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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이 Apr 22. 2021

오남매 장녀로 산다는 것은

단디 살자.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 가족관계에 대한 설문조사가 이뤄졌었다. 형제가 몇인지, 내가 몇째인지에 대한 간략한 질문이었다. 외동부터 5남매까지 물어봤고, 반에서 날 포함한 두 학생이 마지막에 손을 들었다.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 친구는 5남매 중 자신이 셋째라고 했고, 솔직히 조오금 부러웠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성년이 되면 그 선택의 대한 책임을 본인이 짊어져야 한다. 난 동생들이 어려 그 책임을 친구들보다 조금 이르게 짊어졌었다. 다행히도 내 동생들은 착하고 똑똑해서 내가 짊어진 짐을 빨리 알아차려줬다. 맞다, 내 동생들도 그 나이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남들보다 조금 이르게 짐을 짊어진 것이다.


하루는 동생들과 한잔하며 대화를 나눴다.


"누나는 너무 혼자 하려 해."


"맞아, 늦장 좀 부려도 되는데."


"난 누나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 그동안 고생 너무 많이 했잖아."


"맞아, 언니는 뭐든 잘하니까 사랑하는 일을 하면 더 잘할 거야."


듣기만 해도 따듯하고 마음이 한편이 몽글몽글해지는 위로들이었다. 업어서 키우고 달래며 키우던 동생들이 어느새 나보다 훌쩍 키도 커졌고, 주량도 세졌다. 게다가 달달한 위로의 말도 얹어줄 수 있고, 우울한 나를 위해서 함께 술잔도 기울여준다.


하지만, 그 당시 동생들의 위로에도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그저 내 동생들이 착해서 말을 예쁘게 해 줬다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그건 내 경기도 오산이었다.


생각해보니 내 동생들은 생각보다 꽤 비평가들이었다. 아닌 일에는 당당하게 "언니, 그건 언니가 너무했다."라고 면박을 주기도 하고, "헐, 누나 그렇게까지 할 일은 아닌듯해."라며 절제해주기도 했다. 내 동생들이고 착하다는 이유와 가족이란 이유로 내가 하는 행동에 무조건 편을 들지도, 오케이를 외치지도 않았다. 그렇게 자란 동생들을 보며 엄마의 말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똑똑해서, 어른들 말에 무조건 따르지 않아. 그게 설령 부모 자식 지간이어도 말이야.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난 생각조차 못한 부분들인데도 아이는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더라고."


공감. 왜냐면, 난 엄마의 아이이지 않은가. 그러니, 내가 자라온 걸 뒤돌아보기만 해도 엄마의 말이 맞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나 역시도 아주아주 어렸을 적부터 어른들의 행동을 보며 판단을 내려왔었으니까. 유치원생 때 선생님의 행동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던 기억들이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저 선생님은 왜 말을 저렇게 하지?'


'어라? 분명 저런 행동은 잘못된 거라고 배웠는데. 저래도 돼?'



아마, 이 이야기를 동생들에게 한다면 잔소리를 피하긴 어려울 것이다.


"내가 그렇게 누누이 말했는데, 누나는 이제까지 그게 다 사탕발림인 줄 알았던 거야?!"


"언니 생각을 해봐. 우리가 언니한테 예쁜 말만 해줘서 어디에 써? 냉정하게 생각해봐."


라며 득달같이 달려와 잔소리를 할 테지. 그럼 난 또다시 "응, 그렇네."라며 멋쩍은 웃음을 짓겠다.


당분간 마음 편하게 동생들의 위로를 받을까 한다. 아니, 계속해서 동생들의 위로를 받고 싶다면, '단디' 살아야 한다. 오늘도 단디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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