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와 담을 만나기까지
얼마 전 구의 증명을 완독했다. 책을 읽고 여운이 오랫동안 남는 건 오랜만이라 2주가 지난 지금도 구와 담의 이야기가 귓속을 맴도는 듯하다. 구와 담이는 하나였다. 구는 담이자 담이는 구. 지독하게 얽힌 그들은 서로를 자신 보다 아꼈고 사랑했다. 영원을 약속하며 지독한 사랑을 한 것이다. 담이는 구를 잃고 싶지 않아서 삼켰다. 구가 사라지는 게 싫어 그를 먹어버렸다. 얼마나 절망적이면, 얼마나 묻고 싶지 않았으면 그랬을까. 절절한 사랑은 가끔은 그립다가도 앞으로 내게 절절한 사랑의 기회가 있다면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 답할거다.
200페이지 가량의 이야기를 소화하니 어처구니없게도 너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구와 담처럼 우린 아주 어릴 적에 만났다. 우리는 매 순간 서로에게 지독했다. 남보다 배로 행복을 주면서도 몇 배의 아픔을 주기도 했고 서로의 존재를 당연히 생각하며 아주 모질게 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린 늘 굴복했다. 우리의 사랑이 영원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생각에 말이다. 결국 돌아보면 서로가 서 있을 거라는 약속을 눈을 마주칠 때마다 했으니 몇 번의 약속을 한 지 모르겠다. 그 약속이 우린 사랑이라 일컬으며 우리를 더욱 끈끈히 만들었다. 살면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을 때 늘 너는 내 곁에 있었다. 그 순간이 고마워서, 안타까워서, 너의 모진 시간도 감내할 수 있을 만큼 소중해서 우리는 지독하게 사랑했다. 나만큼 너를 위하는 사람이 없었고 나만 너를 아낄 수 있을 줄 알았다. 저 먼 곳의 너는 몇 개일지 모를 가면을 숨겨둔 채 나를, 그리고 우리 주변인에 남아있었으니까. 남들은 알지 못하는 차갑고 뻔뻔한 그리고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모든 행동이 나만 감당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그래야만 우린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만남은 남보다 못하게 끝났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재회했다. 매 순간 서로가 아니면 안 된다고 울부짖으며 비슷한 변명을 늘어났고 아무 일도 없듯 다시 만났다. 주변 친구들은 매일 같이 내게 말했다. 그만해. 아니야. 매번 이성적인 판단만 한다는 내가 왜 너만 보면 사고가 멈출까. 그릇된 일인 걸 알면서도, 나를 갉아 먹으며 너를 살폈다. 그냥 그게 옳다고 믿었다. 서로는 이게 우리의 방식이라며 해로운 나날을 보냈다.
언젠가 나는 깨달았다. 그리곤 절대 헤어 나오지 못할 너의 늪을 떠나기로 했다. 그러고는 늘 다짐한다. 절절한 사랑의 기회가 있다면 하겠냐는 질문에 항상 아니라고 답할 준비를 한다. 삶이 송두리째 뽑히지 않을 만큼의 사랑만 하기로 했다. 적어도 서로가 서로였던 해로운 나날이 사랑으로 치부된 순간들을 다시는 아름답게 맞이할 용기가 없다. 구와 담처럼 죽어서도 함께할 사랑은 현실에 없다고. 나는 만나지 않아야지. 앞으로 내 인생의 구를, 담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