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쓰레기』
『전쟁 쓰레기』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시공사, 2008
잠재적인 적으로서의 포로
소설의 제목인 ‘전쟁 쓰레기’란 포로의 처지에 대한 은유다. 소설의 대부분은 화자인 유안이 겪었던 포로 생활로 채워져 있다. “항복하지 마라. 목숨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포로로 잡히지 마라.” 소설에서 언급되는 공산주의 군대 행동 수칙 7조다. 전쟁은 적과 아군이라는 이분법을 극대화한다. 이 이분법에서 인정받고 기억되는 것은 전사자 아니면 귀환용사뿐이다. 엄밀히 말해 귀환포로는 적은 아니지만 적에게 사로잡혔음에도 살아남은, 잠재적인 적이며 수치스러운 부역자로 취급된다.
한국전쟁 당시 포로로 잡힌 중국군은 중국 귀환을 원하는 공산당 계열과 대만 귀환을 원하는 국민당 계열로 나뉘어 수감되었다. 포로가 될 바엔 죽으라는 명령은 격전지보다 오히려 포로수용소에서 더 강력하게 작용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포로가 살아남기 위한 방안은 자신이 적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한, 극단적 자기증명이었다. 상대 진영의 이들을 가혹하게 박해하거나 자신의 몸에 상대 진영의 지도자를 모욕하는 문신을 새긴다. 유안은 가족이 있는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국민당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국민당의 지지자들은 강제로 유안의 몸에 ‘FUCKING COMMUNISM’이라는 문신을 새긴다.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극단적 상황에서, 국가의 명령은 마치 문신처럼 기입된다. 오성홍기를 수용소에 게양하거나 수용소장을 납치하는 등의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유안이 지적하듯, 죽음에 대해 이득을 보는 것은 당사자인 포로가 아니라 전쟁의 지도자들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기증명이라는 절대적인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한 이들은 스스로를 검열하며 자신을 배반자처럼 여긴다. 혼란스러워하며 두려워한다. 적도 아니고 아군도 아닌 포로의 처지야말로 적과 아군이라는 이분법이 들어맞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적과 아군의 이분법은 포로의 몸에서 가장 폭력적으로 작동한다.
기억을 압살하는 국가
자기증명에는 완결이 없다. 국민당 지지자로서 수많은 공산당 지지자들을 죽였던 류타이안은 중국에 스파이로 파견되었다가 체포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공산당 수용소의 지도자였던 페이 인민위원은 귀환 후에도 결국 부역자라는 꼬리를 떼지 못한다. 한국에서도 동일했다. 북한에 포로로 잡혔다 가까스로 귀환했던 한국군이나, 남한 국민이 되기를 선택한 북한군 포로는 석방 뒤에도 잠재적인 적으로 취급되었고, 끊임없는 국가의 감시 속에서 살아야 했다. 전쟁이 끝나고도 국가는 국민에게 계속 자기증명을 요구했다. 사회 내부에서도 계속 적과 아군을 구분하고 국민 스스로 자기를 검열하게 되는 사회, 이런 사회야말로 바로 전쟁의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다.
“이것을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내 존재의 깊은 곳에서 나는 그들 중 하나인 적이 결코 없었다. 나는 그저 내가 경험한 것들에 대해 썼을 뿐이다.” 소설의 마지막 대목이다. 전쟁에 대한 해석은 전쟁을 겪은 이들의 수만큼 많을 것이기에, 울퉁불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가가 내놓는 전쟁기억, 즉 ‘우리의 이야기’는 언제나 매끄럽다. 국가는 전쟁에 대한 해석을 독점하면서 유안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전쟁 기억을 압살한다. 학살은 두 번 일어났다. 처음에는 육신의 죽음으로, 다음에는 기억의 죽음으로.
‘나’들의 이야기
저자인 하 진은 70년대에 만주에서 군 생활을 겪었다. 그 후 한참이 지나 이 소설을 집필하고서야 적에게 사로잡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소설 집필을 위해 미국과 한국, 중국의 전쟁 해석을 연구했고, 또한 한국전쟁에 참전한 많은 중국군 포로의 전쟁 경험을 들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은, 국가에 의해 압살되기를 거부하고도 끝끝내 살아남은, 수많은 ‘나’들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 모든 이야기를 더 많이 드러내고 알리는 것이야말로, 기억에 대한 학살을 거부하는 행위이며 전쟁의 원리에 대한 저항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