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들이 협찬을 많이 받는다는 이야기는 계속 들어왔지만, 그게 어떤 방식인지는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기존에 알던 것은 그저, 뉴스 기사나 커뮤니티 등에서 나오는 이야기뿐이었는데, 블로거의 안 좋은 이미지, 예를 들면 식당에서 협찬을 요구하며 갑질을 했다거나, 그런 이야기들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 블로거를 '블로거지'라고 부른다거나 하는 그런 내용만 알았지, 블로거가 어떻게 협찬을 받고 광고를 하는지 정확한 프로세스는 몰랐다. 사실 그런 편견도 무지에 의한 것이었을 것이다.
협찬을 구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의외로 너무나 단순했다. 자신의 영업장을 홍보하고 싶어 하는 업주들은 엄청 많았고, 업주들이 직접 블로거들을 모집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블로그 마케팅을 대행해주는 업체들이 생각보다 꽤 많았다. 식당을 예로 든다면, 마케팅 업체들은 전국의 다양한 식당을 섭외해서 마케팅 비용을 받고 그들의 식당을 온라인으로 홍보를 해주는데, 그 홍보를 해주기 위한 블로거를 자사의 플랫폼을 통해서 온라인으로 '모집'을 하는 것이었다.
업체가 자사 홈페이지에 식당별로 모집 기한을 설정해서 모집글을 생성하면, 회원으로 가입된 블로거는 모집별로 리뷰에 관한 세부사항을 확인하고 각자 응모를 하는 것이고, 업체는 그렇게 지원받은 블로거 중에 리뷰어를 선별해서 블로거를 식당으로 보내서 식사를 제공하고, 블로거는 그 식당을 방문해서 무료로 식사를 하고 그 후기를 자신의 블로그에 업로드를 해주는 방식으로 홍보를 해주는 것이다. 바로 '체험단'이라는 것이었다.
한 체험단 운영 업체의 모집글
체험단을 운영하는 다양한 업체를 통해 다양한 먹거리 체험에 지원할 수 있었고, 경쟁을 통한 선발이 되면 리뷰 마감까지 약 2~3주 정도의 기간이 주어지는데, 그 기간 안에 식당을 방문해서 식사를 하고, 식사를 하면서 열심히 사진을 찍어온 뒤에 식당에서 식사한 내용을 가이드라인에 맞춰서 잘 리뷰해주면 체험단으로 해야 할 일은 끝이 난다. 사실 이렇게만 본다면, 블로거들은 그저 일을 했을 뿐이니까 블로거들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당연한 마케팅 방식이었다.
4월부터 대략 4개월여 동안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얻은 결과물은 대략 일일 방문자 300여 명 정도의 수치였다. 블로그는 그 일일 방문자가 성과를 대변하는 편인데, 4개월 차에 많으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수치였다. 그 수치를 바탕으로 대략 8월부터 열심히 체험단 신청을 했다. 대략 2~3주 동안 경쟁을 뚫지 못하고 계속 탈락을 거듭하면서 신청을 이어갔고, 선정이 된 이후에 9월 초에 처음으로 손님이 아니라 블로거로 식당에 방문할 수 있었다.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주요 메뉴로 취급하고 있는 회기역 쪽에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고, 그렇게 주문할 수 있는 3만 원의 예산으로 식사를 주문해서 먹었다. 첫 체험단이었다.
첫 체험단은 아니지만, 보통 지원이 잘되는 체험단은 이 정도의 식사를 무료로 할 수 있다.
첫 체험단을 했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식당 입구에서부터 사진을 찍고, 메뉴를 찍고, 밥을 먹고 식당의 방문 인증을 처리하고 나오는 게 너무 어색했는데, 당시에 선정된 식사 예산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 식사를 좀 더 잘 먹으려고 추가 비용을 5천 원 정도 결제하고 근사하게 식사를 하고 나왔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면 '맛있었다', '맛없었다'와 같은 평가를 서로 나누며 식당을 떠나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블로거로 식당을 방문한 뒤에 나눴던 후기는 '생각보다 이거 괜찮은데?'였다. 그동안 많은 고민이었던 블로그의 수익 모델이 새롭게 생겨난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블로거로 식당을 방문하는 게 계속 어색하고 원하는 시기에 체험단이 선정되지 않아서 만나는 계획을 세우는 것도 참 어려웠지만, 체험단으로 외출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계속 블로그를 신경 써서 업로드했고, 그 결과 처음 체험단에 선정되었을 때보다 블로그가 조금 더 성장하면서 기존에 선정되던 빈도수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체험단에 선정될 수 있었다. 여전히 탈락을 하는 빈도수는 높았지만, 블로그를 관리하면서 한 달에 4~5차례 정도는 유연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 이전처럼 시시콜콜하게 만나서 데이트하고 오는 그런 세상이 아니게 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그래서 우리의 만남은 '체험단'이 선정된 날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체험단에 선정되는 날에 맞춰서 데이트 약속을 하고, 그렇게 체험단을 하러 나가는 날에 데이트를 해서 밥은 블로그를 통해서 내가 마련하고, 후식으로 카페를 간다면 음료값은 여자 친구가 지불하는 소비 패턴이 자연스럽게 정립되었다. 내가 식사를 마련하는 것 이외의 돈은 여전히 여자 친구가 전부 지불하고 있어서 여전히 금전적인 부담은 컸지만, '우리가 생각보다 다양한 음식들을 아주 잘 먹고 다니고 있으니까 더 이상 그런 돈 씀씀이에 대해서 부담을 갖지 말라'는 여자 친구의 말 때문에, 나도 그런 부분에 익숙해지기로 마음먹었고, 현금의 소비 패턴도 점점 적응이 되었다.
