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의 연말회고
"올해 일년동안 나랑 대화하며 느낀 감정을 여과 없이 이미지로 표현해줘"란 메세지에 챗지피티는 웬 광기 서린 혼돈 속의 인물을 그려냈다. 이 인물이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분간이 어렵다. 전체적으로 어두컴컴하고 왠지 불쾌한 기운이 도는 이 이미지에 거부감이 든다. 사실은 올해의 나를 너무 적나라하게 잘 표현한 것 같아서, 올해가 마냥 핑크빛이 아니었다는 걸 확인사살 시켜주는 것 같아서 보기 불편한 사진이다.
사진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니, 고통스러운데 웃고 있고 무너질 것 같은데 각성된 상태를 표현했다고 한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느낌이 아니라 무너져가는 과정을 눈 부릅뜨고 생생하게 관찰하는 느낌이었다고. 왼쪽의 편안한 자연과, 오른쪽의 잡다한 어둠의 괴리 속에서 많이 웃고 울었던 한 해다. 다양하게 부딪히고 여러 대상을 붙잡고 고민할 수 있어 참 길고 풍부했던 2025년이었고, 실험 & 선택이란 올해 목표 테마에 견주어보면 만족스러운 해다.
1. 내 자신을 많이 관찰했던 한 해다. 내 결핍과 방어기제를 더 잘 이해하게 됐고, 방어용 자아를 많이 내려놨다. 존재감과 안전감에 대한 결핍을 잘 다뤄가며 살아야겠다.
2. 나와 타인, 일과 세상에 대한 엄격함과 비현실적인 기대를 내려놓았다. 이해되지 않는 건 바로잡아야 할 오류이고, 불편함은 싸워야 할 문제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많은 걸 연민으로 대해보자고 생각하게 됐다.
3. 서로를 알아봐줄 수 있는 사람들이 정말 있다. 한 두번의 만남으로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는 경험을 했고, 앞으로 사회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일들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깊은 연결을 위해서는 성실한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4. 여행과 글쓰기란 확실한 취미가 생겼다. 창작이 좋고 심리와 철학이 궁금해졌다.
5. 생각보다 많은 어른 세계의 일들은 대학교 동아리 행사 기획 과정과 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지레 겁 먹을 일 없이 조금 더 진취적으로 즐겨봐도 괜찮겠다.
6. 최적의 나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여러 장르를 능히 소화할 줄 아는 배우처럼 지내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떨 땐 예능처럼 가볍게, 어떨 땐 액션처럼 단단하게, 또 언제든 로맨스 드라마를 할 줄도 알고.
7. 어른의 얼굴을 하고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모두에게 아이같은 모습이 있다. 그 아이다움을 예쁘게 바라봐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내년엔 조금 더 유치하고, 순수하고, 마음 활짝 열어둔 상태로 지낼 생각이다.
8. "언제 편안함을 느끼냐"는 질문을 받고 반년동안 머리에 맴돌았다. 여태껏 편안을 추구해본 적 없어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지만, 편안해지기 위해 노력하면서부터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질문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내년엔 편안함을 테마로 또 잘 살아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