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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욱 Aug 12. 2021

솔직함으로서의 인권운동

『주전장』, 『김복동』, 『거짓말 읽는 법』

영화 『주전장』, 미키 데자키, 2018
영화 『김복동』, 송원근, 2019
책 『거짓말 읽는 법』, 베니타 슈탕네트, 돌베개, 2019


“우리는 무엇이 거짓말인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정말 무엇을 뜻하는지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으리라.” 『거짓말 읽는 법』의 서두에서, 저자는 자신이 주목하는 거짓말의 성격을 분명히 한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거짓말과 권력의 관계다.

거짓말쟁이는 상대방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거짓을 전달하면서, 상대방의 행동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꾸려 한다. 하지만 “제안만으로 거짓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허구가 현실이 될 때 비로소 거짓말은 성립한다.” 거짓말은 대화이며 상호작용이다. 거짓말쟁이는 스스로뿐 아니라 상대방도 마음에 들어할만한 제안을 건넨다. 상대방이 그 제안을 받아들여야 거짓말은 현실화되고 힘을 얻는다. 거짓말은 거짓말쟁이와 속는 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 성립한다.


바로 거짓말이 권력을 얻는 절차다. 히틀러의 독일인들은 히틀러가 제시하는, 불가능해보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이기도 했던,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히틀러는 권력을 얻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주전장』은 권력이 어떻게 거짓을 만들고 이용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우익 지식인과 정치인, 일본 정부 등은 강하게 결속되어 있다. 교과서에서 ‘위안부’ 내용을 제거하기 위해 법을 바꾸고, 도쿄전범재판을 다룬 방송에 압력을 넣는다. 위안부 기림비 제막을 막기 위해 미국 정치권에 로비 활동을 펼친다. 각종 공식 문서 등을 근거로 들면서 피해자의 증언과 함께 ‘위안부’ 문제를 전면 부정한다.


『주전장』이 권력을 폭로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오히려 우익이 내세웠던 증거들을 가져온다. 그들이 증거를 어떻게 유리하게 조작했는지를 보여주면서, 그들이 증거를 해석하기 전부터 원래 지니고 있었던 의도를 드러낸다. ‘감추려는 자가 범인이다.’ 권력이 감추려 했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권력의 의도가 드러난다.

거의 모든 장면이 인터뷰로 이루어진 『주전장』은 그 자체로 진실을 추구하는 대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거짓말이 대화이자 상호작용이라고 했던 것처럼, 진실 역시 그렇다. 다만 진실을 추구하는 대화는 의도나 이해관계에 얽혀있지 않다. 『거짓말 읽는 법』은 진실 추구를 위한 대화가 가진 성격을 ‘솔직함’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말하는 솔직함이란, 스스로를 온전히 드러내면서 또 상대방이 스스로를 나에게 드러낼 때 그에 대해 의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은 위험하다. 자신의 잘못됨이 드러나거나, 상대가 나를 이용하려는 의도에 노출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태도 앞에서 상대방을 이용하려는 거짓의 의도 또한 고스란히 드러난다.


솔직함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이다. 피해 경험을 ‘수치’로 여기는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서 피해 경험은 수십 년 동안 말해지지 못했다. 예상되는 손가락질과 비난을 무릅쓰고 피해 경험을 드러냈다. 그렇게 ‘위안부’ 문제의 진실은 비로소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주전장』은 거짓을 꾸미는 권력의 의도와 대비해, 솔직함에 반응한 또 다른 솔직함들을 보여준다. 영화에선 일본에서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보도했다가 우익에게 겁박을 당한 언론인의 이야기가 언급된다. 적어도 일본 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판하는 것은 그다지 이득이 아니다. 그럼에도 비판자들은 계속해서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또한 감추려는 자들과 달리 비판자들은 딱히 자신들의 근거를 조작하지 않는다. 비판자들은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이 논리정연하지 못함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증언이 지닌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을 발견해낸다. 또한 설치된 위안소의 개수나 일본군 ‘위안부’의 수를 과장해서 말하거나, 피해자가 당시 어린 여성이었음을 강조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다. 오히려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전장』에서 인상적인 대목 중 하나는, 시민권과 대비되는 것으로서 인권을 언급하는 부분이었다. 시민권은 권력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의 권리다. 인권은 권리의 범위를 한정짓지 않는다. 오히려 인권의 범위는 타 인종, 여성, 장애인 등 점점 넓어져왔다. 거짓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가리고, 그에 동의를 얻음으로써 권력을 획득한다. 거짓은 자신이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속이려 하지만, 그 순간 가려지는 진실은 바로 배제된 자들의 목소리다. 진실은 가려질 수 있다. 하지만 사라질 수는 없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는 ‘위안부’ 기림비 제막을 위한 청문회에서 스스로를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소개한다. 영화 『김복동』은 역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이 겪은 피해의 사실보다는, 인권운동가로서의 김복동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인권운동의 전부는 증언이었다. 90세가 넘은 노구를 이끌고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피해사실을 증언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전시성폭력의 문제를 알리는 가장 효과적인 인권운동이기도 했다.


진실은 그 내용뿐 아니라 방식까지 거짓말과 완전히 다르다. 『거짓말 읽는 법』에서 말하는 것처럼, 거짓말쟁이는 자신의 거짓말이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 권력을 획득한 순간, 상대방과 함께 거짓말에 묶인다. 거짓말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진실은 어디에도 묶이지 않는다. 진실이 대화를 통해 새로운 내용을 만들어가는 동안, 거짓말은 점점 좁아지는 자신의 자리를 사수하기에 급급하다. “권력관계에 훼방을 놓”고, “권력관계를 폭로”하는 것은 오직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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