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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나무 Mar 16. 2024

두 번째 사춘기

친구가 생기다

너를 아간다는 건,

입학 후 사흘째, 오늘도 어김없이 버스정류장에 옆 학교 애들과 우리 학교 애들이 한꺼번에 몰렸다. 땀내 나는 애들과 콩나물처럼 버스에 끼어가느니 오늘도 나는 1시간 걷는 편을 택했다. 30분쯤 걷다 보니 심심해지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저 지금 30분째 걸어가고 있어요. 엄청 배고프겠죠? 그래도 오늘 기분이 무척 좋아요"

"배고플만하네. 근데 오늘 뭐 좋은 일 있었나 보네?"

"네! 어마... 어무이... 저 드디어 친구가 생겼어요!"

"와! 듣던 중 기쁜 소식이네, 그럼 이따 만나면 자세히 얘기해 줘. 뭐 먹고 싶어?"

"피자?"

"그럼, 엄마랑 가던  피자집에서 네가 먹던 걸로 먼저 주문해 놓을래?"

나는 엄마보다 먼저 피자집에 도착했다. 나는 엄마와 가면 늘 앉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먹던 피자와 해물파스타를 시켰다. 10분 후 엄마가 도착했다.


"엄마, 오늘 진짜 좋은 날이에요. 드디어 친구를 사귀었어요. 체육 시간에 어떤 애랑 15분 농구하고 바로 친구 됐어요. 저보고 너 농구 배웠니?라고 말했어요. 사실 저보다 걔가 농구를 더 잘하는데... 저도 쪼끔 하긴 하지만요. 이제 밥 먹을 때 혼자 먹지 않아도 돼서 좋아요! 걔가 음료수도 사줬어요. 엄마 저도 이제 용돈 주세요."

"엄카로 쓰는데 용돈이 필요해? "

"네, 저도 음료수를 얻어먹었으니 사주고 싶거든요."

"엄마 카드로 사주면 되지!"

"그건 좀 왠지 뿌듯할 것 같지 않아요. 제 용돈으로 사줘야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아... 그렇구나. 그럼 일주일에 얼마 정도가 좋을 것 같아? "

"만 원이요!"

"그래. 그렇게 하자!"

나는 밖에서 밥을 먹을 때 엄마 카드를 사용하다 보니 간식을 사거나 문구를 살 때도 용돈을 받지 않고 엄마 카드를 사용했다. 엄마가 좋아하지 않는 햄버거나 추로스 같은 패스트푸드를 먹을 땐 왠지 엄마에게 말하고 먹는 게 마음이 편했다. 나는 중학교 들어가서는 사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별로 없었다.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소원이 없었을 것 같았던 초등학생 시절, 그땐 휴대폰 말고도 갖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휴대폰이 손에 들어오자 내게 필요한 건 사라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중학생이 되자마자 엄마가 용돈을 주급으로 준다고 했을 때 나는 필요 없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용돈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엄마 카드가 아닌 내 카드로 친구에게 음료수를 사주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엄마, 저 부회장에 나가려고요. 아... 이따 집 가서 선생님한테 말해야겠다."

"그래, 뭐든 도전해 보는 건 좋지. 근데  늦은 시간보다는 지금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다."

"네"

"회장보다 부회장에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았어?"

"네, 회장은 아주 똘망 똘망한 애가 있어요. 그런 애가 회장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걔가 나갔어요."

"그래, 마음이 가는 데로 하는 게 잘될 때가 있지."


나는 휴대폰 게임을 하면서도 실실 웃음이 났다. 기분이 좋으면 열이 나는 것인지 걸을 때 그렇게도 추웠는데 금세 겨드랑이가 축축하고 등어리마저 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잠바, 후드집업, 재킷을 훌훌 벗어 의자에 걸쳤다. 셔츠와 조끼만 남으니 날아갈 것 같았다. 내가 휴대폰 게임에 빠져드는 사이 노릇하게 구워진 마늘빵이 나왔다. 날름, 엄마가 한 개를 집어먹었다. 다른 때 같으면 두 개 다 나에게 먹으라며 바구니를 내 앞으로 밀어주는 엄마가 오늘은 내가 먹기도 전에 빵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래도 나는 기분이 좋다. 오늘 친구를 사귀었기 때문이다. 그깟 마늘빵 엄마가 다 먹어도 나는 괜찮다. 마늘빵을 먹고 피자를 기다리는 10분 사이 나는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학교에서 집까지 5km, 1시간이 걸린다. 엄마가 버스를 타고 다니라고 했지만, 나는 옆 학교 애들까지 억지로 끼어서 타는 그 답답한 버스가 싫다. 그래서 나흘째 걸어 다녔다. 엄마는 가방을 들어보더니 뭐가 이렇게 무겁냐며, 버스 좀 타고 다니든가 1시간만 학교 도서관에 있다가 엄마가 퇴근할 때 같이 오자고 했다.  나는 1시간 기다리는 것보다 1시간 걷는 게 낫다.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서 한 시간을 기다린다니... 끔찍하다.


