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피아노 레슨
불면 퇴치 프로젝트
소소한 일상을 기록합니다.
피아노를 배운지 3년이 되는 시점이다.
체르니 30 수준에서 40로 가는 길을 보류한 채, 정통 교재를 벗어나 변형 교재를 사용 중이다.
(올해 3월부터는 치고 싶었던 곡들을 시작했다. 드뷔시의 '달빛'부터 시작)
노년의 버킷리스트였지만 40대에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그 선택은 인생에서 최고로 잘한 선택 중 하나가 됐다.
연희동의 모 카페에서 글을 쓰다 창밖을 내다보며 쉴 때가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도로 건너편 건물 2층 피아노학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어느 비오는 날 창밖을 하염없이 멍하니 바라보다 결심해 버렸다.
'피아노를 배우자!'
노년의 버킷리스트였지만 당장 시작하고 싶었다.
하고 보니 더욱 실감했다. 잘했다. 지금도 이렇게 진도가 안 나고 힘들어하는데,
더 나이가 들었다면 매일 절망하며 겨우 겨우 한 두 곡만 치는 수준으로 끝났을 거 같은 예감.
(3년) 레슨 중간 보고를 하면 첫번째 학원에서 1년 정도를 하고 선생님의 제자가 운영하는 두 번째 학원으로
장소를 옮겨 두 번째 스승님을 만나고, 1년 6개월 정도 배우다 두번째 스승님이 어머니 간호로 일을 못하시게 돼, 선생님의 조카가 학원을 물려받아 지금은 세번째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고 있다. (참고로 세번째 스승님은 30대이다. 나보다 열 살 이상 어리시다.) 처음 2년은 일주일에 두 번 레슨을 하다, 최근 일 년은 일주일에 하루 레슨으로 레슨의 빈도수는 줄여야 했다.
처음 학원에서 성인 레슨은 단 두 명 뿐이었다. 나와 연대 교수님이 유일했다. 마주친 적은 없는데 얘기 듣기로는 집에서도 연습을 너무 하셔서(피아노에 푹 빠지셔서) 손가락 관절에 이상이 생겨 병원 치료도 받고, 쉬라는 권고까지 받으셨다고 한다.
처음 두 달은 칭찬도 간혹 들으면서 재미나게 배웠던 거 같다. 그런데 점점 스킬이 어려워지고 왼손을 사용하는 시점이 되면서 수업은 나름 공포와 긴장의 연속이었다. 집에 피아노가 없는 나인지라 선생님도 나도 서로 난감해 하며 레슨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피아노의 큰 욕심 없는 성인 학생을 배려해 천천히 부드럽게 가르쳐 주셨지만, 수업에 몰입하시다 보니 선생님 본인도 모르게 내 손목을 찰싹 때리는 일도 있었다. 그때 우리 둘 다 놀랐던 기억! ㅜㅜ
(당시 연주할 때 나쁜 버릇이 있었는데 계속 고쳐지지 않고 있었다. 찐텐으로 나를 학생으로 대하시던 모습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선생님이 내게 욕심을 내셔서 진심으로 감사하기도 했다.)
같이 배우던 연대 교수님이 레슨을 더 진행할 수 없게 되자,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성인반은 이제 진행 안하시기로 하셨다고 말씀하셔 섭섭했지만 선생님과는 이별을 해야했다. 열등생 제자가 적잖이 스트레스를 드린 것도 같고, 레슨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져 나와 아이들이 함께 공존하는 시간이 여러모로 불편하셨던 거 같다. 피아노를 칠 때마다 학부모들이 내가 있는 방을 힐끔힐끔 쳐다보시곤 했다(쑥덕쑥덕).
처음 6개월의 고비를 잘 넘긴 거 같다. 그 고비를 넘겨 이제는 꾸역꾸역 진도를 나갈 수 있게 됐다. 피아노 스승은 인생에서 여러모로 중요하다고 들었다. 그리고 나름 실감했다.
어린 시절에 만나는 피아노 선생님은 음악을 어떻게 대할지를 결정하기도 하고, 또 유년에 만나는 거라 아이의 인성에도 크게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첫번째 선생님은 연주도 훌륭하시지만 욕심을 버리고 피아노를 대하는 제자를 그녀만의 방식으로 진지하게 대하시며 제대로 가르쳐 주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셨던 기억이다.
(이 글을 쓰면서 연말에 찾아가 민망하지만 인사라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운 시간 (smart phone off): 1: 30 a.m.
기상시간 1차: 7:00 a.m.
기상시간 2차: 8:10 a.m.
누운 장소: 안방 (바닥, 요가 매트 위에 담요)
수면등 on/off: off
자기 직전 행위: 불면퇴치 프로젝트 글 정리하기, 아이폰 사진 정리
수면도움 아이템: 젠링, 온열 눈 마스크
메모: 비교적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고 있는데, 계속 이 페이스를 유지할 지 불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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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선물해야 할 목록들 체크
오늘도 두 시간 동안 거의 쉬지 않고 피아노를 쳤다.
가만히 손을 두면 미세하게 떨릴 정도다.
그래도 오늘 레슨은 만족도가 높은 날이어서 좋았다.
집에 피아노가 없다보니 어디 가서 피아노를 만나면 반갑기 그지 없다.
전에 백화점에서 자유롭게 그랜드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장소가 있었는데 (10분 이상 치기 금지!)
연습하는 곡이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 피아노만 만지다 온 기억이 있어
외출할 때 출력한 악보를 파일집에 넣어 가지고 다니곤 한다.
좋은 피아노로 내가 애정하는 곡들을 쳐보고 싶다. 실력에 대한 창피함보다 연주용 피아노를 만지고 싶다.
진실코 진실코 나의 소박한 소망은 'moon river'를
드뷔시의 '달빛'을,
에릭사티의 '짐노페디' 시리즈를,
쇼팽의 곡들을 잘 치고 싶다.
그럴 듯하게, 음악답게 치고 싶다.
이미 배웠다.
이제 외워서 잘 치면 된다.
달이 비추는 강을,
달빛을 잘 치고 싶다.
인생처럼 '느리고, 매우 표현력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