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어느 날, S.O.S 집들이를 했다. 그 시작은 엄마표 식재료가 담긴 택배였다. 박스 속에는 온갖 제철 채소가 가득했는데 부지런히 만들어 먹어도 도저히 혼자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아욱이 많아 아욱국 한 번 끓이면 네 끼는 먹을 양으로 짐작됐다. 부추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이 정도면 정말 삼시 세 끼 집밥을 만들어 먹어야 할 정도인데 직장인은 평일 저녁, 주말 정도만 집밥을 먹을 수 있다. 이걸 어떻게 다 해결할까 고민에 빠졌다. 정성스레 기른 채소들을 오래 두고 상하게 할 순 없었고, 종류가 다양하니 이것저것 요리해보고 싶기도 했다. 불현듯 집들이에 초대하기로 하고 정작 날짜를 안 잡았던 친한 친구가 떠올랐다. 바로 연락해서집에 식재료 너무 많으니 와서 좀 먹어달라고 도움을청하며(?)초대 날짜를 잡았다.
그렇게 친구가 오기로 한 날. 메뉴는 부추전, 부추어묵볶음, 차돌부추무침, 김치찜, 오이고추무침, 과일샐러드, 새우아욱국 등으로 정했다. 거창해 보이지만 모두 다 만드는데 한 시간 정도를 잡았다. 평소에 워낙 자주 요리하다 보니 종류가 많다고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고, 요리순서와 만드는 시간만 잘 분배하면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평일이라 일을 마치고 만들어야 하다 보니, 집에 없던 재료인 고기를 살 시간이 없어 배민 어플에 있는 빠른 배달이 되는 B마트에서 퇴근 시간에 맞춰 도착할 차돌박이를 골라뒀다. 그런데 하필 갑자기 하늘에 구멍 난 수준으로 소나기가 심하게 쏟아지며 배달이 불가한 상황이 됐다. 결국 차돌부추무침은 눈물을 머금고 포기한 채 밥을 안치고, 아욱국용 국물을 우리며 나머지 요리에 집중했다. 아쉬운 대로 부추전을 마치 동그랑땡처럼 업그레이드해서 메인 요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땀 흘리며 열심히 차려낸 밥상을 완성할 무렵, 친구가 도착했다. 일이 바빠서 점심도 제대로 못 먹어 배고프다는 친구는 밥상을 보고 무척 좋아했다. 하나씩 먹을 때마다 맛있다고 극찬을 하며, 비싼 돈 주고 팔아도 되겠다는 말까지 해주는 덕분에 기분이 좋았다. 아. 이 맛에 요리한다. 친구가 도대체 국이 왜 이렇게 맛있냐고 물었다. 다시마, 새우, 버섯으로 국물을 먼저 우리고, 된장도 두 종류를 섞어서 넣을 만큼 신경 썼다. 일일이 다듬은 아욱도 듬뿍 넣었다. 나름 정성을 들인 것이 맛의 비결이다.
평소에 먹는 양이 많지 않은 친구가 밥을 더 먹을 만큼 맛깔나게 식사를 마치고 맥주에 과자를 먹으며 밀린 수다를 떨었다. 여자들의 수다는 끝이 없을 만큼 재밌었다. 음악도 틀어놓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눈 시간은 정말 행복했다. 스트레스받았던 일상 속 온갖 일들이 다 잊힐 만큼, 그 순간 자체가 힐링이었다. 마음 맞는 친구가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그렇게 엄마가 보내준 한 박스의 식재료 꾸러미 덕분에, 친구와 오랜만에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혼자 먹었으면 간단하게 차려 먹었을 텐데, 함께 먹으니 더욱 맛있고 다양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냉장고 털기 S.O.S 집들이는 그렇게 성공적으로 끝났다. 밥상으로 행복을 나눈 날이었다.
