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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대곰돌이 Jul 03. 2022

돈 없는 파이어족의 여행일기

EP5. 칠레에서 다시 만난 새로운 시작

Write & Photo by 거대 곰돌이


부 매니저가 온 뒤에야 멀리 돌아다닐 수 있었다. 쿠스코 어딘가 버스회사 미팅을 가면서 쉬었던 곳.

가장 바쁜 연말, 연초는 무사히 잘 보냈지만, 이후로도 한국 여행객들에게 남미는 겨울 성수기의 연속이라서 바쁜 날들이 계속 이어졌다. 실적도 개선되었고, 내가 오기 전부터 미리 출국이 예정되어 있었던 보조 매니저가 쿠스코에 도착한 뒤, 근무 여건도 어느 정도 개선이 되었다. 그대로 괜찮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으로 유지되었으면 참 좋았겠지만, 안정화를 시킨 이후 추가적인 문제는 계속 발생했다.


먼저 직원 문제였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되지만, 이미 고용되어 있던 현지 직원들도 일부는 남미 특유의 게으른 성향이 다분했다. 쿠스코 생활 마지막까지 함께한 여직원 하나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부 그런 성향을 갖고 있었는데, 내가 오기 이전에는 손님이 많이 없었고, 사회생활 경험이 적은 '전 매니저'에 의해 직원은 방만하게 관리가 되다 보니 그런 부분이 티가 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순식간에 손님이 몇 배로 늘어나니까, 그동안 하는 일의 업무강도에 비해서 페루 쿠스코의 평균 급여 대비 많은 급여를 받고 있던 직원들이었는데, 일이 바쁘니 돈을 더 받아야겠다고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가장 많은 시간을 커버해주던 한 직원은 대체 인원을 세워놓을 시간 여유를 주지 않고 일을 그만두었다. 부 매니저가 쿠스코에 도착하기 전에 직원 이탈 후 공백이 생긴 게 대략 보름 정도였는데, 그 기간에는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나중 일이지만, 본인이 도망쳐놓고 나중에 연락을 해서 자기는 퇴직금을 받아야겠다고 계속 연락을 하기도 했었다. 오냐오냐하던 전 매니저의 작품이었는데, 중간에 문제를 일으키고 떠난 너에게 퇴직금은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시키는데 너무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슬기로운 당직 생활을 함께 하던 침낭

야간을 책임지던 직원도 있었는데, 그 직원도 일이 힘들다는 문제로 그만두었다.


그 직원의 주된 일은 야간 당직과 아침 조식을 책임지는 일이었는데, 손님이 많다는 것은 새벽에 투어를 가는 인원이 더 많아져서 아침부터 북적북적하다는 것, 조식을 주던 호스텔이고 조식을 안 먹으면 도시락을 싸줬기에 그런 일들이 몇 배가 많아졌다는 것, 새벽에 체크인하겠다고 들어오는 인원, 늦은 저녁까지 먹고 마시는 인원 등, 야간에 챙겨야 하는 인원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야간 직원은 손님이 많아져서 자기가 바빠지는 것, 그게 불만이었다. 예고 없이 그만둔 직원과 마찬가지로 급여를 올려달라는 요청도 했는데, 급여를 올려달라는 요청을 들어줄 순 없었고, 그래서 결국 그 직원도 이탈을 했다. 다만, 그 직원은 그래도 양심이 있어서 부매니저가 입국하는 날까지만 일을 도와줄 수 있는 직원을 구해줬고, 잠깐 현지 직원을 임시로 몇 주 둔 이후에 부매니저와 번갈아가면서 야간 당직을 섰다. 이 야간 당직 때문에 업무 강도도 엄청 올라갔는데, 다행히 부매니저가 온 이후에 잠자리 제공하고 대신 간단한 일을 보조해주는 여행객을 추가 직원으로 들일 수 있어서 야간 당직을 3교대로 했고, 마지막 몇 주간은 그래도 수월하게 일할 수 있었다.


