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간의 인턴이 끝났다. 다른 회사의 풀타임 근무를 거절하고 인턴을 택해서 그만큼의 가치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는 가치가 있었다. 빛 좋은 개살구 느낌도 있고 똑똑하고 열심히하는 직원을 어떻게 좌절시키는지도 봤다. 정규직으로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여러 상황이 그걸 불가능하게 했다. 인턴이 끝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취준 상황으로 걸어가는 게 초조하고 불안했는데 독일에서 주로 여유롭게 일어나고 내가 뭐할지 선택하는 하루를 보내서 금방 익숙해졌다.
내가 근무한 회사는 독일의 공기업이다. 법적으로는 사기업이지만 영리 목적의 프로젝트는 없고 예산을 전부 독일 정부 기관과 EU commission 같은 곳에서 지원받는다. 그래서 직원들이 ‚우리가 쓰는 돈은 세금이고 우리는 이 돈을 잘 써야한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다. 밖에서 보기에는 어떤 회사인지 불분명했지만 안에 들어오니 어떻게 운영되는지 더 잘 알게 됐다. 내가 보고 배우고 출장 후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들은 소문들을 토대로 6개월을 정리하고 싶다.
1. 정책이 먼저, 시민 의식이 먼저?
닭이냐 달걀이냐 같이 뭐가 먼저다 선뜻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대선 등 중요한 한국 선거에 ‚동성애를 어떻게 생각하냐‘라는 질문이 등장한다. 어이 없는 질문이다. 정책 관련 질문도 아니며 개개인의 사랑과 선택을 남이 지지하거나 반대할 수 없다. 이런 질문에는 항상 이상하고 애매한 답변이 나온다. ‚저는 반대하지만 국민 여론에 맡겨야…‘
시민 의식이 시민에 맞는 정책을 만들기도 하지만 정책이 꽤나 많은 걸 바꾸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독일에는 ‚feminist foreign policy‘와 ‚feminist development policy‘가 있다. 그저 pdf 몇 장의 가이드라인 같지만 독일 정부 기관이 발표한 이상 그 정부 기관과 연관된 곳들에서는 실질적으로 변화가 일어난다. 예로 우리 회사에는 이 정책이 중요해서 몇 번이나 이와 관련된 웨비나가 열렸고 gender를 프로젝트에 항상 포함해야 한다. 내가 일하는 fund에는 28개의 각기 다른 프로젝트가 있었다. 이 프로젝트마다 gender strategy를 개발해야 했다. 페미니스트 정책이 발표되기 전에 시작한 프로젝트는 젠더 전략이 없었지만 이 정책 이후로 젠더는 프로젝트에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내 프로젝트는 아직 초기 단계여서 여성 농부들이 중점이 되었고 엄청나게 긴 gender strategy도 국제 여성 단체 파트너와 함께 개발했다.
Gender disaggregated data라는 말을 나는 이전에는 들어본 적 없었다. 젠더 분리 통계는 형식적으로 이 프로젝트가 닿은 사람들을 젠더로 분리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나는 다른 프로젝트의 500개가 넘는 엑셀 데이터를 웹사이트에 올리는 노가다를 했다. 할 때는 참 눈 아프고 왜 엑셀을 올리면 자동 업데이트되는 단순 반복되는 작업을 사람이 해야할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인턴이란 자고로 그런 일들을 주로 맡게 되는 것이고… 아무튼 그 작업을 하면서 처음에는 숫자로 보이던 걸 점점 비교하게 되었다. 여성, 남성 농부를 기계적으로 반씩 나누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남성 농부의 비율이 70% 이상인 프로젝트에서 지불한 돈의 액수가 여성, 남성 농부가 반반씩 참여한 프로젝트에서 지불한 돈보다 훨씬 높았다. 0이 2-3개씩 차이 나는 확연히 다른 액수였다. 여성 농부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프로젝트에서는 실질적으로 field에서 필요한 기계를 지원하기도 했다. 여성 농부의 비율이 높은 프로젝트에서는 교육이 많았다.
여성 농부는 여러가지 unpaid 노동으로 혹사하고 농부가 아니라 ‚남편 농부를 도와주는 일손‘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가장 현실적이고 슬펐던 것은 여성 농부를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를 맡아주는 시설을 갖추는 것이었다. 남성 농부가 아이가 있건 없건 혼자 밭으로 나가는 동안 여성 농부들은 아이 돌보랴 밭에서 일하랴, 심지어 트레이닝을 들으러 갈 때도 아이를 데리고 가야 한다. 왜 여성의 이중, 삼중 노동은 역사가 시작한 후로 끝나지 않는 걸까.
