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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욱 Aug 12. 2021

누가 기억의 전쟁을 일으키는가?

영화 《기억의 전쟁》

『기억의 전쟁』, 이길보라, 2020

*(인용한 영화의 문구가 실제 영화의 문구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


전쟁기억과 기억전쟁

“한국 정부는 공식 입장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쟁기억에는 위계가 있다. 어느 나라든 역사를 교육할 때 그 나라가 겪은 전쟁의 이야기를 포함시킨다. 하지만 거기에는 포함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어떤 이야기는 드러나고 어떤 이야기는 드러나지 않는다. 기억의 위계다. 전쟁기억의 위계는 기억의 전쟁으로 이어진다.


베트남전쟁은 어땠을까. 1999년 당시 한겨레21 베트남 통신원이었던 구수정에 의해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사실이 보도되었다.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의 출발이었다.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의 연속선상에서 영화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2018년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이하 시민평화법정)이 열렸다. 2019년에는 학살 피해자이자 유족인 응우옌 티 탄이 103명의 피해자를 대표해 직접 청와대에 학살에 대한 진상조사와 피해회복을 청원했다. 청원은 국방부로 이관되었다. 국방부는 학살 사실이 확인되지 않으며, 한국-베트남 정부의 공동 조사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소위 ‘공식기억’이라고 불리며 정부에 의해 대표성을 위임받는 전쟁기억은 동질적인 기억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적의 침략-승리와 패배-나라를 위한 희생 같은. 모든 전쟁기억이 동질적일 수는 없다. 전쟁에는 군인뿐 아니라 수많은 당사자들이 존재한다. 전쟁기억은 다양한 당사자가 지닌 이질적인 기억의 집합이다. 동질에 포섭되지 못한 기억들은 어떻게 되나. 스탠톤(Gregory Stanton)은 그가 설정한 제노사이드의 10단계 중 마지막 단계를 부정(denial)이라 했다.1) 학살의 기억을 부정하는 것 역시 제노사이드라고 본 것이다. 기억전쟁에서, 어떤 기억은 그야말로 압살 당한다.


기억전쟁의 이분법

“그들을 만나서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영화 《기억의 전쟁》은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에선 세 명의 증언자가 등장한다. 응우옌 티 탄, 응우옌 런, 딘 껌. 응우옌 티 탄은 비장애인 여성이다. 한국군에 의해 일가족을 잃었다. 응우옌 런은 시각장애인 남성이다. 역시 한국군에 의해 일가족을 잃었고, 한국군 주둔지였던 땅에서 농사를 짓다 지뢰 파편에 맞아 시력을 잃었다. 딘 껌은 농인 남성이다.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는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학살의 현장을 목격했다. 여성, 시각장애인, 농인. 모두 사회적 소수자의 위치에 있다. 단일한 내러티브로 나타나는 전쟁기억은 주로 참전군인, 그 중에서도 수뇌부의 시각을 반영한다. 군 수뇌부는 전쟁의 ‘현장’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전쟁의 세부 과정을 평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간주된다. 전쟁의 현장을 전장과 전장에 있었던 사람만으로 국한하는 것으로부터 위계 설정이 시작된다.


탄, 런, 껌의 위치 역시 전쟁의 현장이었다. 영화에선 탄과 런이 한국군에 의해 죽은 가족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추모는 적극적으로 기억하기다. 그들이 겪은 전쟁의 현장을 잊지 않겠다는 행동이다. 수십 년 동안 지냈을 제사는 그들의 기억에 신뢰를 부여한다. 그들의 증언은 힘이 있다. 그들의 증언은 오로지 전방에만 현장의 지위를 부여하는 전쟁기억의 위계에 구멍을 낸다. 전방과 후방 중 어느 곳이 전쟁의 현장에 더 부합하는지를 논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전방과 후방이라는 구분을 타파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을 만나서는 말할 수 없었다.” 탄의 고백이다. 탄이 증언을 위해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그는 베트남전 참전군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면 군인들이 학살을 인정할 거라고 생각했다 고백한다. 하지만 참전군인을 목격한 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증언하는 자의 입을 틀어막는 이유는 무엇인가. 학살을 부정하는 참전군인의 근거들은 대동소이하다. 자신들은 베트콩, 즉 적을 죽였다는 것. 작전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는 것, 즉 적을 죽이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다는 것. 전쟁에서 적을 공격하는 것은 정당화된다. 적의 증언은 그 자체로 음해이며, 적의 언어는 자신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적은 대화의 상대가 아니기에, 그 입을 틀어막아도 된다.