이후 체험단을 시작한 뒤, 일상생활에서 이제 내가 돈을 쓰는 일은 없어졌다.
확실한 현금지출은 이제 교통비, 휴대폰 비용 등으로 고정이 되었고, 교통비는 네이버의 광고비용으로 대충 충당이 되었다. 그래서 잉여로 남아있던 현금은 전부 주식 투자를 한다던지, 놀고 있는 돈이 일을 할 수 있게 투자를 하며 여윳돈을 더 마련해보려고 했는데, 지출이 없어진다고 금융투자에 나머지 돈을 올인해서 큰 수익을 얻을 수는 없었다. 기존에 갖고 있던 잉여현금 자체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출을 줄이고, 더불어 부수입을 늘렸어야 했는데, 체험단으로 일상생활에 대한 부분을 해결한 뒤에는 다양한 앱테크나 온라인 부업 등을 많이 찾아보게 되었다.
그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서 했던 것이 바로 '데이터 라벨링'이라는 사업이었다. 데이터 라벨링은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하는 사업에 일환으로 진행되는 건데, 쉽게 말해서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드는 사업이었다.
이전에 바둑기사 이세돌 씨와 대결했던 알파고가 전 세계의 수천만 개의 기보를 학습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을 텐데, 데이터 라벨링은 그렇게 수집된 기보 자료와 같은 학습자료를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있게 가공하는 일이었다. 'labeling'이라는 단어를 보면 알겠지만, 쉽게 말해서 이미지와 같은 자료에 '라벨'을 붙이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이미지 출처. 구글 검색
데이터 라벨링을 대표하는 것은 쉽게 말해서 '박스를 그리는 일'이었는데, 정해진 규칙에 따라 이미지 내의 사물에 박스를 치는 작업을 생각하면 된다. 박스를 친 이미지를 인공지능이 보고 그 박스 안의 사물이 무엇이다, 라는 것을 학습하는걸 인공지능 개발과정에서의 학습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샘플로 가져온 이미지처럼 한 이미지에 저렇게 많은 라벨링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미지 한 장을 처리하는데 몇십 원 정도의 수익이 발생했고, 집중해서 하면 시간당 국가가 정한 최저시급 정도는 벌 수 있었다. 물론 일거리가 매일매일 8~9시간씩 할 수 있는 일거리가 나오진 않고 일주일로 치면 많으면 하루 이틀 치가 최대였지만, 집에서 가만히 놀고 있는 것보다는 더 생산적인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스스로는 인형 눈알 붙이고 봉투 접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데이터 라벨링을 했었다.
그렇게 블로그 체험단으로 지출을 줄이고, 온라인 부업으로 소일거리를 계속 유지하던 중에, 큰 수익이 발생하는 일이 하나 생겼다. 바로 데이터 라벨링의 원천자료인 '사진'을 납품하는 일이었다.
납품했던 사진의 압축파일. 납품했던 업체명은 몇 개 제외하고 모자이크 처리. 대략 압축 파일 하나에 200여 장 정도의 사진이 들어있다. 대략 8천여 장 정도의 사진을 납품했다.
데이터 라벨링도 관련 업체의 시스템을 이용해서 하는 것이었고, 누군가에 의해서 이미 촬영된 사진에 라벨을 붙이는 일을 시스템을 통해서 하는 건데, 그렇다면 당연히 그 원천자료가 되는 사진도 어딘가에서 수집을 했어야 했을 것이고, 그런 납품 프로젝트가 업체의 모집 공고에 나온 것이다. 하루에 몇백 원, 몇천 원의 소일거리를 하다가 기간도 길고 단위도 큰 프로젝트를 발견했기에, 훨씬 좋은 가성비라서 주저 없이 참여를 신청했다.
대략적인 업무는 이랬다. 지역을 배정받아서 리스트를 받고, 해당 리스트에 방문해서 그 지역을 규정에 맞춰서 대량의 사진을 찍어서 납품하는 것이다. 참여자를 거주지를 기준으로 받아서 사는 지역으로 업무 신청을 해서 선정되었고, 그렇게 거주지의 다양한 포인트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촬영했다.
** 참고로 이 브런치의 제목과 함께 올려놓은 어린이 천문대의 사진도 납품했던 사진 중 한 장이다.
데이터 라벨링과는 상관없는 사진. 여자 친구의 자차를 소개하기 위한 사진.