다시 정책으로 돌아와서, 우리 회사와 가장 연관이 깊은 정부 기관이 젠더 정책을 발표한 덕분에 사내 ‚gender best practices‘ 콘테스트도 열렸다. 우리 회사 내에 어떤 프로젝트가 한 해 동안 가장 젠더 perspective를 잘 반영했는가를 뽑는 대회다. 단순한 컨셉이지만 이 대회로 회사에 어떤 프로젝트가 있었는지, 우리 팀에서는 누가 지원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젠더를 잘 반영하면 상금도 받는다니 선순환이 아닌가!
2. Diversity, gender, intersectionality
국제 협력 기구 특성상 유럽내의 프로젝트보다는 전 세계의 프로젝트가 많았다. 특히 Global South의 국가들이 ‚파트너‘ 국가였다. 우리 팀에는 인턴이 8명 있었다. 나와 한 친구(A)를 제외하고는 모두 백인이었다. 단 둘이 비 백인 아시안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친구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무슨 말을 해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A는 중앙아시아 출신 이민자 2세다. 아쉽게도 근무지가 달라서 가끔 만난 게 전부지만 어느날 A가 나에게 반가운 연락을 했다.
입사한지 얼마 안됐을 즈음 회사 내 Diversity 주간이 열렸다. 여러 연사를 초청해서 다양성과 인종차별에 대한 웨비나를 열었다. 이런 웨비나를 근무시간 내에 들을 수 있다니 참 좋았다… 이 회사의 좋았던 점은 일이지만 끊임없이 웨비나와 교육 기회가 제공되기 때문에 발전(?)하는 느낌이 든다. 외부 연사를 초청하기도 했지만 회사 내 큰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 프로젝트에 대한 발표가 열리고 ‚lessons learned‘를 나눈다. 그러면 다른 비슷한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들이 질문하기도 하고 어려웠던 점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나누기도 한다.
아무튼 A와 나는 한 흑인 페미니스트 연구자의 웨비나를 참 인상깊게 들었다. 그는 본인 책을 소리 내서 읽어주었고 그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거창한 피피티가 없어도 마음에 오래 남는 발표였다. A는 그 발표 후에 나에게 MS Teams로 전화를 걸었다. 우리도 뭐라도 함께 하지 않겠냐고.
나는 다양성 주간에 특히 아프리카계 연사들이 많았고, 인종차별을 말하는 웨비나에도 대부분 아프리칸 아메리칸사람들이 초청된 게 아쉬웠다. ‚아시안‘이라고 분류되는 사람들은 전세계 인류의 60%다. 아시안 내의 다양성도 엄청나기 때문에 사실 한 카테고리로 묶기 힘든 점도 있다. 우리는 아시안 diversity, 아시안을 향한 인종차별도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28개가 넘는 우리 팀의 프로젝트 중 절반 정도는 아시아 국가들에서 진행되지만 과연 독일 본사 직원들의 아시아에 대한 이해도는 얼마 정도일까? 의문이 들었다.
A의 제안에 나는 너무 감격했고 당장 하자고 했다. 하지만 주제도 정확하지 않고 자료도 없는데 맨 처음부터 발표준비를 시작하자니 막막했다. 그래서 나는 gender&diversity 인턴으로 근무하는 친애하는 C에게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미국인 백인 남성이지만 내가 독일에서 만난 누구보다 더 사회 비판적인, 백인 기득권 비판적인 사람이다. 아무튼 좌충우돌 셋이 아이디어를 모으고, 어떤 부분 발표를 누가 할지 정하고, 피피티 템플릿을 정하고 팀 내에서 발표를 진행했다.
우리 팀에는 그저 빛이라고 할 수 있는 I가 있다. 그는 중앙아시아 출신 이민자로, 아주 어린 나이에 독일로 이주했다고 한다. 그는 사내 Diversity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우리 발표를 적극 응원해줬다. I는 인턴들이 입사했을 때 시간을 내서 ‘Diversity Onboarding’도 해줬다. 나는 그를 너무너무 존경했고 그의 모든 행동이 페미니스트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팀 내에 영향력이라곤 거의 없는, 그저 있다가 떠날 뿐인 인턴들의 목소리를 들어줬고 인턴들을 위해 더 높은 직급 직원들에게 요구했다. 페미니즘은 권력에 질문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용감하고 항상 열심히 일하는 I가 나는 너무 좋고 존경스럽다.
