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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rrie Oct 29. 2021

2022년 달력 세트를 샀다

2022년을 준비하는 나만의 자세


매년 10월 중후반이 되면 내가 반드시 치르는 의식 같은 것이 있다.


그건 바로 다음 해 달력 세트를 구매하는 것이다. 여기서 ‘달력 세트’라 함은 벽걸이 달력, 탁상 달력, 다이어리를 의미한다.


이런 나를 보며 주변인들은 세 가지의 의문을 가지곤 한다.


1. 왜 내년 달력을 벌써 사는 거야?


우선, 이건 아주 우연적인 계기로 생겨난 일종의 버릇이자 의식이다.


언젠가 한 번 내가 사고 싶은 달력이 품절되어 사지 못한 경험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 그 당시가 12월, 완전한 연말이었을 것이다. 사람 심리가 사지 못한다고 하면 더 사고 싶은 법이다.


나는 모든 소셜커머스, 오픈 마켓 등을 수시로 들락날락하며, 재고가 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필사적으로 결제 성공한 건들은 모두 취소가 되어 환불되기 일쑤였다.


어찌나 답답했던지 배달 음식조차 무조건 어플로만 사는 내가 생산업체에 직접 전화까지 하기 이르렀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허탈하고 절망적이었다. 해당 제품은 전국적으로 품절이 되었으며 더 이상 생산 계획이 없다고 했다.


결국 난 그해, 마음에 들지 않는 디자인의 달력을 써야 했다. 달력은 적어도 1년은 써야 하는 물건인데! 아쉬움이 그득그득했다.


그때부터 나는 매년 10월부터 다음 해의 달력을 주문한다. 뭐든지 느릿느릿하고 태평한 내가 드물게 매우 마음이 급해지는 순간이다. 달력 3종 세트를 쟁여두고서야 나는 비로소 안정을 되찾는다.


2. 공짜로 주는 달력도 많은데 왜 그걸 돈 주고 사?


요즘은 달력을 구하고자 하면 쉽사리 구할 수 있다.


부모님이 은행에서 받아오시는 것도 있고, 심지어 치킨을 시켜도 달력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나는 언제나 돈을 주고서 달력을 구입한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빨간 머리 앤’을 몹시 좋아하기 때문이다. 달력이나 다이어리는 언제나 빨간 머리 앤이 그려진 것으로 통일시키려 노력한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 다음으로 자주 보는 것이 달력이나 다이어리인데, 이왕이면 내가 원하는 캐릭터로 채울 수 있다면 기쁘지 않겠는가. 다이어리 꾸밀 때 쓰는 스티커까지 빨간 머리 앤인 건 덤.


게다가 벽에 걸고, 책상 위에 두는 것만으로도 인테리어 효과가 있어 책상에 앉을 때 아주 조금이지만 행복해진다.


tmi지만, 작은 일에도 행복해서 조잘조잘 수다를 떠는 빨간 머리 앤이 나는 참 좋다.


3. 왜 달력이 3개나 필요한 거야?


그건 달력마다 쓰임새가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벽걸이 달력은 업무적인 연락을 하며 쉽게 날짜를 확인해야 하는 경우에 유용하다. 스케줄이 꼬이면 곤란한 문제가 생기곤 하는데, 무언가가 잔뜩 적힌 탁상 달력은 날짜가 쉽사리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고개만 돌리면 바로 커다랗게 날짜가 적힌 벽걸이 달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다음, 탁상 달력은 한 달 동안의 거시적인 계획을 세울 때 쓰인다. 병원 진료라든가, 원고 마감일이라든가, 친구와의 약속이라든가, 공모전 마감이라든가. 언제나 책상 위에 세워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수시로 확인하며 일정을 체크하기 쉽다.


마지막 다이어리는 하루하루의 미시적인 계획을 기록하는 용도로 쓰인다. 무계획의 끝, INFP인 내게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다. 아마 나는 다이어리가 없다면 나태해져 종일 딴짓을 하고 말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오늘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을 모두 적어놓고, 하나씩 해치울 때마다 줄을 길게 긋는다. 모든 일정을 해낸 날엔 웃으며 잠이 들고, 그렇지 못한 날엔 반성을 하며 더 부지런한 내일을 다짐한다.


이러한 이유들로 나는 10월부터 다음 해 달력 세트를 구매하는 것이다.


달력을 구매하고 나면 실감이 된다. 아, 이번 해도 이제 끝이 나고 있구나. 나는 또 나이가 한 살이 더 먹겠구나.


새로운 달력을 갖게 된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해가 지나간다는 것은 제법 슬픈 일이다.


특히 아무런 성과도 없었던 이번 해는 더욱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올해의 빼곡한 다이어리를 보면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자책을 하는 대신 스스로를 토닥여주기로 했다. 누가 뭐라해도 넌 열심히 했잖아. 실패 속에서도 얻은 게 있겠지.


그리고 새로운 목표를 세워나가려 한다.


지독한 현실을 맞본 나는 더 이상 허황된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벼락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거나,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 로맨스 소설 같은 연애를 하고 싶다거나.



그저 올해는 노력한 만큼만 인정받을 수 있기를.


나의 병이 더 나빠지지 않고 지금처럼만 유지되기를.


취미로 시작한 타로카드로 간단한 운을 점쳐볼 수 있게 되기를.


나의 주위 사람들이 탈 없이 건강하기를.



이게 나의 내년 목표이다.


그 소박한 소망들이 가장 어려운 것이기도 한 것을 깨달을 수 있는 2021년이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님들의 2021년은 어땠나요?


또, 2022년을 어떻게 준비하시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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