물론 가장 문제는 영업 실적의 문제였다. 실적을 거의 최대치만큼 개선을 했지만, 기대만큼 엄청난 실적 향상을 기대할 수 없었다. 한 달 동안 거의 만실에 가까운 여행객들이 들렀던 기간이 있었고, 현지 직원들도 다 이탈해서 급여지출도 많이 줄어든 바, 좋은 실적을 기대할 수 있겠다 싶어서 그때의 실적을 계산을 해봤는데, 예상 밖으로 이제야 겨우 마이너스를 면한 수준이었다. 난 기본급이 적고, 실적으로 인센티브를 받는 계약이었는데, 역대 최대 매출을 올렸다고 회사에 수익을 나누자고 하기에도 부끄러울 실적이었다. 쿠스코의 성수기가 지나면 다시 방문객은 큰 폭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실적으로는 더 이상의 개선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여전히 '이렇게 손실을 보면서 계속 운영을 해야 하는가?'라는 초기의 내 입장은 최대 실적을 달성한 이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쿠스코 생활 자체와 기본급만 받고 있는 것도 큰 불만은 없었지만, 책임의식을 갖고 봤을 때 이 사업은 일찌감치 접었어야 하는 게 맞았다. 그래서 아마 이때쯤부터 회사와 이야기를 해서 사업 자체를 정리하자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칠레의 산티아고

손님이 많아져서 개인 시간도 없고 몸도 마음도 다 피곤했던 시점이었고, 무엇보다 사업 자체에 대한 고민과 후속 체류에 대한 고민을 해야 되는 시점이라서, 일에서 벗어난 시간이 필요했고, 부 매니저가 온 뒤에 업무에 적응을 한 뒤에 회사에 쉴 수 있는 날을 요청했다. 그동안 고생한 것을 알았기에, 회사는 교통비 정도는 지원해줄 수 있다고 해서, 2월 초에 짧은 휴가를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페루 내에서 여행을 하거나 쿠스코에서 비교적 가까운 볼리비아 등을 다녀와도 되지만, 또 다른 고산지대로 가기는 싫었고, 페루 안으로 휴가를 떠나기도 싫었고, 그래서 가까운 나라인 칠레로 잠깐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를 다녀오기로 결정했는데, 쿠스코 기준으로 페루 밖 국가 중에 고산지대가 아닌 도시 중에 제일 가까운 큰 도시를 가고 싶었고, 한식당, 한인마트, 한인 미용실 등 당시에 필요했던걸 가장 많이 갖춘 가까운 지역이었기 때문에 최종 목적지는 산티아고로 결정하고 항공권을 발권했다.


쿠스코를 떠난 아직 '친구'였던 여자 친구와는 꾸준히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누는 편이었고, 그녀에게 2월에 휴가를 떠날 계획을 알렸는데, 생각하지도 못한 그녀의 스케줄을 그때 알 수 있었다. 그녀도 다음 여행을 위해 우연히 내 휴가 날짜와 비슷한 날에 산티아고로 갈 예정이라는 것이다.


보통 페루로 시작해서 브라질로 여행을 끝내는 사람은 브라질을 마지막으로 남미 대륙을 떠나게 되는데, 입도 스케줄이 까다로운 칠레의 이스터섬이 그녀의 남미의 마지막 일정이었고, 미리 예약을 해뒀던 항공편 스케줄이 내 휴가 날짜와 얼추 맞았던 것이다.

그녀와 함께 간 칠레의 한 식당.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는 식당이다. 연어회로 유명한 집.

우리의 스케줄은 이랬다. 내가 먼저 칠레에 도착을 했고, 며칠 뒤에 그녀가 도착하고, 다시 그녀가 먼저 이스터섬으로 떠나고, 그 이후에 나는 쿠스코로 돌아가고, 내가 떠난 뒤에 다시 그녀는 산티아고로 돌아와서 남미를 떠난 다음 여행 목적지였던 호주&뉴질랜드로 떠나는 스케줄이었다.


