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9시 디즈니 만화 동산을 보고 있으면, 리모컨을 빼앗겨 심심했던 아빠는 가끔 산에 올라갈 채비를 하셨다. 혼자 가시기는 적적하셨던지 소파에 엎드려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나에게 제안을 하셨다.
“해나야, 등산하러 가자. 지금 가면 시원해서 금방 올라갈 수 있을 거야.”
일요일은 쉬는 날이지, 산에 올라가는 노동을 하는 날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였기에 완강히 거부했다.
“아 싫어, 나는 정말 등산이 싫어! 어차피 내려올 거 왜 올라가?”
집에서 뒹굴뒹굴하고 싶던 나는 어떻게든 적당한 구실 거리를 찾아 등산을 피했다. 그러면 머쓱해진 아빠는 그다음 타깃인 동생의 방으로 들어가 신나게 게임을 하는 녀석의 뒤통수를 치며 이번에는 좀 더 강압적으로 등산을 하러 가자고 이야기를 하셨다. 불쌍한 내 동생은 어쩔 수 없이 아빠를 따라 산을 타러 갔는데, 뭔가 모를 미안함과 동시에 나는 따라나서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일요일의 뒹굴 모드를 시작하며 생각했다.
‘사람은 왜 산 정상을 오르려고 하는 걸까?’
2019년 7월 17일, 아빠가 뇌출혈로 쓰러진 날. 미국에 있던 나는 그날을 기억하지 못한다. 엄마와 남편이 혼자 있는 나를 걱정하며 알리지 않기로 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즈음 나는 평생 워커홀릭으로 살아오신 아빠가 너무 걱정되어 일을 그만 좀 줄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메일 한 통을 보낸 참이었다. 아빠와 연락이 안 되기 시작하자 내가 보낸 메시지에 아빠의 기분이 나빠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미국에 떨어져 있는 딸이 안부 하나 묻지 않고 더운 여름에 열심히 일하고 있는 아빠에게 일하지 말라고 했으니 좀 섭섭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다시 메일을 보냈다.
아빠랑 엄마, 밥은 잘 챙겨 드시는지 궁금해요.
혹여 미국에 떨어져 있는 나를 조금이라도 걱정하고 있다면 부디 그러지 마시기를.
남들이 많이 한다는 제주도 한 달 살기는 못하더라도 2~3일이라도 제주도 가서 피서는 꼭 하고 오시기를 바라요.
일을 줄이라는 단호한 메시지 대신에, 아빠에 대한 걱정과 사랑을 가득 담아 한마디를 살짝 덧붙였다.
아빠 이제 천천히 내려오는 연습을 해야 할 시간이야.
평생을 더 높고 높은 목표만 지향해오던 아빠였다. 누구보다 그의 두 어깨에 놓인 짐과 부담감을 잘 이해하는 나였지만 평생 저렇게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삶의 의미를 잃고 휘청거리게 되실까 걱정이었다.
그 후, 몇 주 동안 답이 없는 아빠를 대신해 어느 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반가운 엄마 얼굴도 잠시, 휴대폰 화면 너머로 새하얀 병원 천장이 보였다. 무슨 일인가 사태 파악하기도 전에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아빠가 보였다. 그때까지 참아왔던 울음을 삼키며 엄마는 아빠의 상태를 알려주었다. 그날 나는 모든 일을 다 내팽개치고 바로 비행기표를 예매해 한국으로 왔다.
아빠만의 방법이었을까. 도저히 스스로 내려올 수 없는 당신을 위한 어쩔 수 없는 방편이었을까, 아니면, 신께서 내리신 특단의 조치였을까.
어릴 적부터 원대한 꿈을, 높은 목표를 갖고 살라는 말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지만, 막상 우리는 내려오는 법을 배우지는 못했다.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다가 다시 돌아갈까 하는 악마의 속삭임도 잠시, 이를 이겨내고 가까스로 다다른 산 정상에서 나는 땀을 쓱 닫고 더 오를 곳이 없다는 뿌듯함과 함께 ‘야호~’을 외친다. 허무하다. 5분 전의 나와 비슷한 표정으로 산 정상에 다다른 사람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탄 듯 계속 올라오고 나는 하릴없이 하산할 채비를 한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다다다다다 내려간다. 올라오는 발걸음은 그렇게 무거웠는데 내려가는 발걸음은 깃털과 같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은 내려가는 일이 그렇게 쉽지 않다. 내려오는 일은 그 무엇보다 무섭다. 후다다다 내려올 용기가 나에겐 없다. 계속 높은 곳에 머물고 싶다.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다다랐으면 또 다른 사다리를 그 산 정상에 세우고 싶다. 우리는 미처 내려오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목표 지향적이던 아빠는 인생의 꼭짓점에서 천천히 하산하는 대신에 너무 아픈 방법으로 내려왔지만, 엄마의 지극한 사랑과 병간호로 지금은 다행히 많이 완쾌하셨다. 지금 아빠는 대구에서 청도로 아예 거처를 옮기셨다. 엄마가 꿈꾸던 전원주택에 자그마한 텃밭을 가꾸고 풀과 나무를 심으며 또 다른 인생의 변곡점을 지나고 계신다.
누구든 하산하는 때가 있다. 그리고 각자의 방법이 있다. 이제라도 나는 아빠의 손을 잡고 등산하러 가야겠다. 그리고 이야기해야지.
“아빠 우리 하산하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