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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나무 May 10. 2024

두번 째 사춘기

왼손잡이

"사람들은 배려를 하면 더 이기적이 되는 것 같아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오늘 짝이 점점 오른쪽으로 다가오는 거예요. 제가 그 친구와 팔이 부딪칠까 봐 의자를 최대한 오른쪽으로 옮겨서 앉았거든요. 그랬더니 그 애 팔이 제 책상을 완전히 침범하잖아요?"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혹시 여러분 중에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가 있나요?

만약 여러분 중에 왼손잡이가 있다면 비슷한 경험을 했을지도 모르겠군요.

맞아요, 왼손잡이인 아이가 옆에 앉은 친구와 팔꿈치가 부딪칠까 봐 오른쪽으로 최대한 앉아서 그 친구를 배려했는데 그 친구는 그걸 몰라주고 자신은 넓게 책상을 사용한 것이죠.

사람에 따라 간혹 호의를 권리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곤 하죠.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큰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데 받는 친구는 그런 것을 고마워하기 보다 오히려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심지어 그 친구를 얕잡아보기도 하죠.

그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했나요? 혹시 친구가 나를 싫어할까 봐 말하지 못했나요?


"나는 지금 너를 배려하는 거야. 네가 불편하지 않게 말이야. 그러니 너도 내가 불편하지 않게 내 책상을 침범하지 말아줘."라고 정확히 말을 해줘야 해요.

그 친구는 정말 몰라서 그럴 수도 있고, 알아도 개의치 않을 수 있어요. 자신은 불편한 게 없으니까요. 그러니,  항상 양보하진 말길 바래요. 양보해 주고 배려해 줬을 때 그걸 아는 친구에게만 그렇게  해야 억울함이 없어요. 억울함이 자꾸 쌓이다 보면 톡 건드리기만 해도 울음보가 터질 수가 있거든요. 울음을 늘 가득 채우고 살면 정말 울어야 할 때와 울지 않아도 될 때를 분간하기 어려워지거든요. 그러니 정말 울 때 울려면 억울함이 쌓이지 않게 자주 비워내야겠어요.


대단한 상황이 아니지만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지내는 아이에겐 참 불편한 상황이었을 거예요. 어떤 불편한 상황을 볼 땐 시간의 지속성에 비례해서 봐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경우도 포함이 된다고 봐요.

인구의 10%는 왼손잡이라고 합니다.

둘째 아이가 왼손잡이인지는 대여섯 살쯤 글자를 알아갈 무렵 알게 됐는데요. 양손을 모두 사용했던 아이가 연필을 쥘 무렵부터는 왼손을 주로로 사용했어요. 그러더니 글자를 배울 무렵엔 글자를 뒤집어서 쓰기 시작했죠. 그래서, 왼손잡이인지 알게 되었어요.


왼손잡이는 왼손으로 글씨를 쓰거나 밥을 먹는 정도의 불편함만 겪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다 더 복잡하고 미묘한 차별을 겪는 게 왼손잡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차별을 겪는 줄 모르고 차별을 받게 되는 경우가 꽤 많은데요. 어떤 집단에서 소수일 때 특히 그런 경우가 많죠. 의도한 차별이 아니지만 다수가 살도록 조성된 환경에서 살아야 하니까 그게 차별인 거죠.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김지혜,<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인상 깊게 읽었는데요. 모든 사람은 가진 조건이 다르기에, 각자의 위치에서 아무리 공정하게 판단하려 한들 편향될 수밖에 없다는 점, 우리가 보지 못하는 차별을 알아채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특권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아무리  선량한 시민이라도 차별을 전혀 하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요. 정말 공감이 되었어요.

그러니 자신은 절대 공평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높답니다. 만약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자세히 관찰해 보세요.

모든 것이 다수인 오른손잡이에 맞춰줘있으니까 왼손잡이는 태어나자마자 오른손잡이 세상에 맞춰서 살게 되는 운명인 거죠.


둘째 아이는  글자를 배우기 시작할 때 공책의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쓰는 건 물론 한글도 거꾸로 썼죠. 숫자를 쓰면 거울에 비춰야 제대로 읽히도록 쓴 것이죠.

그때마다 나는 교정해 주었는데 바로잡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오른손잡이인 첫째 아이에게선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죠.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왼손잡이는 왼손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강요받다가 양손잡이가 되곤 했죠. 그래도 고치지 못한 경우만 왼손잡이로 남게 되었죠. 그러니 요즘 아이들이 옛날보다 왼손잡이가 많아 보이는 이유는 자연스레 그대로 두기 때문일 거예요.

왼손잡이는 글자가 보이는 각도를 찾고 손목이 꺾이지 않게 하려면 공책을 비스듬하게 돌려 사용해요.  그러니 왼손잡이들의 몸이 틀어지고 여기저기 쑤시고 결릴 확률은 더 높겠죠. 게다가 오른손잡이용 여러 가지 학습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왼손잡이가 큰 어려움 없이 양손잡이가 되었다면 정말 다행이라고 봐요. 양손을 모두 사용하면 양쪽 뇌가 고르게 발달할 테고, 그렇게 되면 더 폭넓은 세계관을 갖게 될 테니까요.