발표에서 아쉬웠던 점은 부장급 보스 직원들은 거의 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직급이 높지 않은 직원들과 인턴들은 많이 참여해서 기뻤다. I는 팀 전체 채팅에 ‘오늘 인턴들의 Asian Diversity’ 발표에 부장급 직원들은 오지 않는거야?’라고 보냈다. 나는 마침 발표중이라 ‘어랏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것일까?’하고 아찔했지만 그렇게 말해준 그가 고마웠다. 인턴들은 아마 절대 못했을 말…
발표가 끝나고 I는 자신도 아시안이지만 한번도 아시안의 다양성, 아시안에 대한 인종차별을 다뤄야겠다는 생각을 못했다고 나눠주었다. 이 주제는 아주 중요하고 우리팀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서 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래서 A와 나는 바로 다음날 유색인종만 참여할 수 있는 safe space인 ‘다양성 위원회’에서 똑같은 발표를 했다. 다양성 위원회도 I를 제외하고는 아시안이 한 명도 없었고 대부분 아프라카 국가들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었다. 그들도 우리의 발표가 매우 새로웠고 중요한 문제라는 걸 느끼게 됐다고 얘기했다. 나는 너무너무 뿌듯했다… 인턴 생활 중 가장 뿌듯한 게 Asian Diversity 발표였다.
마지막으로는 전체 부서 차원에서 I와 함께 발표했다. A와 내가 발표를 했고 그 후에 I가 새로운 내용을 덧붙였다. 사람들이 많이 올까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미 diversity나 gender 주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여성 직원들이 많았다. 우리 발표는 그런 주제들을 위협으로 느끼는 백인 남성 부장급 직원들에게 필요한 건데.. 아쉬웠다. 모두에게 열린 두 번의 발표가 있었지만 백인 남성 부장급 직원은 한 명도, 한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나는 사내 젠더 모임에도 참여했다. 누가 보면 나는 gender&diversity 인턴인 줄 알았을 거다. 젠더 모임에는 의외로 성비가 반반이었다. 젠더 모임을 이끄는 사람들은 30대 여성 직원 한명과 40대? 혹은 50대 남성 직원이었다. 나이나 성별에 상관 없이 젠더는 누구나에게 중요한 문제고, 함께 토론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여성 페미니스트만큼 남성 페미니스트도 중요하다.
내 팀이 속한 부서에는 한달에 한번씩 Gender Onboarding이 있었다. 이 미팅은 두시간 반이나 진행됐는데 발표와 토론이 함께 진행됐다. 분명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다고 했는데 토론이 길어지고 질문이 많아져서 쉬는 시간이 거의 없어졌다. 그만큼 참여한 사람들의 열의가 대단했다. 나는 프로젝트 내에서 리포트를 쓰거나 사진촬영을 할 때도 젠더와 탈 식민주의, diversity를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을 듣고 놀랐다. ‘빈곤 포르노’라는 말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빈곤 포르노는 그 사진이나 영상을 보는 순간 바로 그 충격이 전달된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국가들을 아직도 그렇게 평면적으로 그려야 할까?
Gender Onboarding에서는 성차별의 양상과 성 문화가 다른 파트너 국가에서 프로젝트가 잘 되지 않은 경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어떻게 미디어로 스테레오타입을 재생산하는지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아이를 안고 밥 짓는 여성의 사진을 촬영할지, 여성들이 농부로서 노동하는 사진 촬영을 할지, 남성들이 가사일을 하는 사진 촬영을 할지. 사진 한 장에 담긴 메시지가 리포트 보다 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익숙하고 쉽고 재미없는 미디어는 가부장제를 재생산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게 만든다.
“전쟁만 폭력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 불가피한 전쟁도 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타인이나 집단 전체를 이용하는 행위는 가장 뿌리 깊은 폭력이다(심장병 어린이를 돕고 싶으면 조용히 치료를 주선해줄 수 있다.) 문화 연구, 탈식민주의, 여성주의, 인류학 등 현대 인문학은 재현의 윤리에 대해 깊이 고민해 왔다. 이들 학문의 목적 자체가 이 윤리와 정치 경제학에 대한 탐구이다. ”
-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