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은화 Apr 18. 2024

인생에 한 번은 비글과 함께 하고프다

비글에 관한 오해와 예찬

나는 지금 서울시 푸른도시여가국에

동물보호과 소속으로 일을 하고 있다.

매일 개와 그의 보호자들을 보고 있다.


비글은 키우기 어려운 개로 분류된다.


그건 어디까지나 집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보았을 때

자주 외출을 하지 못해

자신의 끼와 재능을 맘껏 발산하지 못해

집안에 물건을 부수고 물고 뜯고 맛보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비글에게 이런 평가는 좀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다.

 

맘껏 자신의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하고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비글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데

막상 그 일을 당하는 당사자는 밝게 미소짓지 못하리라!

하지만 이탈리아인의 손을 묶어 버리면 모든 게 어색하고 불안정한 거 아닌가!!

 

그래서 비글이 억울하고 가련한 목소리로 짖는 것일까?!!


그런 면에서 서울 도시는 비글(beagle)에게 축복의 도시는 아니다.

그것이 문제의 출발점이라고 본다.


하지만 비글에게 맘껏 뛰놀 장소가 있고, 비교적 자유롭다면???

그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때의 비글은 세상 누구보다 매력적인 개로 변신한다.


1. 인생이 아무 재미없고 우울한 당신에게

(나는 밝은 듯 하지만 어둡고 우울한 기질의 소유자다. 은근 즐기기도 한다. 그래서 비글이 반갑다. 그가 나를 끌어낼 수 있다)


놀이터에서 일하다 보면 처음 봤는데도 툭툭 치며 놀자고 플러팅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

돌아보면 비글 아니면 리트리버이다.

리트리버는 묵직하지만 부드럽고 다정한 반면, 비글은 거칠고 장난끼 가득하다. 무작정 훅 들어온다.


개들이 다섯 여섯 마리가 모여서 뛴다. 그 무리를 이끄는 선두에 비글이 있을 확률이 높다. 친구들에게 뛰자고 선동하고 따르지 않으면 장난을 쳐서 뛰도록 만든다. 다른 친구들이 이젠 그만 뛰려고 할 때도 계속 장난을 치며 뛰자고 유도하는 친구가 비글이다. 새친구가 와도 제일 먼저 인사하고 사람 역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대형견들은 사람이 등장하면 오지 않는 편인데, 비글은 사람에게도 꼭 인사를 하고 뭐가 있을까 궁금해 한다.


인생의 어떤 시기에 당신이 의욕을 잃고 우울해 한다면 나는 당신 몰래 비글을 당신 집에 데려다 놓고 싶다. 아무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고 어떤 일도 하고 싶지 않을 때 비글이 당신 옆에 있기를 소망한다.


이 친구는 아무 생각이 없다. 그렇게 생각없이 당신에게 다가갈 것이다. '무엇을 걱정해? 같이 놀자, 같이 뛰자, 같이 있자. 세상에 할 일이 천지야. 놀자. 응~'

처음에는 힘들고 벅찰지 모르지만 이 친구는 지친 사람을 일으킬 힘과 기술이 있다. 잡초 뿌리를 모종삽으로 제거하고 있는데 비글이 다가와 내 옆구리에 얼굴을 넣더니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때 느낀 그 묘한 느낌은 지금도 얼얼하다. 뭐였을까? 당황스럽지만 반가운 그 느낌은...


인생의 어느 시기 비글을 만났으면 한다. 오래는 모르겠지만... 그 어떤 시기를 말이다.

오랜 극작 작업을 끝낸 시점, 힘든 과제를 끝낸 시점, 다른 아무 일도 생각나지 않을 때, 그냥 무작정 쉬고 싶을 때!  그때 내게 개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비글이어도 좋겠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이 친구와 놀고 싶다. 뛰고 싶다.  

2. 다이어트 걱정이 태산이다, 태산

살이 2킬로 더 쪘다. 잘 되는가 싶더니 몸이 지치고 이것저것 신경쓸 일이 많고, 저녁에 맥주를 꼬박꼬박 먹었더니 배가 뽕 나와 2킬로를 빼야하는 시점에 2킬로가 더 쪘다. 그러니 4킬로가 더해짐 셈이다.


갑자기 비글 친구가 생각난다. 놀고 또 놀고 뛰고 또 뛰는 친구가 있다면, 내 의지로는 실패했으니 이 친구에게 몸을 맡기면 어떨까. 그냥 이 친구 가자는 데로 가보면 될 거 같다. 이 친구와 한 계절을 보내면 나는 무조건 헬쑥해질 것이다.


나중에는 마라톤 대회에 나가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3. 잃어버린 물건을 찾나요? 혹은 사건의 단서가 안 찾아진다고요?? 적극 추천합니다~


비글을 추천한다. 마약 탐지견도 있고 훈련된 수색견도 있지만 그들이 실패한다면 비글을 추천한다.


전에 한 비글을 보았는데 지치지 않고 돌아다니며 놀이터 곳곳에 구멍을 파고 (덕분에 고생 많이 했다) 요상한 물건들을 물어 와 주인에게 내밀곤 했다. 절대 지치지 않았다. 이렇게 놀이터 곳곳을 다 파헤치는 녀석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비글이 경찰이나 탐정에게도 엄청 유용하겠다 생각했다. 남들이 가지 않고 관심도 없는 곳을 굳이 찾아가서 파고 무럿이든 물어올 존재. 그게 인생의 즐거움인 친구.


더 찾고 싶고, 더 살펴보고 싶을 때 비글과 함께 하길 권해본다. 그 친구가 알아서 할 거다. 아무 불평 없이 모든 모험에 동참해 줄 친구. 절대로 no라고 거절하지 않는 친구. 모든 게 준비된 친구.


중년이 되면서 인생의 재능은 열정과 에너지로 귀결되는 듯하다. 너무나 쉽게 에너지와 열정을 잃어버리게 되는데 (나를 비롯해 주변에 그런 모습을 많이 목격하게 된다) 비글을 보면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저 친구는 집에 갇혀 있지 않으면 세상에 긍정의 긍정을 전하고 모든 모험에 동참할 친구이다. 그 에너지를 받고 싶다.


그래서 내 말은 비글은 참으로 매력적인 개란 것이다.


그리고 우울한 당신이라면 꼭 인생에 한 번은 비글을 만나 보시길 추천해본다.

나에게도 하는 말이다.

한없이 긍정적이고 다정하고 의욕 넘치는 친구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세상에서 비글 예찬론을 목놓아 외쳐본다. 와우~~~~~~~~~~

작가의 이전글 비숑과 시바견에 대한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