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올해 들어 반반차가 생겼다. 반차의 반차, 즉, 2시간짜리 연차다. 이 깨알같으면서 매력적인 연차를 언제 써보나 했는데 퇴근 후 집들이 오는 친구들을 위해 첫 반반차를 쓰기로 결심했다.
내가 2시간이라도 일찍 퇴근해야, 퇴근한 친구들이 오기 전에 요리를 어느 정도 완성해둘 수 있으니까. 다들 일하고 와서 배고플 텐데 기다리게 할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이랄까.
메뉴는 잡채와 김치삼겹두루치기, 어묵탕으로 정했다. 얼마 전 잡채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한 적 있는 친구 1의 이야기가 떠올라 선정한 메뉴다. 잡채가 담백하니 빨간 음식 하나 추가해야 궁합이 맞을 듯해서 김치삼겹두루치기도 준비했다. 단, 친구 2가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기 때문에 빨갛지만 맵지 않게 하는 게 포인트다. 나는 매운 걸 좋아하는 청양고추 마니아지만 오늘만큼은 청양고추 사용을 자제할 것이다. 국물이 빠지면 섭섭한데, 요리할 절대시간이 부족하니 제일 쉽고 만만한 국물요리인 어묵탕을 마지막으로 메뉴 라인업을 완성했다.
잡채를 본 친구 1은 무척 좋아했고, 빨갛게 볶은 김치삼겹두루치기는 맵지 않아 친구2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이렇듯 누군가를 위해 요리할 때는 그 사람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어떤 것을 잘 먹지 못하는지 취향을 파악해야 한다. 아무리 근사하고 휘향 찬란한 요리를 한다고 해도 먹는 사람이 선호하지 않거나 못 먹는 요리라면 의미가 없다. 누군가를 위한 요리는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런'타인을 위한 요리의 법칙'은 우리가 타인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적용된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기업 홍보팀에서 언론홍보를 하고 있다. 주 업무 중 하나가 회사 관련 보도자료를 써서 언론사 기자들에게 배포해 기사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도자료를 준비하다 보면, 회사에서 원하는 것과 기사로 소구 될 가치가 있는 콘텐츠 사이에 간극이 있을 때가 있다. 이 부분을 잘 조율해 자료를 만드는 게 나의 일이기도 하다.
가끔 이 소재는 기사로 잘 팔리기 어렵겠다 싶은 게 있다. 그럴 때는 '안된다'라고 하기보다는 '이런이런 부분에서 기사로 소구 되기 조금 약해서 이렇게 자료 콘셉트를 잡고 이런 내용을 추가해서 쓰면 괜찮을 것 같아요'라고 설명을 해준 후 추가로 필요한 것들을 요청해 자료를 만든다. 우리 회사에서 기사화되길 바라는 소재가 있다면, 나는 그들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잘 듣고 최대한 해줘야 한다. 한편, 하루에도 수십수백 개의 보도자료를 받아보는 기자님들의 노고를 생각해 최대한 기사로 쓸만한 내용으로 만들어서 배포해야 한다.
그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대로 판단하고 결정할 일이 절대 아니다. 일을 진행할 때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듣고, 물어보고, 끊임없이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야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혼자 만족하는 것에 그치기 위해 회사에 소속되어 일 하는 게 아니니까.
물론 이런저런 이해관계 혹은 어쩔 수 없는 이유들로 모두를 만족시키기 어렵거나, 최선의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혼자 속으로 끙끙 앓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많은 과정을 거쳐 그 안에서의 최선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의 말을 잘 듣고, 내 의견과 생각을 상대가 이해할 수 있게 잘 설명해줘야 한다. 말이 쉽지 사실 참 어렵지만, 마치 누군가를 위해 요리할 때처럼그 사람이 평소 어떤 식성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생각하고 묻고, 그 사람을 위한 한 끼를 차린다고 생각하면 그리 어려울 일도 아니다.
*잡채/김치삼겹 두루치기 레시피
1) 잡채 만드는 법: 잡채 면은 최소 30분 정도 물에 불리는 게 좋다. 면을 불리는 동안, 잡채에 들어갈 고기, 어묵, 버섯, 채소 등 준비한 재료를 잘게 썰어 볶고 소금으로 약간 싱겁게 간을 맞춘다. 불린 면을 끓는 물에 넣고 7~8분 정도 익혀준다. 면을 하나 건져 먹어 익힘 정도를 파악한 후, 2~3분 더 익혀도 된다. 채반으로 건져 물기가 빠진 면과 익힌 채소, 고기, 어묵 등과 한데 담아 맛간장 혹은 진간장, 참기름을 넣어 섞는다.
2) 김치삼겹 두루치기 만드는 법: 얇게 썰은 삼겹살, 잘 익은 김치를 썰어서 준비한다. 부재료로 마늘, 양파, 대파, (청양)고추도 썰어준다. 모든 재료를 한데 담고, 고추장, 진간장, 매실액(혹은 설탕), 후추(조금), 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려 잠깐이라도 재워두면 좋다. 삼겹살에 기름이 충분해 따로 기름을 두르지 않고 볶으면 된다. 다 볶으면 참기름을 아주 조금 넣어 풍미를 살려준다.
3) 요리 팁 : 나는 잡채를 할 때 삶은 면을 별도로 헹구지 않는데, 이 방법이 잡채가 남아도 상하지 않고 보관해두고 먹기 좋은 것 같다. 너무 뜨거워 면끼리 들러붙는 건 참기름이 해결해준다. 김치삼겹 두루치기는 혹시 삼겹살의 기름이 너무 많을 경우 프라이팬을 살짝 기울여 기울인 곳으로 기름이 모이면 키친타월로 닦아낸다. 김치를 너무 많이 넣으면 간이 짤 수도 있으니 조절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