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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뿐사뿐 걷기 Jul 25. 2022

비둘기 마을의 세입자

마흔, 나를 키우는 육아 일기

 우리 동네 비둘기는 ‘구구구‘ 울지 않는다. 역시 사람이든 동물이든 겪어봐야 자세히 알게 되는 게 있다. 우리 동네에는 다양한 새들이 사는데, 이름 모르는 텃세랑 까치, 가끔 까마귀 소리도 들리고, 심지어 왜가리도 날아드는 곳이다. 아파트 사이를 흐르게 만든 작은 하천 덕분에 운이 좋은 날은 왜가리가 물고기를 잡는 장면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도 있다. 사파리가 따로 없다. 그렇게 다양한 새들이 함께 살고 있건만 압도적으로 수적 우세를 보여주는 것은 단연 비둘기. 도심의 천덕꾸러기가 된 지 오래인 비둘기는 우리 동네에서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똥 폭탄 테러다. 아파트 사이에 만들어진 산책로는 오래된 나무 그들 덕에 여름이면 주민들에게 특별히 사랑받는 곳이다. 문제는 비둘기들에게도 이곳이 핫플레이스라는 점. 나뭇가지에 떼로 앉은 비둘기들은 수시로 똥을 내려 산책로 바닥 여기저기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운수 나쁜 날엔 비둘기 똥이 머리 위로 떨어지기도 한다.      


 비둘기는 주로 하늘에, 인간은 땅에 살고 있으니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둘기 똥만 잘 피할 수 있다면 큰 불편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시작된 비둘기의 방문으로 무언의 평화 협정은 깨지고 말았다. 하루 중 가장 고요하고 평화롭던 아침 시간. 몇 달 전부터, 창밖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듯 이어지는 비둘기 소리는 요란하다 못해 요상하기까지 했다. 구구구의 단순한 구음이 아니라 좀 더 복잡하고 리드미컬한 소리다. 드르륵-꾸룩 드르륵-꾸룩. 여기서 시작 음인 드르륵은 미닫이문이 열리고 닫힐 때 소리처럼 무언가 굴러가는 소리와 비슷하긴 한데 그렇게 건조하지 않다. 목울대를 한껏 간 들어지게 떨면서 내는 소리로, 드르르르륵~~ 하고 떨어주다가 짧은 비명처럼 포인트를 주며 꾸룩. 이걸 무한 반복한다. 평화롭던 나의 아침은 요란한 비둘기 소리로 사라졌다.      




 비둘기의 야생 리얼 사운드는 어느 날, 창밖에서 시작됐다. 지은 지 10년이 훌쩍 넘은 아파트. 12층. 꼭대기가 23층이니 중간쯤에 살고 있다. 요즘 짓는 새 아파트와 달리 우리 아파트엔 에어컨 실외기를 두는 외부 공간이 있다. 거실 옆, 작은 방의 창문 아래로 실외기가 들어갈 정도의 작은 공간이 집집마다 있는데, 문제는 여기에 놓인 실외기가 비둘기들이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것. 아파트 대부분이 방충망과 유리로 막혀 매달릴 곳 하나 없지만, 우리 아파트는 집집마다 비둘기를 위한 쉼터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언제 입소문이 났는지 비둘기들이 우리 집 실외기 위로 자주 방문하기 시작했다. 소리를 들어봐선 한 마리는 아닌 듯했다. 아침 일찍부터 마실 나온 엄마 비둘기들이 브런치 수다를 떠는 건지, 연인 사이인 비둘기들이 사랑을 속삭이는지. 아무튼 그 드르륵-꾸룩은 순차적으로 들리다 가끔 겹치기도 하면서 매일 아침, 꺼지지 않는 알람처럼 나를 찾아왔다.      


 창문을 두드려볼까? 새를 무서워하는 나는 바로 옆에서 생생하게 들리는 비둘기 울음은 물론이고 날개를 접고 펼칠 때 나는 푸드덕 소리만 들어도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으니, 어떻게 해야 저 시끄러운 불청객들을 쫓을 수 있을지 궁리했다. 좌우 창문 중 한쪽에 블라인드를 쳐놨는데 비둘기들도 프라이빗한 공간이 좋았는지 블라인드가 쳐진 창문 쪽에서 자주 모임을 가졌다. 블라인드가 쳐진 창문을 두드릴까? 그럼 놀라서 도망가겠지? 다신 안 오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어느새 눈앞의 모니터에 일어나는 일을 처리하다 보면 나의 ’ 불청객 소탕 작전‘은 금세 뒷전으로 밀려났다. 어느 날은 도대체 얘들이 무얼 하나 궁금해서 책상 위로 올라간 적이 있다. 그러다 눈이 마주쳐버렸다. 실외기 위에는 두 마리의 비둘기가 마치 전망 좋은 카페라도 찾은 듯 여유롭게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한 마리가 책상에 엉거주춤 올라서던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 것. 그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움츠러들면서 들고 있는 쿠션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게 무슨 난리인가. 여긴 내 집이고 나는 인간인데. 저 작은 비둘기의 무심한 시선에 이토록 쪼그라들다니.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막상 그들의 정체를 정면으로 확인하고 나니. 그들과 나 사이의 튼튼한 이중창도 눈에 들어왔다. 그래 저들이 창문을 뚫고 들어오지만 않는다면. 그리하여 나를 위협하지만 않는다면 그리 야박하게 굴 것까지야 없지 않은가.      



 

 나는 공식적으로 비둘기 카페를 오픈하기로 했다. 그들이 언제든 우리 집 실외기에 머무는 것을 허용하기로. 그들은 시끄럽고 거슬리는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조용히 앉았다 가는 경우도 꽤 있었다. 내가 몰랐을 뿐. 그렇게 공식적으로 자리를 내어주고 나니 오히려 신경이 덜 쓰였다. 저 수많은 실외기 중에서 우리 집 실외기를 선택해준 것에 대해 약간의 자부심을 느끼는 날도 있었다. 혹시 저들한테 우리 집이 로열층인가?      


 그렇게 새롭게 평화 협정이 맺어지고 나는 비둘기 카페의 주인으로 그들에게 아량을 베푸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날. 우리의 관계는 역전됐다. 회색 구름이 잔뜩 끼어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씨. 거실 창으로 어두운 하늘을 보다가 시선이 아래로 향했는데 아파트 동과 동 사이 공간으로 비둘기들이 신나게 활강하는 게 보였다. 양 날개를 활짝 펴고 땅에 가까워지도록 날다가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먹이 활동을 하는 건가? 한참 넋을 놓고 봤다. 비둘기들은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날아다녔다. 실외기에 앉아 쉬었다가 금세 다시 비행을 시작했다. 넓은 공간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비둘기의 자유를 부러워하다가 문득 이곳이 비둘기 마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비둘기의 시선에서 보면 이곳은 거대한 콘크리트 돌기둥이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는 안전한 요새 같은 곳. 그리고 돌기둥엔 일정한 간격의 높이로 쉼터도 마련되어 있으니 이보다 더 편리하고 안전한 곳이 있을까. 그들의 눈에 인간은 돌기둥에 굴을 파고 살아가는 동물쯤으로 보이지 않을까? 내가 이곳의 주인이고 비둘기를 손님이라 생각했는데. 그날. 비를 몰고 오는 구름이 가득하던 그날. 비둘기들이 활개를 치던 그날. 나는 비둘기 마을의 세입자가 되어 그들의 신나는 축제를 관람했다. 원래 그들의 세상인 듯 자유롭고 당당하게 날아다니던 비둘기들. 그들에게 나는, 우리 인간은 어떤 손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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