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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 소통의 어려움을 느낄 때

 "소대장님, 막내 면담 한번 해보셔야 할거 같습니다."

 2분대장이 자신의 분대 막내의 면담을 요청해왔다.

 "허 일병? 왜 뭔 일 있어?"

 자대 배치받은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았던 허일병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부대 내 내가 알지 못하는 부조리가 있을까, 개인적인 일인지 가정사일까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었다.

 "잘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요즘 뭔가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2분대장인 윤 병장은 자신의 힘만으론 벅차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리라. 

 "음. 알았어. 일단 아무 티 내지 말고 잘 관찰하고 있어, 내가 한번 이야기해볼게."

 힘든 일 있는지, 의례적인 질문에 돌아오는 답변은 "없습니다."가 대부분이다. 특히나 간부는 적 아닌가. 소대원과 소통을 하는 일, 특히나 속 깊은 이야기, 혹은 부대 내의 부조리 등 그들이 들어내기 싫어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는 더 끌어내기 힘들다. 게대가 무언가 특별관리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안 된다. 이것은 허일병에게도, 그리고 부대 내 다른 중대원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오후 4시, 중대 간부회의가 열렸다. 간단하게 오늘 일과를 정리하고, 내일 업무에 대한 이야기 후 언제나 그렇듯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다. 오늘 하루 내, 어떻게 허일병과 이야기를 해야 고민이었던 나는 중대장에게 물었다.

 "중대장님. 어떻게 해야 소대원이 마음을 터놓을까요. 아직도 소통이 어렵게 느껴집니다.

 내 질문에 중대장은 내 얼굴을 잠시간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인지 참 알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병력 관리만큼은 누구보다도 뛰어났던 사람이기에 기대를 갖고 나도 뚫어져라 중대장을 쳐다보았다.

 "2소. 소통을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위아래가 아닌 동등한 위치가 되면 대화가 잘될까?"

 동등한 위치에서 이야기하라는 것일까. 너무 뻔한 답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조용히 듣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은 수평이 되면 멈춰. 맞지? 물은 위아래가 생겨야 흐르는 거야. 물을 흐르게 하고 싶으면 너가 밑에 있어야 물은 비로소 너에게로 흐른다. 소대장. 중대장이 생각하는 소통은 그런 거야."

 "중대장님. 참, 가끔 보면 대단하신 거 같습니다."

 "이 새끼, 헛소리 말고 저녁이나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오늘 당직이라는 말로 식사 제안을 거절하고, 당직근무 전 허일병을 불렀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면담을 진행하고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핑계로 간부 연구실로 오라고 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면담을 진행해야 돼. 힘든 일 없지?"

 "예, 없습니다."

 "그래, 근데, 하고 싶은 말 없어도 30분은 앉아있다 가야 돼. 면담을 짧게 하면 좀 그래 보이 자나. 그러니까 거기 좀 앉아있다가 시간 되면 나가봐. 형은 너가 말을 하든 안 하든 그냥 여기 앉아있을 거야."

 10분이 지났을까,

 나 역시 이런저런 다른 생각에 빠져가고 있을 무렵,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허일병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시간을 주었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 1시간 동안 허일병의 개인적인 일과 가정사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듣는 도중 내내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진심으로 경청하였다. 위로도, 조언도 하지 않았다.


 여자들은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이야기만 들었을 때, 오늘 세상에서 말이 가장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한다는 실험 결과를 본 적이 있다. 그만큼 소통에서 듣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아이와의 대화를 어려워하는 부모들이 많이 있다. 특히 사춘기를 지나는 자녀와 대화가 어려워 회사에서 후배 직원들에게 요즘 애들은 어떤 대화를 좋아하는지 묻는 선배들도 종종 있지 않은가. 사실, 어떤 재밌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잔소리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여기서 잔소리라는 것이 나쁜 뜻이 아니다. 좋은 말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 잔소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통이 어려운 사람들은 일단 경청하는 것을 해야 한다. 나의 위치를 낮추어 고인 물을 흐르게 해야 한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겠지만 꾹 참고, 한 번이라도 끝까지 다 듣고 아무 이야기하지 말자. 그냥, "아 그렇구나." 또는 "그랬구나." 그리고 이야기하는 사람의 감정을 한 번 더 이야기해주면 된다. "아 그렇구나. 많이 힘들었겠구나", 또는 "아 그랬구나. 정말 기뻤겠다." 하면 된다. 고인물은 상한다. 물을 흐르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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