"행복은 그런 거야, 매일 혼자 밥 먹을 것 같았는데 드디어 친구를 사귀어서 급식 친구가 생겼다는 거, 오늘 친구 사귄 거, 배고플 때 이런 맛있는 집에서 피자를 먹을 수 있는 거, 그런 게 행복인 거야. 그런 행복감을 자주 느끼는 거, 그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란다."

"네"


기다리던 피자와 해물파스타가 나왔다. 둥근 접시 가장자리로 홍합을 두른 파스타는 내 차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파스타는 냄새부터 죽여준다. 나는 파스타를 흡입하듯 밀어 넣었다. 입안에 치즈 풍미 가득한 해물맛이 입안 가득 느껴졌다. 하루의 피로가 파스타 한입으로 다 녹아사라지는 것 같았다. 엄마는 피자 몇 조각 먹고 배가 부르다고 한다. 내가 워낙 파스타를 좋아하니까 나에게 혼자 다 먹으라고 하며 피자 조각 위에 파스타 소스를 한 번 찍어 맛본다. 엄마는 피자 두 조각이 남자 내게 묻는다.

"엄마는 배불러. 너 다 먹을 수 있지?"

"아뇨. 저도 배불러요. 엄마가 한 개만 먹어줘요"

"그래..."

엄마가 하나를 손으로 집었다.

엄마는 늘 그랬다. 피자 두 조각이 남으면 배가 부르다고 하며 나에게 먹으라고 한다. 많이 배고픈 날은 특히 내가 많이 먹는다는 걸 잘 아는 것 같다.


이 음식점은 엄마와 내가, 또는 우리 가족이 특별한 날에 자주 오는 레스토랑이다. 아빠, 형, 엄마, 나 유일하게 모두 좋아하는 음식점이다. 특히, 내가 여기 피자를 좋아해서 엄마는 내가 새 학년이 되거나, 상장을 받거나, 속상한 날이 있으면 꼭 피자를 먹으러 가자고 한다. 엄마는 여기 오면 항상 내가 원하는 피자와 파스타를 주문한다.


"엄마, 기분이 아주 좋을 때 뭐라고 해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물었다.

"아주 좋을 때? 음... 기분 째진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속된 말로 기분이 엄청 좋을 때 그렇게 쓰지"

"아... 오늘 기분 째진다!"



내가 성장한다는 것,

퇴근하려는데 전화가 왔다. 오늘도 만원 버스 이야기를 하며 투덜거릴까, 자전거 통학을 허락해 달라며 떼를 쓰려나... 아무리 떼를 써도 자전거 통학은 허락해 주지 말아야지,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전화를 받았다.


"엄마, 저 지금 30분째 걸어가고 있어요. 엄청 배고프겠죠? 그래도 오늘 기분이 무척 좋아요"

"배고플만하네. 근데 오늘 뭐 좋은 일 있었나 보네?"

"네! 어마... 어무이... 저 드디어 친구가 생겼어요!"

"와! 듣던 중 기쁜 소식이네, 그럼 이따 만나면 자세히 얘기해 줘. 뭐 먹고 싶어?"

"피자?"

"그럼, 엄마랑 가던  피자집에서 네가 먹던 걸로 먼저 주문해 놓을래?"

내가 음식점에 도착했을 때 아이는 늘 앉던 자리에 앉아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엄마, 오늘 진짜 좋은 날이에요. 드디어 친구를 사귀었어요. 어떤 애랑 체육 시간에 15분 농구하고 바로 친구 됐어요. 저보고 너 농구 배웠니?라고 말했어요. 사실 저보다 걔가 농구를 더 잘하는데... 저도 쪼끔 하긴 하지만요.

이제 밥 먹을 때 친구랑 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걔가 음료수도 사줬어요. 엄마 저도 이제 용돈 주세요."

"엄마로 쓰는데 용돈이 필요해? "

"네, 저도 음료수를 얻어먹었으니 사주고 싶어서요."

"그래, 엄마 카드로 사주면 되지!"

"그건 좀 왠지 뿌듯할 것 같지 않아요. 제 용돈으로 사줘야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아... 그렇겠네. 그럼 일주일에 얼마 정도가 적당한 것 같아? "

"만 원이요!"

"그래. 그렇게 하자!"


