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을 지나 다시 봄이 왔다. 지난해 문화재단으로 이직해온 후 가장 먼저 보았던 클래식콘서트 ‘다시, 봄’도 한 사이클을 돌아 다시 열렸다. 원주에 와 물밑으로 연신 다리를 휘젓는 오리처럼 버틴 지가 일 년. ‘한 것도 없이 나이만 먹는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어왔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법 많은 이슈가 생겨나고 저물은 한 해였다. 생애 첫 전셋집을 구하고, 첫 입사 동기가 생기고, 15kg를 감량해보고, 말똥말똥한 눈빛으로 보던 계약서류를 동태눈깔로 보게 되고 등등..
치악예술관 콘서트홀로 향하기 전 꽃집에 들렀다. 그동안 여러 재단 기획공연을 보러 갔지만, 꽃다발을 구매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콘서트를 기획한 사업담당자에게 줄 요령이었다. 며칠 전 나는 사업담당자로부터 이번 콘서트의 준비과정에서 생긴 일화들을 전해 들었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담당자의 눈동자에 열의가 빛났다. 이런 눈빛을 동경했기 때문에 문화재단에 입사했었지-라고 순간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무대를 만들 수 있을까 치열하게 고민한 눈빛.
무대에서 빛나는 예술인과 달리 문화행정인력의 노고는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계획안 작성, 섭외, 무대DP, 홍보, 티켓판매, 음향조명, 하우스어셔, 큐시트 작성 등등. 하나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움직인 노고를 알아주는 관객이 있을까. 알아주길 바라는 것도 어불성설일 것이다. 앙코르는 무대 위 사람들을 향한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있음을 표시하고 싶었다.
올해 ‘다시, 봄’은 총 2부로 구성되어있었다. 이음아트프로젝트와 피아니스트 이들림이 1부를, 팬텀싱어 길병민과 박현수가 2부를 장식했다. 클래식에도, 음악에도 무지한 나로서는 이번 콘서트가 훌륭했는지 어땠는지를 입에 담기 어렵다. 다만 듣기에 좋고 즐거웠다. 이음아트프로젝트가 봄바람을 연주할 때는 괜히 설렜고, 박현수가 ‘시간에 기대어’를 부를 땐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저 이런 시간이 가치 있었다는 말 외에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일 년 중 대부분은 많은 직장 중 하필 문화재단으로 이직을 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 특히 급여날과 월요일에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물게 자랑스러운 날이 있는데, 바로 이런 날이다. 함께 공연을 관람한 친구에게 ‘이거 우리 재단 기획공연이야’라고 은근한 자부심을 녹여 이야기하는 날. 좋은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