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자전거 예찬
자전거란 인간이 만든 가장 완벽한 기계장치가 아닐까 한다.
인간을 저 멀리 데려다 준다. 그러나 기계의 힘만으로는 아니라 인간 자신이 어느 정도 힘을 써야만 작동하는 원리이다.
체인과 체인이 맞물려 돌아가는 비교적 간단한 구조의 이 기계장치는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다.
인위적인 기계임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바람, 공기, 태양, 강과 길)을 더 잘 느끼게 해주고, 그 과정에서 사색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운길산역에서 합정역까지 자전거를 탔다. 대략 51 킬로미터 정도가 되는 거리다. 그녀 집에서 내 집까지 오는 코스. 빠른 자전거 페이스로 3시간 30분 정도 소요시간이 나오는데 나는 2시에 출발해 8시에 합정에 초죽음이 돼 도착했다. (변명을 하자면 뙤약볕, 무거운 가방을 맨 채로 쇼핑백을 손잡이에 걸고, 자전거 복장도 아닌 여름 캐주얼 패션으로 달렸고, 자전거도 최적의 상태가 아니었다. 사이클 선수 같은 다른 자전거 마니아 수준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실력과 준비상태였다. 중간에 계속 쉬면서 경치 구경하면서 왔다.)
일년에 한 번씩은 꼭 사이클링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8년 전 농구하다 다리를 다친 이후로는 그렇게 하질 못했다. 그 전에는 1박 2일 코스로 수원도 가고, 동탄도 가고, 춘천도 갔다 오곤 했다. 다리 상태가 온전치 않으니 점점 주행거리도 짧아지고 최근에는 다른 일들에 우선 순위를 빼앗겨 아끼는 자전거 주행을 못해 왔다.
그러다가 오늘 갑자기 달리고 싶어졌다. 그녀의 자전거가 처량해 보여 달리게 하고 싶었다. 날씨 좋은 가을, 사이클링보다 재밌는 게 세상 어디 있을까. 1등이다.
5~6년 만에 가장 긴 코스를 탔다. 그래서 엉덩이가 탱. 탱. 부어 있다. 찢어질 거 같다.
누운 시간 (smart phone off): 0: 30 a.m.
기상시간 1차: 6: 00 a.m.
기상시간 2차: 06: 20 a.m.
success/fail: S (기절 수준)
누운 장소: 집 안방 (매트리스 위에 담요)
자기 직전 행위: 하이킹 복귀 후 샤워, 맥주와 미숫가루 원샷 후 시야가 흐려짐.
수면도움 아이템: 없음
몸무게: 71.4 킬로
어제의 아름다움: 그녀의 자전거
기상 후 행위: 설겆이 후 인스타그램 정리
메모:
무리한 운동으로 이마에 미열이 있었지만 충분한 수면으로 회복단계이다.
수면이 간신히 몸살을 막았다.
(어린 시절 자전거는 제외하고)
나의 첫 자전거는 자이언트(Giant)였다. (모델명까지는 모르지만 90~100만원 가격)
서른 여섯살 애니메이션 회사에 작가로 입사해 첫 월급을 받고, 받자마자 일시불로 산 제품이다. 회사가 있는 마포구청역에서 합정으로 자전거를 잘 아는 회사 동료와 가서 한눈에 구매했다.
너무나 예쁜 로드 자전거였다.
허리를 굽히는 자세가 불편하고 힘들 줄 알았는데 막상 적응하면 아무렇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볍고 빠르게 나아가는 장점이 좋았다.
하얀색 바탕에 빨간색 포인트 색이 결합된, 나에게는 스포츠카에 버금가는 미와 성능을 보여줬다.
3년 신나게 타다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건이 일어나면서 자전거와는 이별했다.
그때 난 좀 어두워졌던 거 같다. 욕도 늘었다.
연신내 드립커피 전문점에서 우아하게 커피 마시며 노트북 작업 끝내고 집으로 가려고 하는데
나의 애마가 온 데 간 데 없는 거다. 아무리 찾아도 없고 나무 펜스가 뜯겨 파편만 떨어져 있었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내게 일어난 일이었다.
교회 앞이었고 펜스에 잠금장치를 걸었는데 도난을 당한 것이다.
나무펜스를 뜯어가리라고는, 그것도 교회 앞인데...
결정적으로 앞에 cctv가 없었다.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곧바로 번화가 길이 열리는 곳이라 도둑 찾기는 힘들게 분명했다. 넋을 잃고 길에 한참을 서 있던 기억이다.
경찰에 연락도 하지 않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세상을 다 잃어버리고 집으로 왔다.
며칠 우울했고, 다시 기운을 차리긴 했지만 그 후로 난 연신내를 증오하게 됐다.
이후, 연신내에서 사람 만나는 일을 극도로 꺼리고 커피는 절대 마시지 않는다.
예전부터 연신내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땐 왜 그 커피숍에 갔는지 그때의 나를 질책할 뿐이다. (연신내 거주자 분들에게는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악연입니다.)
사건 이후, 자전거에 진심인 나를 잘 아시기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본인들의 자전거를 빌려주시기도 했지만 예전만큼 흥이 나질 않았고, 본인들 타야할 스케줄이 있기에 나중에는 빌려주는 걸 꺼려하시기도 했다. 다들 자전거가 몇 백 만원짜리 자전거였기에 쿨하게 빌려주시는 건 한 두 번에 불과했다.
그래서 지금 나의 자전거는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따릉이다. 겁이 날 정도로 편하고 좋다. ㅠㅠ
다리 부상과 함께 자전거와 스케이트 보드의 시절을 졸업하고 오토바이의 시대, 슈퍼커브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때 자전거를 도난 당하지 않고, 그로 인해 농구보다 자전거 타기를 더 좋아했다면 나는 지금 꽤나 수준 높은(?) 자전거 매니아 되어 있었을 것이고, 더 좋은 스케이트 보더가 되질 않았을까 감히 상상해본다.
불만은 없다. 오토바이는 또 다른 세계, 어마어마한 신세계이다. 그리고 오토바이로 돈도 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