아이는 몇 달간 학원 수업 때문에 서너 달을 학원 근처에서 밥을 먹었다. 그래서 내 카드를 주고 그걸로 밥을 먹으라고 했다. 아이는 법 먹는 거, 하루 음료수 1개 정도 외 특별히 다른 데 돈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용돈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그러니 돈을 계획적으로 쓰는 방법, 즉 자신이 가진 돈의 범위에서 무엇에 쓰고 쓰지 말아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른다. 내가 알려주지 않은 것도 있다. 이번 기회에 간식류를 먹는 것과 친구에게 뭘 사주는 것은 용돈 범위에서 하는 걸로 정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느낀 용돈의 필요성이 친구를 위해 돈을 쓰려면 자신의 용돈에서 써야 더 의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 기특했다.


"엄마, 저 부회장에 나가려고요. 아... 이따 집 가서 선생님한테 말해야겠다."

"그래, 뭐든 도전해 보는 건 좋지. 근데  늦은 시간보다는 지금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다."

"네"

"회장보다 부회장에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았어?"

"네, 회장은 아주 똘망 똘망한 애가 있어요. 그런 애가 회장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걔가 나갔어요."

"그래, 마음이 가는 데로 하는 게 잘될 때가 있지."



아이는 휴대폰 게임을 하면서도 실실 웃고 있다. 그러더니 입은 옷을 하나하나 벗어 의자에 걸쳤다. 겨드랑이로 젖은 옷이 보였다. 아이가 휴대폰 게임에 빠져드는 사이 마늘빵 두 조각이 나왔다. 나는 허기가 지기도 했지만 이후 나올 피자와 파스타를 아이가 더 많이 먹었으면 하는 바람에 마늘빵 하나를 집어먹었다. 아이가 게임을 잠시 멈추고, 내 얼굴을 흘깃 쳐다본다. 입술에 한 번 힘을 주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괜찮다는 표정을 보이곤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의 표정에 만족감이 묻어난다. 나도 함께 행복감에 미소가 지어진다. 이 시간을 기억해야지.


지금 이 시간, 퇴근길에 아이와 마주 보고 앉아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없이 고맙고 행복하다는 것을 나는 알아차렸다.

'아... 그래, 이게 행복이야. 나는 지금이 정말 행복한 거야. 10년 후, 5년 후, 아니 당장 1년 후, 이 시간은 없을 수도 있어. 다시 오지 않을 시간, 이 아이가 자라면서 나와 이런 시간을 얼마나 더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지금을 더 오래 기억해야지, 깊이 느껴야지...'

'찰칵!'

나는 아이  사진을 찍었다. 고개를  잔뜩 수그리고 게임을 하는 아이, 다른 날 같으면

'엄마, 찍지 마요!'라고 했을 텐데 오늘은 아무 말 없다.


"행복은 그런 거야, 매일 혼자 밥 먹을 것 같았는데 드디어 친구를 사귀어서 급식 친구가 생겼다는 거, 오늘 친구 사귄 거, 배고플 때 이런 맛있는 집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거, 그런 거가 행복인 거야. 그런 행복감을 자주 느끼는 거, 그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란다."

"네"

아이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건성으로 대답하고(사실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아이는 답을 했다) 바로 휴대폰 게임에 몰두했다.


기다리던 피자와 파스타가 나왔다. 둥근 접시에 홍합을 두른 파스타가 먹음직스럽다. 아이가 휴대폰을 내려놓고 입안 가득 면을 밀어 넣는다. 흡족한 표정이다. 치즈가 듬뿍 올려진 피자 한 조각을 앞접시에 올려주었다. 아이가 포크를 내려놓고 피자를 반으로 접어 입으로 가져간다. 그렇게 아이와 나는 이른 저녁을 단둘이 앉아 맛있게 먹었다. 창가로 비스듬히 스며드는 저녁 햇살마저 고마운 시간이었다.


"엄마는 배불러, 너 다 먹을 수 있지?"

"아뇨. 저도 배불러요. 엄마가 한 개만 먹어줘요"

"그래..."

이 피자집은 아들과 내가, 또는 우리 가족이 큰 아이가 초등학생 때부터 특별한 날에 오던 레스토랑이다. 가족 모두 유일하게 모두 좋아하는 음식점이다. 특히, 아이는 이 음식점 피자와 파스타를 좋아해서  새 학년이 되거나, 상장을 받거나, 힘든 일이 있거나 하면 나는 이곳 피자를 먹으러 가자고 한다. 이 집에서 음식을 남기는 일은 없다. 이유는 맛있고 가격에 비해 양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딱 피자 한 판과 파스타 한 접시만 주문한다. 그러니 남길 일도 없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아이가 말한다.

"엄마 기분이 아주 좋을 때 뭐라고 해요?"

"아주 좋을 때? 음... 기분 째진다. 뭐 이 정도?"

"그게 무슨 말이에요?"

"속된 말로 기분이 엄청 좋을 때 그렇게 쓰지"

"아... 오늘 기분 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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