<집들이 요리 레시피>
1) 동그랑땡 같은 전
부추, 햄(참치), 버섯, 양파 등 집에 있는 채소를 비롯한 다양한 재료를 잘게 썰어 준비한다. 나는 2인분이라 2인 기준 계란 2~3개에 부침가루를 넣어 반죽했다. 부침가루와 햄에 이미 간이 되어 있으니 소금은 조금만 넣어준다. 부침가루는 두 숟가락 정도 넣어주고, 감자전분과 같은 전분가루를 1 티스푼 정도 넣어준다. 조금씩 떠서 중불에 부친다. 부침가루를 많이 넣지 않아도 전분가루가 전의 모양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부쳐내면 동그랑땡의 식감과 맛이 나는 전이 완성된다.
2) 부추어묵볶음
부추는 없어도 된다. 어묵만 있어도 되고 부추 대신 파프리카, 양파 등 집에 있는 다른 채소로 대체 가능하다. 기름을 적당히 두른 프라이팬에 소량의 물, 잘게 썰은 마늘과 어묵을 넣어 볶는다. 살짝 볶아졌을 때 진간장, 설탕(혹은 물엿 등 당류) 조금 넣어 간을 맞춘다. 살짝 달고 짭조름하면 된다. 어묵 자체에 이미 간이 되어 있고, 종류나 브랜드에 따라 간이 되어 있는 정도가 다르니 가지고 있는 어묵의 기본 간에 맞게 간장을 넣어 간을 맞추면 된다. (간혹 너무 짠 어묵도 있으니 그런 어묵은 간장을 정말 조금 넣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부추를 넣어 한 번 볶아내고 바로 불을 끈다. 부추는 너무 익으면 질겨지고, 오래 볶으면 숨이 죽고 색이 안 예뻐지니 정말 마지막에 한 번 스치듯 볶아내고 바로 불을 끄는 게 좋다. 접시에 담아 깨를 뿌려 마무리한다.
3) 오이고추 무침
오이고추를 한입 크기로 썰어 된장, 설탕(단 맛을 싫어하면 생략할 것), 참기름, 깨를 넣어 살짝 무친다. 너무 세게 무치면 오이고추가 물러질 수 있으니 살살 무치면 된다. 된장은 집에 있는 된장의 염도가 다 다르기 때문에 된장의 염도 따라 간을 맞출 수 있는 정도로 넣으면 된다. 된장을 적당히 넣은 것 같은데 싱겁다면 간장으로 나머지 간을 맞춘다.
4) 견과류과일샐러드
사과 한 개를 썰고, 봉지에 담겨있는 하루 견과 1~2봉을 담는다. 마요네즈, 식초, 꿀을 넣어준다. 마요네즈, 식초, 꿀은 범벅이 될 정도로 넣는 게 아니라 조금씩만 넣어 깔끔하게 재료(과일 및 견과류) 본연의 맛을 살려준다. 샐러드 같은 맛이 나는 상큼한 견과류 과일 샐러드가 쉽게 완성된다. 집에 다른 과일이 있다면 함께 넣어준다. 정말 쉽고 간단한데 항상 반응이 좋은 집들이 메뉴다.
5) 새우아욱국
다시마, 버섯(말린 버섯, 생버섯, 가루 다 가능), 새우(나는 반건조 중하를 사용했는데, 이건 집에 있는 새우 아무거나 넣으면 된다)를 넣어 국물을 먼저 우려낸다. 20분 정도 끓였으면 다시마는 건져낸다. 이후 된장을 넣어 국물의 간을 맞추고, 손질해둔 아욱을 듬뿍 넣고 다진 마늘을 조금 넣어 마무리한다. 개운하고 시원한 맛의 아욱국이 완성된다. 혹시 집에 새우 종류가 없다면 새우를 빼고 그냥 아욱국으로 만들어도 괜찮다.
*김치찜은 '자취생의 요즘 집밥' 김치볶음 레시피 참고. 김치볶음 레시피 조리 과정 중 물만 더 넣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