나는 왼손잡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내 아이의 불편함을 알기 전에는 왼손잡이에 대해서 무관심했어요. 왼손잡이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단지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차별을 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나의 세계관 또한 넓어짐을 느낄 수 있었죠.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고 사는 것들을 왼손잡이 아이들은 불편함이 불편함인지도 모른 채  더 힘들게 일상에 적응해 가는 거죠. 그러니 왼손잡이들이 오른손잡이들보다 확률적으로 세상에 불만이 많다는 말이 있는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모두가 그런 건 당연히 아닐 테지만요.


왼손잡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나는 초등학생 때 있었던 사건이 하나 기억나는데요.

담임선생님이 바른손 들라고 했는데  한 아이가 왼손을 들었어요. 그래서 선생님한테 면박을 들었지요. 그때 선생님이 오른손이 바른손이라고 했던 말이 기억나요. 내가 초등학생 때만 해도 왼손잡이는  오른손으로 글자를 쓰도록 강요받고 이상한 아이로 취급받던 시기였죠.

지금에야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고 학교에서 혼이 날 일이 없지만, 여전히 오른손잡이 환경에서 왼손잡이 아이들이 불편함을 겪는 건 사실이지요.


왼손잡이 아이인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4지 선다형 수학 문제를 풀다가 답이 없다며 가져온 적이 있어요.

69 바로 뒤의 수가 아닌 것을 찾는 문제였는데 답이 없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답을 뭐라고 생각하냐고 물으니 '96'이라는 것이에요. 그런데 아이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추측이 되기에 아이를 이해해 주고 교정해 주었어요.


"네 말처럼 충분히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어. 그렇지만 네가 생각하는 ‘뒤’와 여기 문제에서 요구하는 ‘뒤’는 다른 것이야. '69'라는 숫자가 공간에 세워져 있는 숫자 모형이 아니라 평면에 쓰여있는 글자니 우리는 뒤로 갈 수 없지 않겠니? 그러니 여기서의 ‘뒤 ’는 '그다음'을 말하는 것 같구나"라고요. 그렇게 설명을 해주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찾았어요.


당시 내가 본 아이는 오른손잡이 세상에서 왼손잡이의 감각으로 보이는 것들을 오른손잡이의 시점으로 보려고 애쓰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어느 날은 아이가 어렸을 때 사용한 책상을  버리려다가 책상 뒷면에는 온갖 낙서들이 있었는데  글자와 숫자 그림 등이 거의 거꾸로 쓰여있었죠.


중학생 때 입시 미술 준비를 하면서 실기 시험 문제가 제시되었는데 그림 사진이 왼손이었다고 말하더군요. 오른손잡이에게 유리한 손그림인 것인 거죠.

또 미술 학원에서는 그림을 보았을 때 왼손잡이가 그린 줄 모르게 그려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다고도 했죠. 선 긋기나 그런 부분에서 또는 그린 부분이 손이 지나가면서 뭉개지면서 왼손잡이가 그린 것이 드러나는 것을 이야기한 것 같았어요. 하지만 아이가 만약 오른손잡이라면 이런 말을 듣지는 않았겠지요.


우리나라 학교에서 왼손잡이를 위한 배려는 아직 없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넌 왼손잡이니까 끄트머리에 앉으라든가, 급식판에 국을 담아줄 때 왼손잡이라고 왼쪽에 주진 않죠.

왼손잡이니까 운동장은 반대로 돌도록 하거나 8자 줄넘기도 반대로 하라고 하진 않아요. 학교에서 배부되는 학용품이나 악기, 체육활동 도구를 포함해 교실의 모든 물품은 전부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되어있고요.


아이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이미 오른손잡이의 행동 패턴에 길들여졌기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따르고 있으니까 사사건건 그걸 차별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쩌면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즉, 태어나서부터  오른손잡이 위주로 되어있는 환경에 잘 적응해 자신들에게 불리했다는 것 자체를 깨닫지 못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작은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걸 듣다 보면  그 불편함은 생의 초기인 아주 어려서 끝이 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이런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 우리 사회는 아직도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차별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제는 오른손이 바른손이고 왼손이 틀린 손이 아니란 걸 모두 아는 세상을 살고 있지만 장애인을 비롯해 소수와 약자에 대한 차별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40여 년 전 왼손 들어 혼난 아이는 어떤 꿈을 이루어 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세상의 모든 왼손은 똑같이 바른손입니다. 세상의 모든 왼손잡이를 응원합니다.


왼손잡이의 꿈


오른손잡이 공책에

글씨 쓸 때

손 꿈치가 까매지지만

괜찮다.


오른손잡이 가위로

색종이를 자를 때

손가락이 아프지만

참을만하다.


팔자 줄넘기할 때

반대로 넘는 것도

자꾸 하니

익숙하다.


진짜 내가 속상했던 건

밥 먹는 손들라 해서

왼손 들었더니

'오른손 들라 했잖아?'

라고 말한 우리 선생님이다.


나는

커서,

왼손잡이 선생님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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