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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은화 Oct 04. 2023

잃어버린 꿀잠을 찾아서 0909

9. 아버지와 병원을 다니다  

불면퇴치 프로젝트

소소한 일상기록입니다.

오늘은 조금 다른 제 가족이야기네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하는 가장 먼 여행이었던 행복한 통영여행을 끝내고 두 달이 지난 후,

아빠가 강서구에 있는 부민병원으로 실려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엄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들, 걱정들이 스쳤다.

그게 벌써 2년 전에 일이다.

2021년 통영여행 사진

아버지는 호텔 시설관리부에서 일하시는데 여느 해와 다름없이 9월에 잔디를 정리하고 계셨다.

평생을 나무를 가꾸고 돌보는 일을 하셨던 분이라 잔디깍는 기계는 그에게 무겁기는 해도 친근한 기계였다.

 

하지만 사고가 났다. 땅에 박혀 있던 쇠못이 튕겨져 아버지 무릎에 박힌 것이다. 낡은 대못이 무릎 안쪽까지 깊게 파고 들어 단순한 수술로 볼 순 없었다. 못의 독이 신경을 감염시킬 수도 있고, 못이 신경을 건드린 상태면 더 좋지 않을 수 있었다. 조금만 잘못 돼도 예전처럼 걷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버지는 사고 다음날 수술대에 올랐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라 여러모로 불편하고 걱정이 많았던 때이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됐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 수술을 계기로 평생 일했던 직장인 호텔에서 은퇴하셨다.

아버지에게 박힌 못을 꺼내면서 그동안 아버지가 숨겨왔던 신체의 상태가 우리 가족에게 공개됐다. 아버지 자신에게도 제대로 인지되고 말이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부민병원에서 4번의 수술을 하셨다.


1차: 2021년 9월 못 제거 수술 및 치료

2차: 2021년 11월 무릎 인공관절 삽입 수술

3차: 2022년 3월 허리 디스크 수술 1차 (두 개의 눌린 신경을 여는 수술)

4차: 2023년 9월 허리 디스크 수술 2차 (세 개의 눌린 신경을 여는 수술)


박힌 못을 꺼내고 보니, 아버지 무릎 상태가 더 나빠졌음을 알게 됐다. 미루고 미뤘던 무릎 연골 (삽입) 수술을 바로 연결해 진행했다. 수술도 잘되고 재활도 열심히 하셨다.


그런데 걷는 자세가 자연스러워지지 않았다. 부자연스러웠다. 초반에는 그럴 줄 알았는데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발바닥 저림이 심해 편하게 걸을 수 없다 하셨다. 상담을 받으니 무릎 문제가 아니라 허리신경 문제로 진단됐다. 허리 신경이 눌려 그게 발밑으로 영향을 끼치는 거로 의견이 모아졌다. MRA 사진을 보니 허리 상태가 심각했다. 의사 선생님이 어떻게 이 상태로 일을 하셨는지 의아해할 정도로 신경이 모두 눌려 있었다.  

그때 알았다. 아빠는 그저 참고 지내셨던 거다.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본인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참고 지내셨다. 수술로 회사를 오래 비우면 분명 퇴사를 권고받을 거라 판단하셔 그저 할 수 있을 때까지 하신 거다. 참 우리 아버지도... 아버지도 진짜...


의사의 말을 들은 뒤, 아버지를 똑바로 쳐다보기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마음이 복잡했다.

아버지가 허리 디스크 2차 수술을 예정에 두고 있다.

(이 글을 마무리 하는 지금은 이미 수술을 끝내고 퇴원하신 때다.)




누운 시간 (smart phone off): 02:00  a.m.

기상시간 1차: 6: 45 a.m.

기상시간 2차: 07: 20 a.m.

success/fail: S

누운 장소: 집 안방 (매트리스 위에 담요)

자기 직전 행위: 골때녀 시청, 유튜브 시청

수면도움 아이템: 젠링(10분), 온열 눈 마스크

몸무게 72.1 킬로


메모:  오늘은 아버지 2차 허리디스크 수술 상담날

         아버지와 부민병원 오전 방문 (10시)




[아버지와 나]


아버지와 나는 전혀 닮지 않았다.

나는 철저한 외탁으로 어머니 붕어빵이다.

남동생은 반면 친탁으로 아버지 붕어빵이다.

(두 형제 각자 알아서 삶의 방향 정하고 태어났다.)


아버지는 진중하고 과묵하시고

나는 여성스러운 면이 있고, 말을 즐기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묵직한 땅의 사람이고,

나는 물의 성향을 가진 자유로운 방랑자이다.


아버지는 농사꾼이고 정원사라면

나는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향유자이자 창작자를 꿈꾼다.


나는 어려서부터 기준 하나는 확실했다.

그건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지 않는 거였다.


(황씨 가문으로 태어나 키도 크지 않고 대머리에 대한 본능적 공포감을 10대부터 안고 살고 있었으니 더 이상 닮지 말자!)



재미 없고 취미 없고 평상시에 말 없다 술 먹으면 말이 많은 사람.

가정에 별 관심이 없는 가부장적인 어른!

어디 놀러 가자고도, 어디 맛있는 거 먹으러 이끌고 가는 일도 일절 없다.


어머니가 삶의 큰 낙 없이 우리만 보고 사시는 때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를 위해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는 사람으로

다정한 사람으로, 센스 있고 재밌는 사람으로, 매력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어했다.

일단 아버지처럼은 살지 말자!  


동생과 아버지 (언제지?! 20년도 더 지난 사진으로 추정)

다른 차원으로 우리 둘을 진단하면 별자리 궁합도 별로이다.

물고기 자리3 (나)와 천칭자리 3(아버지)의 조합이다.

둘 사이의 보스를 따지는 권력관계, 권력의 경쟁 관계로 원활한 의사소통이 전제되지 않으면 관계는 지옥이다. 그래서 힘겨운 인연은 사랑이란다. 그럴 거 같다. 둘 다 주도권, 권력 싸움이라니 사랑에 당치도 않은 시작점이다.  


다행히 행복한 인연은 가족이란다. 그런데 여기서도 마냥 좋은 게 아니라 천칭자리가 날 지배하려고 집착하면, 나의 창의성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역시나~ 본능적으로 알았나 보다. 진작부터 내가 이걸 직감했던 거 같다...


다행히 아버지는 시인이 되려한 나의 삶을 묵묵히 지지하고 기다리셨다.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버지의 존재가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갈등이 생길만한 시기가 지나고 지나 아들이란 존재는 이미 사십을 넘겼다.


그리고

그리고

사십을 넘기며 이질적이고 경계했던 아버지와도 얼굴 느낌도 비슷해지고 황씨 가문 특유(?)의 분위기도 풍기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심으로 아버지를 존경하고 이해해 가고 있다.


아버지와 여행을 다녀보고, 최근 아버지와 병원을 다니며 아버지를 더욱 가까이 느낀다. 평생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대화하지 못한 내 아버지의 일상과 그의 언어를, 그의 연약함들을 경험하고 있다. 새롭다. 어머니를 이해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그 어렵던 아버지를 만나고 있다.


2021년 통영사진

이 프로젝트와는 크게 결을 같이 하지 않는 긴 글이었다.

아버지 또 수술하시니 또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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