사진 촬영을 하며 다니면서 문제가 하나 생겼는데, 대중교통으로는 도저히 다닐 수 없는 지역이 많았던 것이었다. 지하철역 근처, 동네 골목의 어떤 시설 등, 다니기 편한 지역이 있는 반면에, 어디의 절, 농촌 관련 지역, 역사적인 인물의 묘비 등 대중교통이 없어서 차로 많이 가야 하는 지역도 많았다. 다양한 지역을 효과적으로 이동해야 했는데, 그건 대중교통보다는 자가운전이 압도적으로 기동력이 좋았다. 만약 대중교통을 고수했다면 기한을 지키지 못했었을 것이다.
때마침, 여자 친구는 가족을 통해서 중고차를 하나 받아서 자가운전자가 되어있었고, 나는 이 사업을 통해서 최대 1~2주의 기간 동안 사진을 다 납품하면 최대 200만 원 가까운 경비를 벌 수 있었다. 그래서 숙박비 & 식비 & 유류비, 수고비 등을 수익금에서 빼서 다 부담해도 돈이 남으니까, 나와 여행을 같이 하면서 여행 중에 얼마 동안은 같이 사진 찍고 다니자는 걸로 여자 친구와 협의했고, 그렇게 급하게 촬영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주말을 끼고 다녀온 여행이었는데, 주말은 상관없었지만 여자 친구의 회사는 당시 재택근무를 하던 회사이긴 했고, 휴가도 내고 떠나긴 했지만, 그래도 평일 낮에는급한 일에 대해서는 스텐바이 했어야 했고, 주말은 편하게 여행하고 평일에는 내가 사진을 찍으러 포인트에서 이동하면, 여자 친구는 차에서 대기하며 급한 일이 생기면 노트북에 휴대폰을 테더링 해서 업무를 보는 식으로 서로의 일처리 방식을 협의한 뒤에 여행을 이어갔다.
어찌 됐거나 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공식적으로 국내에서 떠나는 우리의 첫 여행이었다.
데이터 라벨링 여행의 가장 마지막 방문지에서 촬영한 사진
100% 촬영만을 위해 떠난 여행은 아니었고, 대략 4~5일간의 여행기간 중에 일부는 진짜 여행으로 떠났는데, 여행을 시작한 첫날에는 거주지역에서 촬영을 조금 한 뒤에 파주로 이동해서 포천을 거치며 저렴하게 예약한 숙소와 지역의 체험단을 몇 개 엮어서 관광을 다녔고, 그 여행 이후에 다시 거주지역으로 돌아와서 대략 하루 이틀 정도 빠듯하게 일정을 잡아서 사진 촬영을 하며 일정을 마무리했다. 최종적으로 120만 원 정도의 벌이, 코로나 시기 이후에 단일 금액으로는 가장 큰 벌이가 한 번에 들어왔고, 그렇게 촬영 여행은 마무리가 되었다.
낮에는 촬영을 다니고, 저녁엔 저렴한 모텔에서 하루의 촬영분을 정리하고, 블로그 할 일이 있으면 블로그 하고, TV 보고, 대화하고, 굉장히 일상적인 여행이었지만 그 여행에서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 블로그를 하면서 어느 정도 금전적인 혜택이나 보조가 있다면 국내도 여행을 다닐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사진 납품 프로젝트로만 본다면 단발적인 프로젝트였던 걸로 인해서 결국 한 번 밖에 참여를 못했지만, 전체 여행을 을 통해서 블로그를 하며 다닐 수 있는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견해 낸 것이다.
진짜 여행이었던 파주, 포천 여행에서도 체험단을 몇 개 신청해서 다녀왔는데, 서울을 벗어난 지방의 체험단은 생각보다 선정이 잘 된다는 점, 그렇게 식사만 해결을 해도 여행 경비를 굉장히 크게 아낄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항상 돈을 부담하는 게 멀리 장단기로 여행을 떠나기에 부담스러웠던 점이었는데, 그중에 식사를 체험단으로 해결하게 된다면, 여행 경비를 크게 아낄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낸 것이다.
그렇게 데이터 라벨링 여행을 통해서 체험단으로 하는 여행에 대한 경험을 쌓았고, 체험단을 활용한 여행은 그다음 해의 봄에 본격적인 시도를 하게 된다.
- EP9 FIN -
안녕하세요. 블로거 거대 곰돌이입니다.
이 브런치의 시리즈 '돈 없는 파이어족의 여행일기'는 코로나로 2020년 3월 미국에서 입국한 이후, 다시 해외로 떠날 예정인 2022년 12월 여행 글을 위한 인트로 성격의 글입니다. 본격적인 여행 글은 여행 출발이 임박해지는 시점에 본격화될 예정이고, 그 이전에 연재되는 글들은 제목처럼 파이어족으로 새롭게 살아보려고 시도 중인 블로거 거대 곰돌이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생업 블로거로의 도전을 시도하게 해 준 밑거름이 되어준 과거의 많은 여행 이야기들과 코로나 시절 이어간 국내여행은 지난 2년여 동안 제 블로그에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의 블로그를 방문해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