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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 Aug 05. 2022

인생에 흥미로운 것이,

조울의 기반은 우울

 요즘은 밤마다 화가 난다. 자고 싶지는 않은데,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게임을 하고 싶지도 않고, 휴대폰으로 들여다볼 것도 별로 없다. 책을 읽을까 생각하고 책장을 보면, 읽고 싶은 책이 하나도 없다. 아니, 읽고 싶다가도 금세 관심이 식고 독서의 지루함만 떠오른다. 

 카테고리 별로 잘 나누어 꽂힌 책들을 보며 말했다. 요즘엔 소설은 잘 못 읽겠어.

 관계나 갈등, 감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룬 소설은 어김없이 내 진을 쏙 빼놓는다. 예전에도 한국 소설은 잘 읽지 못했다. 소설 속에서는 현실에 꼭 있을 법한 일들이 벌어지고, 한국이 배경인 경우에는 몰입하기 쉬워져 읽다 보면 기분이 찝찝해졌기 때문이다. 요즘은 한국 소설은 물론, 가상시대를 배경으로 한 외국 소설마저도 손이 가지 않는다. 

 나도 그래. 이래서 점점 비문학을 읽게 되나봐. 

 배우자의 말을 듣고 책장의 요리 관련 칸에서 책 두어 권을 골랐다. 이건 근시일 내로 읽어야지. 그런데 오늘은 아니야. 

 분량을 확인하고 다시 자리에 꽂아 두며, 이제 인생에 흥미로운 것이 별로 없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주변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것은 내가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 사는 것에 비교적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다지 즐겁지 않은 것이 이 병의 증상 중 하나이기 때문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일상을 지내는 동안 꽤 자주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는 소식들을 듣고,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는 일들을 경험한다. 인생에는 아직도 새롭고 흥미로운 일들이 넘쳐난다. 다만 그것들이 내게 큰 감흥을 주지 못할 뿐이다. 


 기분조절제 때문일까. 요즘 큰 슬픔을 느끼지 않고, 그다지 흥미로운 일이 없는 것에 비해 화가 많아졌다. 

인생이 흥미롭지 않은 것에 화가 났다가, 이내 요즘 화를 퍽 자주 내는 내 모습에 또 화가 났다가, 종국에는 그냥 나 자체에 화가 치밀었다. 있지, 사람이 각각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야. 나는 내 모양에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어. 이 모양은 내가 고른 거라 다른 사람을 탓할 수도 없다는 게 너무 화가 나.  

 사고에서 사고에 대한 사고로, 결국 나 자신으로. 이렇게 화를 내는 과정은 내가 슬퍼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슬픔은 화로, 조증은 예민함으로 나타날 수 있다. 화가 슬픔의 한 형태라면 내 슬픔은 결국 조절되지 않은 것이 아닌가. 


 그러다가 문득 무서워진다. 어쩌면 병이나 약 때문이 아닐지도 몰라. 살아온 날들이 길어질수록 사는 것에 점점 더 익숙해질 테고, 그러면 지금보다 더 많이 삶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이것이 나이 드는 것에 자연히 딸려오는 현상이라면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되는 걸까. 삶이 삶이 아니라 그저 생(살아 있는 상태)으로 남게 된다면. 나는 지금도 살아져서 살아있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이렇게나 애쓰고 있는데. 

 그래서일까, 마흔 이후의 삶은 여전히 요원하다. 아주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된 아빠의 모습을 떠올리지 못한 것과 비슷하다.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인 것만 같은 기분. 그러나 아빠는 이제 청년보다는 할아버지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고, 나도 그렇게 마흔이 될 것이다. 양극성 장애는 평생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으므로, 마흔의 나는 여전히 기분조절제와 항우울제를 복용하며 사는 게 흥미롭지 않은 것이 약물 때문인지 병 때문인지 삶 때문인지 고민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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