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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은화 Dec 11. 2023

영화에서처럼_01

도쿄소나타_서울소나타

영화 도쿄 소나타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고 시인을 꿈꾸고, '시네마천국'을 보고 사랑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했던 유년을 보낸 나이기에 내 인생의 여정에는 영화의 영향이 적지 않다. 그 중 구로사와 기요시의 '도쿄소나타'와 내가 요즘 다시금 만나고 있다.

왜냐면...

피아노 때문이다.

드뷔시 때문이다.



2008년 만들어지고 한국에는 2009년 3월에 소개된 구로사와 기요시의 ‘도쿄소나타’는 아름답고 섬세한 영화이다. 일본 중산층 가정의 몰락과 좌절을 섬세한 영상미로 보여준 영화는 내게 아름다운 엔딩 장면으로 강렬하게 각인돼 있다.


영화는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소년)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소외된 채 고독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는 걸 보여준다. 각자에게 모두 연민이 느껴졌지만 마지막 장면으로 인해 난 말없이 외로웠던 소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바라보게 되었다. (그의 부모 역시 아들의 연주를 보고 그렇게 느꼈다)

 

켄지라는 소년이 피아노 오디션을 보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무리 되는데 그때 들은 드뷔시의 ‘달빛‘은 그야말로 영롱하고 아름다웠다. 그 여운은 영화가 끝나고도 오래오래 지속됐다. (최근에 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의 엔딩처럼)


(이 연주를 꼭 들어보시길! 링크)


다른 영화를 통해서도 ‘달빛’을 들었고 다른 클래식 음악들도 영화를 더없이 빛나게 해주었지만, 이 음악만큼은 아니었다. 그래서 막연하지만 한 가지 결심을 하게도 됐다.

언젠가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나 역시 피아노를 배우고, 켄지처럼 ‘달빛’을 쳐보겠다고!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가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지나 10년도 넘게 지난 어느 날, 카페에서 글을 쓰다가 창 너머로 보이는, 길 건너편 건물 2층에 위치한 피아노학원 간판을 보고 마음이 동해 버렸다. 다음날 등록을 했다.


3년 전에 일이다. 첫해는 일주일에 두 번, 두번째, 세번째 해는 여건이 허락지 않아 일주일에 한 번 레슨을 받아 겨우겨우 체르니30을 지나가는 시점이다.


시작점이 그런지라 영화가 내 피아노 레슨에 역시나 영향을 끼쳤다.  주어진 레슨 교재를 따라가다가 하고 싶은 곡을 칠 수 있게 됐을 때, 내가 선택한 첫 곡은 'moon river'였다. <로마의 휴일>에서 들은 오드리 햅번의 그 노래를 첫 자유곡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두번째가 <도쿄소나타>에서 반한 드뷔시의 '달빛'이었다.


학원에서 연말 결산 겸 기념 영상 촬영 계획을 알려주셨다. 나는 초등학생들 앞에서 민망해 빠지고 싶다고 했지만 선생님은 하라고 지시하셨다. 그래서 했다. 연주할 곡은 '달빛'이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이 곡을 그랜드 피아노에서 치고 싶었다. 좋은 피아노에서 치니 확실히 소리가 달랐다.


그리고 촬영을 위해 반복해 치다보니 <도쿄소나타>가 생각났다. 아~


연주는 잘 해 나가나 싶었지만 마무리에서 망쳤다. 더 연습해 촬영하기에는 선생님의 시간을 너무 뺏을 거 같아 더 치지는 않고 마무리했다. 아쉽지만 나름 보람과 기쁨이 있다.


(나의 연주와는 별개로) 곡은 참으로 아름답고 영롱하다.

연습실 연주



영화 이야기를 조금 더 첨언하면,

인간 병리학에 대한 이해가 깊고 호러영화로 유명한 구로사와 기요시가 만든 드라마는 달라도 달랐다.한 가정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임에도 날카롭고 위태로왔으며 그 어떤 감독보다도 우아하면서도 섬세했다. 인간의 공포를 다루는 자가 본질적으로 인간을 더 잘 보는 거 같다.


구로사와 기요시, 그는 <큐어>의 감독이면서, <스파이의 아내>, <도코소나타>의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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