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하는 직장인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집밥을 해 먹는 게 즐겁고 당연한 일상을 보내는 나도 가끔 밥 하기 귀찮을 때가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몸이 아픈 날, 마음이 아픈 날(?), 피곤한 날, 설거지가 밀린 날 등등 온갖 이유가 있다. 그럴 땐 배달 어플을 활용해 맛집을 서치해 당기는 음식을 고른다. 한 끼를 먹어도 맛있게 먹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메뉴부터 거리, 후기까지 모두 살펴보고 신중히 고른다.
맵고 자극적인 엽떡에서 집밥 맛이 난다?
그런데 종종 배달음식에서 집밥보다 더 집밥 같은 맛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게 엽떡이어도 말이다. 맵고 자극적인 엽떡이 집밥 같다고 하면 의아할 수 있지만, 우리 동네 엽떡은 그렇다. 엽떡 마니아로 다양한 지점에서 먹어봤지만지금 사는 동네의 엽떡은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다. 우리 동네 엽떡은 맛과 양뿐만 아니라, 주문하는 사람의 요청 사항에 언제나 귀 기울여 맛있고 정성스럽게 요리해준다. 아낌없이 퍼주는 사장님의 마음은 배달받은 음식과 칭찬 일색 리뷰에서 느낄 수 있다. 맛집 랭킹 1위가 되는 집은 다 이유가 있다. 사장님의 정성을 모두 느끼는 것이다.
나는 양배추를 좋아해 조금 더 넣어달라고 요청사항에 적으면 듬뿍 넣어주신다. 언제나 감사하다. 그런데 감동한 사연은 따로 있다. 사실 나는 우울할 때 엽떡을 시켜먹는다. 우울하고 힘든 날 엽떡을 시켜먹으며 마음을 달래던 대학시절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는 '너무 맛있고 언제나 감사하다. 마음이 힘들 때 먹는 음식인데, 먹고 기분이 좋아졌다'라는 리뷰를 남겼다. 사장님은 '앞으로는 기쁠 때 주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쁜 일이 자주 생기길 바란다'는 내용을 담은 긴 댓글을 달아주셨다.
바쁘게 일하고 퇴근 후 지친 상태였고, 텅 빈 집에 홀로 앉아 마음이 밑도 끝도 없이 깊숙이 가라앉는 날이었다. 그날 내 마음이 유난히 우울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사장님의 댓글 하나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며 큰 위안이 됐다. 원래 힘들 때 누가 '힘들지'하며 토닥 거려 주면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나는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 집밥은 마음의 위안이며 따듯함이다. 그런 내게 엽떡 사장님의 넉넉한 인심과 따듯한 말 한마디가 집밥 같은 맛을 느끼게 해줬다.
시키지 않은 간장계란밥 보내준 사장님, 엄마인가요?
시키지도 않은 간장계란밥을 보내주며 건강을 챙겨준 사장님도 있다. 뭔가 거하게 한 끼 먹고 싶은데, 유독 요리가 귀찮은 날이었다. 평소 찜해둔 가게에서 버섯전골과 김치전을 시켰다. 공깃밥도 하나 추가했다. 그런데 음식을 받아보니 밥이 두 공기 왔다. 분명 나는 한 공기만 시켰는데, 잡곡밥에 계란 프라이가 올라간 밥이 추가로 온 것이다. 양념간장도 같이 왔다. 간장계란밥이다. 간장을 넣고 비벼 크게 한 술 떴다. 세상에, 어릴 때 먹던 그 맛이다. 입맛 없고 반찬 없는 날 엄마가 해준 간장계란밥은 누구나 한 번쯤 먹어봤을 것이다. 참기름 향 솔솔 풍기며 군더더기 없이 고소하고 단순한 이 맛은 정말 엄마의 맛이다.
다시 어플을 켜 음식점 리뷰를 찬찬히 살펴보니, 사장님은 배달하는 사람의 집주소나 시킨 음식을 보며 그에 맞게 조리 하거나 서비스를 주고 있었다. 오피스텔 같은 곳에서 주문하는 사람들은 자취할 것으로 추정되니 자취생에게 어울리는 서비스를 추가하기도 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메뉴 위주로 주문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 맞게 간도 약하게 한다고 한다. 남겼다가 다음 날 먹을 것 같으면, 불지 않는 것으로 대체해주는 센스까지. 다양한 리뷰 속에 오가는 이야기로 사장님의 센스와 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정성을 나도 받았다. 배달지가 오피스텔로 되어있으니 자취생이겠거니 짐작하고 서비스 요청을 하지도 않은 내게 조용히 간장계란밥을 챙겨주신 것이다. 게다가 찹쌀과 잡곡을 고루 섞은 건강한 밥으로 말이다. 맛있게 잘 먹었다는 감사의 리뷰를 남기며, 밥 한 끼를 해도 항상 잡곡밥을 지어주며 잘 먹고 건강해야 한다는 잔소리를 해주는 엄마가 생각났다. 고소한 간장계란밥에서 집밥의 향수를 느낀 날이었다.
음식의 맛은 단순한 미각이 아닌, 그 이상의것. 삶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어떤 요리든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으며, 그 마음은 전해지기 마련이다. 나도 그렇다. 가끔 너무 밥 하기 귀찮은 날 대충 하면 평소보다 맛이 덜하거나 간이 맞지 않을 때가 있다. 반면, 시간과 정성을 들여 요리하면 더 깊은 맛이 난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할 때는 그 사람이 내 요리를 먹고 맛있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혼자 먹을 때보다 2~3배의 정성을 기울인다. 그러면 정말 먹는 사람이 맛있고 행복해한다. 음식의 맛은 단순하게 미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다. 미각 하나로 음식을 평가하는 건 너무 경솔하다. 음식은 만드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이 담긴 미각 그 이상의 것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비단 밥 짓는 일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모든 행위에는 나의 마음이 담겨있고 그 마음은 주변에 전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무엇이든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정성을 담아야 나와 내 주변이 편안함을 느낀다. 늘 그럴 순 없지만, 누군가에게 말 한마디 건낼 때, 누군가를 만날 때, 일을 할 때 등 모든 순간마다 되도록 좋은 마음을 내어 내 주변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정성을 담아 배달음식을 만들어주는 사장님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