그렇게 다시 못 볼 수도 있었을 그녀를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칠레에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고, 나는 즐거운 마음에 같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아파트 느낌의 주방이 딸린 에어 비앤비 같은 숙소를 하나 빌렸다. 먼저 칠레로 건너가서 그녀를 기다렸고, 결국 한 달여 만에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전망 좋았던 산티아고의 숙소
숙소의 TV에 넷플릭스가 연결돼서 한국 드라마를 오래간만에 같이 봤다. 이태원 클라쓰

일정이 겹치는 며칠 동안 쿠스코에서부터 기대했던 '첫 데이트'같은 산티아고 여행을 했다. 난 아메리카 대륙 여행시기에 이미 한 번 다녀왔던 곳이라서 어느 정도는 익숙한 곳이었고, 숙소 역시 당시에 머물러봤던 숙소라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일상적인 여행이었다. 유명한 관광지를 다니고, 유명한 식당을 다니고, 같이 밥을 해 먹고, 오붓하게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칠레 여행의 결과, 회사와 본격적으로 매장을 정리하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나눌 것을 결심했고, 그렇게 한국을 다시 돌아갈 결심을 다시 했다. 뉴질랜드와는 다르게 길지 않았던 해외 체류 일정이었다. 


그리고 멋도 하나도 없는 고백이었지만, 내가 그녀보다 얼마나 늦게 한국으로 돌아갈지는 당시에는 예상을 하지 못했지만, 그녀와 친구 관계 이상의 관계를 한국에서 계속 이어가기로 했고, 그래서 그녀는 칠레에서부터 '친구'가 아닌 '여자 친구'가 되었다. 그래서 사귀기로 한 날짜는 서로 칠레에서 만난 날로 서로 기억하게 됐다.

이스터섬에서 돌아온 그녀가 밥 굶을까 봐 챙겨놓은 식재료들.

그녀는 그렇게 간단한 짐을 챙겨서 이스터섬으로 떠나고, 그녀의 큰 캐리어는 숙소의 창고에 보관을 하고 이스터섬을 다녀온 뒤에 그 짐을 찾아서 다시 체크인하는 것으로 숙소 추가 예약까지 마무리한 뒤에 나도 쿠스코로 떠나게 되었다. 


쿠스코에 돌아온 뒤, 본격적으로 회사에 폐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회사 입장에서도 초기 투자금을 많이 들였던 사업이었기에,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는데, 그렇다고 계속 마이너스를 늘려가며 사업을 이어갈 순 없었다. 많은 대화를 회사와 나누게 되었고, 회사도 내 주장이 어느 정도 일리 있다고 생각을 해서 회사가 투자했던 비용으로 마련된 숙소 내의 현물자산들을 토대로 최대한 회수금을 챙겨보기로 하고 슬슬 폐업 준비를 하기로 했다. 침구나 침대 프레임, 기타 여러 가지 판매할 수 있는 것들을 중고로 판매할 계획을 하며 차근차근 폐업을 준비했는데, 하지만, 여유 있게 준비하려던 계획은 하나의 이슈로 완전히 틀어지게 되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때문이었다.


- EP5 FIN -


안녕하세요. 블로거 거대 곰돌이입니다.


이 브런치의 시리즈 '돈 없는 파이어족의 여행일기'는 코로나로 2020년 3월 미국에서 입국한 이후, 다시 해외로 떠날 예정인 2022년 12월 여행 글을 위한 인트로 성격의 글입니다. 본격적인 여행 글은 여행 출발이 임박해지는 시점에 본격화될 예정이고, 그 이전에 연재되는 글들은 제목처럼 파이어족으로 새롭게 살아보려고 시도 중인 블로거 거대 곰돌이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생업 블로거로의 도전을 시도하게 해 준 밑거름이 되어준 과거의 많은 여행 이야기들과 코로나 시절 이어간 국내여행은 지난 2년여 동안 제 블로그에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의 블로그를 방문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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