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찌꺼기가 좋은 비료이나 아니냐 하는 데는 이견이 많다. 나는 전문적인 지식은 갖추고 있지 않지만, 경험상 커피 찌꺼기나 남은 커피물이 좋은 비료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커피 찌꺼기를 잘 말려 흙에 섞어준 다음 퇴비로 활용하거나 남은 커피에 물을 많이 타서 큰 화분에 부어주기도 한다.
물론 이에 우려를 표하는 드루이드들도 많다. 영양 부족, 병충해, 화분 이염 등 그 이유도 다양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커피물을 부어주었다고 문제가 된 화초는 여태 없었다. 커피박(=커피찌꺼기)는 장점만 있는 비료도 아니고,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는 것만 못할 수 있다. 다만, 가능성이 풍부한 비료이고, 그냥 폐기물이 될 수도 있는 커피 찌꺼기를 사람들이 많이 활용했으면 하는 마음에 소개해본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405잔이었다고 한다. 전 세계 1인당 소비량 152잔의 두 배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국내 커피 산업이 크게 발달하면서 커피 찌꺼기인 커피박 또한 한 해 평균 12만톤 이상 발생하고 있다고! 커피 한 잔을 추출하는데 사용되는 커피콩은 비율로 따지면 고작 0.2%.... 나머지 99.8%가 폐기물이라고 한다.
커피박은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하는 쓰레기다. 이 커피박을 처리하는데 드는 사회적, 경제적 비용은 생각보다 상당하다. 특히 커피찌꺼기를 그대로 땅에 매립할 경우 온실가스인 메탄이 발생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될 수도 있단다. 그렇다면 커피 찌꺼기를 버리지 않고 활용할 순 없을까?
이미 농업진흥청에서는 커피박을 비료로 연구, 개발한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커피박에는 카페인, 폴리페놀 등 다양한 기능성 물질이 함유되어 있다. 특히 질소가 풍부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다른 영양소들은 다소 부족할 수 있기 때문에 균형잡힌 비료를 100% 대체할 수는 없다. 그래서 다른 부재료를 함께 넣어주면 좋다.
커피박에 부족한 영양분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부재료를 넣어 숙성시키면 유기물과 항균력이 풍부한 퇴비가 만들어진다. 커피박 퇴비에 농진청이 추천하는 부재료로는 깻묵, 쌀겨, 스태비아 입상, 버섯폐배지 그리고 한약재찌꺼기가 있다. 커피박과 부재료를 적정 비율로 섞어 부숙 및 후숙 과정을 거치면 된다.
커피박 퇴비를 토양에 처리한 후 모종을 정식한 결과, 배추는 15배, 상추는 2배 정도 생육이 좋아졌다고 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커피퇴비가 식물의 병해충 발생 억제에도 효과를 보였다는 점이다. 커피박 퇴비를 사용한 결과 엽채류에 자주 나타나는 시들음병, 뿌리썩음병 등이 크게 줄었고, 잿빛곰팡이병 등에 대한 항균력도 증가했다고 한다.
농업환경이 아닌 일반 가정에서는 기타 부재료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흔히 EM발효액을 넣어 발효시키기도 한다. 아니면 미리 흙에 섞어두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숙성시키면 된다. 시판 가정용 퇴비의 사용방법도 이와 같다. 흙에 섞어두면 수 개월 후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커피박 비료는 흙에 섞어 사용하거나 가볍게 웃거름으로 올려주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 더 간단하게는 커피찌꺼기를 물에 2~3일 우려 액비처럼 부어주어도 좋고, 남은 커피가 있다면 충분한 물에 타서 가끔 뿌려주어도 된다.
커피박은 민달팽이 퇴치에도 활용할 수 있다. 커피박에는 폴리페놀 성분이 들어있어 달팽이 제거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집에 있는 친환경 달팽이 퇴치약의 주성분을 확인해보니 카페인이라고 떡하니 적혀 있었는데, 역시나 같은 원리인 것 같다.
커피박과 맥주를 활용해 달팽이 트랩을 만들어 설치하면 엽채류에 큰 피해를 주는 달팽이류 방제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하니 참고해보면 좋겠다.
하지만 주의할 점도 있다. 커피콩을 볶는 과정에서 휴믹산이라는 물질이 방출되는데, 이 산은 토양에 가벼운 산화작용을 일으킨다. 따라서 커피 비료는 토양의 산성도를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추출이 끝난 커피는 중성에 가깝기 때문에 지나치게 많은 양을 사용하지 않는 한 큰 문제는 없다.
커피박 비료는 과다하게 사용하는 것보다 토양 표면을 가볍게 덮어준 후 갈퀴로 잘 긁어주거나 아예 처음부터 흙과 섞어 사용하도록 한다. 커피 입자들이 뭉쳐 배수를 나쁘게 할 수 있고, 습기가 계속 차면 곰팡이가 생기기도 한다. 특히 젖은 커피 찌꺼기를 화분에 바로 털어주면 화분이 곰팡이로 뒤덮이는 지름길이 된다.
다만, 커피 찌꺼기가 분해되면서 발생하는 곰팡이는 비병원성으로 나쁜 곰팡이가 발생하는 것을 오히려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고 하니 지나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흙으로 잘 덮어주면 대부분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또한, 커피비료의 카페인은 씨앗의 발아율을 낮추고 유묘의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에 너무 어린 식물에는 권하지 않는다. 텃밭 잎채소나 큰 화분 식물에 사용하기를 추천한다. 약간의 산성이 있어 진달래, 블루베리 등 산성 토양을 좋아하는 식물에도 좋다.
농부처럼 질좋은 유기물 퇴비를 흙에 채워주고 싶어도 가축분퇴비는 가정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다양한 기능성 성분과 영양을 지닌 커피박은 새로우면서도 지속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커피 찌꺼기 폐기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지구에 매일 커피를 마셔댄 작은 빚을 갚는 마음으로 커피박 비료를 꼭 사용해보았으면 좋겠다.
참고자료
1. 농업진흥청
https://www.nongsaro.go.kr/portal/ps/psb/psbo/vodPlay.ps?mvpNo=1382
2. 실은 나도 식물이 알고 싶었어 / 안드레아스 바를라게 / 애플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