜 이제 오냐? 보고 싶어 죽는 줄.”

연진이의 죽는 줄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죽을 것 같다.

  “문연진. 너 왜 내 자전거를 타고 있어? 보관대에 잠갔는데 네가 훔친 거야?”

  “여정아. 말 무섭게 한다. 친구끼리 잠시 빌려 탄 거 가지고 그러니? 아. 빌렸다는 말은 안 해서 그런가? 네 자전거 좀 탈게.”

  “친구는 무슨? 순서가 틀린 거 아냐? 내 자전거에서 어서 내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역시 여정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대였다. 연진은 여정 바로 앞에 위협하면서 자전거를 세웠다.

  “그래. 내렸다. 어떻게 하려고?”     


  여정은 오른손으로 연진의 목을 잡고 천천히 들어 올렸다. 깡마른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힘이 나올까. 무릎 정도 높이로 점점 들어 올리던 중에 연진은 버둥거렸고 사라와 혜정이 다가와 여정을 말렸다. 나는 넋을 놓고 이 장면을 보았다.

  “너네, 내 별명이 마녀인 거 알지? 앞으로 나나 동은이 앞에 알짱거리면 다 개구리로 만들어 버린다. 어서 꺼져.”

  사라와 혜정은 연진을 데리고 정말 꺼져버렸다.


  “박동은. 넌 머 저런 애들한테 당하고 있냐? 또 쟤들이 괴롭히면 말해.”

  “너 정말 마녀야? 힘 진짜 세다.”

  “마녀는 무슨. 내가 힘이 좀 센 것뿐이야. 저런 애들은 무력행사를 해야 정신을 차리지. 집에나 가자.”

  여정은 자전거를 타고 체육관 밖으로 나갔다.    

  

  오늘 겪은 일 덕분에 도저히 잠은 오지 않았다. 불 꺼진 방안, 책상 앞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연진, 사라, 혜정 일당들이 인스타그램에 모두 나를 언팔로우 했다는 걸 알았다. 디엠 지옥은 이제 끝인가. 이 마법 같은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 없어 새벽 세 시가 되어도 눈은 말똥말똥했다. 그러다 창문 밖에 움직임이 보였다.

  우리 집은 아파트 1층이라 내 방에서는 앞 동 입구가 보였는데 여정이 나왔다. 우리 앞 동에 사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여정은 자전거 보관대로 성큼 가더니 자전거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이 시간에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우유 배달이라도 하나. 

  푸른 밤, 여정은 하늘을 나는 자전거를 타고 있다. 자전거는 점점 높이 올라가서 보이지 않았다. 체육관에서 있었던 일로 하늘을 나는 자전거를 봐도 크게 놀랍지 않다. 여정은 정말 마녀일까. 아니면 마법 같은 일을 만나서 헛것을 본 걸까. 나는 이제 따돌림에서 영원히 벗어나고 싶다. 마법처럼. 학교에 가면 여정에게 먼저 다가가 반갑게 인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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