시민평화법정의 증언대에서 탄은 말한다. “진실을 인정해야 고통과 상처가 누그러질 수 있다. 혹시 여기에 당시 학살에 가담한 군인이 있다면 손을 잡고 나에게 사과해 달라.” 적에게 사과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사과는 화해를 위한 과정이다.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누그러뜨리고, 다시 관계를 맺기 위해 꼭 필요하다. 탄은 대화를 청하지만, 대화는 거부당한다. 여기에서 적과 아군이라는 전쟁의 이분법을 계속 유지하기 원하는 자는 누구인가?


기억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너희가 듣기를 원하니 사실대로 말해주는 수밖에”

런은 자신의 집에서 제사를 드릴 때는 아주 능숙하게 향을 피운다. 하지만 하미마을 차원의 위령제에서는 향을 볼 수 없어 옆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그는 학살이 몇 월 며칠에 일어났는지, 당시 마을 어디에 사람들이 몇 명 있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한다. 곱씹고 되뇌었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테고, 그렇게 해야만 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도 계속 제사를 드렸던 것처럼.


런은 고백한다. “이미 다 지나갔다.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누가 죗값을 갚겠는가. 아버지의 책임은 아버지가 져야 한다. 아버지의 책임을 아이가 질 수는 없다. 내가 너희에게 분명히 말했다. 그걸로 됐다. 너희가 들기를 원했기에 다만 너희에게 말했을 뿐이다.”


시민평화법정은 민간 차원의 법정이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실제 법정에 준하는 형식을 갖춰 진행되었다. 사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엄정한 법정의 풍경. 시민평화법정을 통해 증언자는 법정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준 증언 장면은 법정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았다. 증거주의에 입각한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받는 것은 주로 공식 문서나 감정을 배제한 채 엄격한 사실에만 근거한 증언이다. 탄은 증언을 하면서 울먹였다.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채로 증언을 진행했다. 심지어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영화는 전쟁의 과정이나 의의 같은, 전쟁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시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울먹임, 개인의 감정, 농인인 런의 경우 손짓과 표정, 고갯짓처럼 파편화된 증언을 드러낸다. 영화는 시민평화법정을 그 파편화된 증언과 동일선상에 위치시킨다. 이러한 위치 설정이 그들의 증언을 엄정한 증거능력을 가진 것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는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오로지 ‘공식적’인 것만을 증거로 인정하는 법정의 지위를 끌어내리려는 시도에 더 가까워보인다. 이 지점에서, 소위 말하는 ‘공식기억’과 이질적이고 파편화된 기억의 위치는 전복된다.


듣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만들었다. 들음은 파편에 생기를 되찾아준다. 살아있는 목소리가 되게 한다. 듣는 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하는 자와 눈을 마주친다. 증언자는 증언하면서 당시의 기억을 다시 떠올린다. 당시의 모습을 다시 이곳으로 가져온다. 영화에서 탄의 증언 장면은 우리가 상상할 법한 법정의 풍경처럼 고요하지 않다. 울먹이는 증언 뒤로 총소리와 군홧발 소리, 학살의 현장에 불었을 바람 소리가 들린다. 관객도 함께 그 모든 것을 듣는다. 그렇게 기억은 듣는 자에게도 현실화된다. 낭자한 피, 시체를 묻은 자리를 다시 파헤쳐버려 햇볕에 말라가는 주검들. 그 사이로 관객을 이끈다.


듣기를 원한 자에게 말하는 자가 응답했다. 분명히 말했고, 분명히 들었다. 이제 응답은 들은 자의 몫이다.


주1 2020년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연속기획강좌 <시민의 눈으로 군대를 보다> 1강 한국전쟁과 제노사이드(강사 : 강성현) 내용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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