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부들 2-3

사랑의 죽음

by 황은화

2막 3장

사랑의 죽음

어두운 고시촌. 어느 방 하나.


세 사람 문을 열고 들어온다. 헤드랜턴을 켜고 들어와 주변을 살핀다. 시체가 있던 자리를 발견한다. 꽃들이 한쪽에 놓여 있다.


젊은 여자였대요. 벌거벗은 채로 죽었대요.


으메. 뭔 일이래?


고아인가?


고아?


죽을 땐 다 고아지. (혀를 찬다.)


세 사람, 시체가 있던 자리를 말없이 멍하니 내려다본다.


으메, 이런 말이 시의적절한지 모르겠는데 추한 게 아니라 아름답지 않았을까요?


원래 사람의 벗은 몸은 아름다워.


아름답지.


조용히 흐트러진 꽃들을 내려다보는 세 사람. 잠시 후, 척과 탁은 일을 하기 시작하는데 꾹은 여자의 물건들을 뒤진다. 그중 일기장을 찾아 훑어보기 시작한다.


척이 주변을 둘러보다 꾹이 일기장을 뒤적이는 모습을 본다. 꾹의 뒤통수를 친다.


이제 이딴 짓 안 하기로 했지.


이 여자 자기를 엄청 학대했어요. 자기를 미워했어요.


망자 괴롭히지 마라!


자꾸 딴짓해서 우리가 부정 타는 거야. 작살나게 줘터지기 전에 어여 내려놔! 


형, 여기에 시도 있어요. 시요.


육시랄!


척도 포기한다. 척과 탁은 꾹을 내버려두고 묵묵히 주변을 정리한다. 꾹이 일기장에 몰입돼 남들이 듣거나 말거나 시를 읽는다.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 새들은 나한테서 날아갔고 밤은 그 강력한 침입으로 나를 엄습했다. 살아남으려고 나는 너를 무기처럼 버리고 내 화살의 활처럼, 내 투석기의 돌처럼 버렸다. 그러나 이제 복수의 시간이 왔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파블로 네루다의 시 일부)



잠깐 여운을 두다가 다른 구절을 찾아 읽는다.


'인근에까지 소문이 난 국수집에 낯선 차들이 붐비고 있어서 이 고장은 대도시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의 더러운 지류 같다. 저 남자는 초등학교 동기가 아니지만 그와 닮았고 저 여자는 동생이 아니지만 동생과 닮았고, 나와 닮지 않은 내가 지나가고 있는 풍경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다. 내 욕망이 한 번도 깃들지 않은 곳,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 (조말선의 시 일부) 그런 곳들이 있겠지. 나도 알 것 같다.


사이.


이제는 내가 마지막인 것을. 내가 마지막이다.


(일기장 뺏어 던져버린다) 집어치우라고!


(떨어진 일기장을 집어 들며) 이렇게 함부로 다루면 안 돼요. 이렇게 버려지면 안 된다고요.


이젠 비밀로 남겨두기로 약속했잖아. 망자의 물건 손대지 않기로.


척형, 누군가는 기억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버려진 죽음, 그냥 쓰레기 치우듯 치울 게 아니라요. 이 사람 그래도 누가 이 억울함이나 쓸쓸함 기억해주기를 원하지 않았을까요? 살려고 세상에 왔다 죽었는데 그 이유라도 함 기억해주어야 하지 않냐고요.


그럴 필요 없어.


왜요?


그럴 필요 없으니까! (일기장을 뺏어 이번에는 찢어버리며) 이미 저주받은 사람들. 우리 따위가 뭔 도움이 된다고. 다 쓸데없는 짓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니가 성자야, 목자냐고. 일이나 똑바로 하고 이따 술이나 먹자. 이 일도 갈수록 못해 먹겠다.

꾹은 찢긴 일기장을 다시 모은다.


이 여자는 사랑 때문에 죽은 거 같아요. 사랑이요, 사랑.


(조용한 소리로) 육시랄, 반장아! 나 이제 쟤랑 일 못하겠다.


너, 당장 나가! 너 같은 놈 필요 없다. 당장 나가!


척은 꾹에게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며 밀치지만, 꾹은 이상하게 동요가 없다. 척과 탁의 말을 흘려듣고 여자의 죽음에 몰입돼 여자의 일기장을 뒤진다. 여자가 쓴 글들을 읽는다.

그러다 꾹은 또다시 유령과 마주치게 된다. 그런데 전과는 달리 놀라거나 도망치지 않고 비교적 덤덤히 유령을 응시한다.


어이, 훠이, 훠이~


환영 314, 314, 314.


(비교적 차분한 말투) 어이, 훠이, 대체 왜 그래? 내게 뭘 원하지? 너 이 여자를 알아?


환영 가여운 것, 가엾고 서글픈 것!


꾹, 심호흡을 크게 하더니 전과 달리 환영을 바라보려고 한다.


당신 얼굴을 보여줘! 얼굴을 봐야겠어. 가까이, 가까이.


환영이 꾹에게 다가온다. 그의 형상이 조명으로 인해 점점 밝아진다. 선명해진다.


(얼굴을 보고 놀라 호흡이 빨라지며) 아저씨, 아저씨 아니세요? 아저씨가 여기 웬일이세요? 척형, 여기, 여기,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나 좀 봐봐. 여기, 아저씨 계셔. 척형, 나 좀 보라고!


꾹이 척의 몸을 끌어당겨도 반응이 없다. 꾹의 움직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마치 꾹이 투명 인간이라도 되는 양 반응이 없다. 꾹은 결국 척의 앞을 막아서더니 척의 뺨을 때리기에 이른다.


형! 아버지라고!


(잠든 상태에서 깨어난 것처럼) 어?


형, 저기 봐! 형 아버지야!


척, 꾹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다. 유령을 보게 된다.

유령과 마주하는 척.


아버지!


마주 보는 두 사람.


사이.

사이.


꾹과 탁 자연스레 무대에서 사라진다.

척, 전화기를 꺼내 어딘가로 다급하게 전화한다.


기계음 지금은 전화기가 꺼져 있어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음성사서함으로 연결 시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삐익!


척이 핸드폰에 대고 대사를 하는 사이 무대가 점점 어두워진다.


아부지, 나야! 이 전화 받으면 즉시 연락 주세요. 아부지, 아무래도 몸이 안 좋으신 거죠? 답답하고 아프고 힘들어서, 그래서 나 찾은 거지? 신호 보낸 거지? 근데 지금 아버 지 어디 사는지 몰라. 군산에 지금도 살아? 이 내용 들으면 바로 전화 줘요, 바로. 아부지, 아부지! 살아 계신 거 맞지? 그냥 좀 아픈 거지? 전보다 조금 많이 아프셔서 그런 거지? 그지?


어둠 속에 두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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