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석 달간 치과를 다녔다. 30여 년 전에 했던 브릿지를 걷어내고 2개는 크라운을, 1개는 임플란트를 했다.
나는 스무 살쯤 브릿지를 했다. 중간에 한번 교체하긴 했지만 그간 단단한 음식들을 피하며 그럭저럭 사용해 왔다. 브릿지를 걷어내자 텅 빈 잇몸과 뿌리만 겨우 남겨진 양쪽 어금니가 드러났다. 그간 무거운 브릿지를 떠받들고 버텨냈을 걸 생각하니 뿌리만 남은 두 개의 치아가 처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다행히 치과에서는 임시 치아를 만들어서 치료하는 동안 들 수 있을지 모를 상실감을 덮어주었다.
이를 치료하는 동안 든 생각은 사람은 큰 것을 잃어버렸을 때만 상실감이 드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잃어버린 것을 마주하는 시간과 비례하여 상실감은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려서 잃은 치아가 그런 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나는 어금니가 나자마자 바로 충치가 생겨 영구치를 뽑아야 했다. 내가 영구치를 뽑은 시기는 4~5학년쯤일 것이다.
4학년, 영구치로 교환하는 이 시기는 구강건강 관리에 매우 중요한 시기다. 요즘은 치과주치의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4학년을 대상으로 구강건강상태를 점검하고 실란트, 불소 도포 등은 물론 정해진 예산 내에서 무료로 충치 치료를 해준다. 이런 사업들이 예전에도 있었더라면 내가 11살에 영구치를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느 시대에 살았냐에 따라 우리는 많은 혜택과 손실을 겪고 살아간다. 몇 십 년 만에 우리 세상은 얼마나 많이 좋아졌는지 모른다.
4학년 때 충치로 이앓이를 심하게 했던 나는 버스로 1시간 거리의 읍내로 충치 치료를 하러 다녔다. 농사일이 바쁜 부모님이 함께 갈 수 없어 언니와 함께 가거나 혼자 갔던 기억이 난다. 당시 면단위에 보건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충치를 치료한 적이 있다. 어금니 한 개가 너무 많이 충치를 먹어 뽑아야 한다고 했다. 그게 유치인지 영구치인지도 나는 몰랐다. 치과 의사가 결정해 이를 뽑았고 이후 이가 다시는 나오지 않은 걸 보니 영구치였던 것이다. 그렇게 어금니 한 개가 없는 채로 스무 살까지 지냈다.
아마 나는 그때부터 입을 크게 벌리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싫어했던 것 같다. 어금니 하나 없는 게 그렇게 창피할 일인가... 누가 내 입속만 들여다보는 것도 아닌데 당시 나는 자격지심에 그리 생각된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니 윗니가 점점 내려오는 느낌을 받았지만 별도리가 없어 그냥 지냈다.
영구치 한 개의 소실이 사춘기 내내 심미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준 것은 물론 성격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스무 살이 되어 브릿지를 하고 나서 좀 덜 할 줄 알았지만 금색의 브릿지는 웃을 때마다 반짝 드러나서 어린 나이에 치아관리를 소홀히 하여 금니를 한 사람으로 보인다 생각하니 괜히 부끄러운 생각이 들곤 했다. 그 당시에는 내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런 형편에서 자랐다는 것이 그땐 창피하게 생각됐던 것 같다.
당시 시골에서는 병원이 멀어 이용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충치가 생길 때마다 병원에 데려가는 일도 흔치 않았다. 그러니 충치가 생기지 않는 사람은 행운인 거고 충치가 잘 생기는 나는 진통제로 그 시간을 참고 견디어야 했다.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은 깨진 물병에 물을 채우는 것과 같다. 그러니 당시의 상황을 이해해 보고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길이다.
덕분에 나는 스무 살 이후 단단한 음식들을 멀리하고 하루 3번 양치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는 약하여 대부분의 어금니는 전부 금이가고 부서지고 마모가 되었다. 치료하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부실한 어금니들은 언제든 깨질 수 있다고 했다. 오랜 이갈이 습관 때문이라고 했다.
나처럼 어려서 치아가 소실된 사람에게는 임플란트라는 신기술이 발명된 건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다. 좁아진 잇몸에 자그마한 임플란트를 해서 내 이처럼 사용하니 긴 기간 동안 비어있던 시간이 단단히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40년 가까이 어금니 한 개 없이 살았을 뿐인데 그 결과는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코를 기준으로 양쪽을 나누면 오른쪽은 제법 팽팽한 얼굴, 왼쪽은 눈밑부터 전체적으로 늘어진 얼굴. 거울 속 내 얼굴은 왼쪽과 오른쪽이 10년 정도의 나이차를 가진 얼굴로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얼굴을 사랑하기로 했다. 어금니 한 개 없이 오랜 세월을 살다가 임플란트 한 개를 얻고 나서 내 얼굴에 만족하게 되다니...
중학생 때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내 얼굴을 한참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어머... 이제 보니 00은 지혜롭게 생겼네" 이런 말을 했다. 그때까지 주변 어른들한테 들었던 말은 피부가 까맣다느니, 입이 튀어나왔다느니 눈이 올라갔다느니 주로 그런 부정적 말들이었는데 처음으로 외모에 대한 긍정적인 표현을 들은 것이다. 나는 외모를 지혜롭다고 말하는 게 무슨 뜻일까를 친구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단박에 들은 답은 '야, 너 못생겼다를 좋은 말로 해준 거야.'라고 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 말이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걸로 생각돼 선생님이 달리 보였다. 선생님은 어디 하나 예쁜 곳을 골라서 말해주고 싶은데 딱히 없어 보이니 지혜롭다는 말을 해준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외모평가를 너무 좋아해서 꼭 입으로 하고야 마는 사람들이 많다. 그건 예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는 어쩌면 이렇게 외모평가를 하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다. 외모와 체형에 대해 끊임없이 평가받는 사회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시각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최소한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외모에 대한 평가를 멈춰주길 바란다.
긍정의 말이 아니라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보건실에 오는 아이들 중에 자신의 외모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아이들이 종종 있다. 자기의 얼굴의 특정 부위가 또는 비만인 것이, 또는 키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
언젠가 얼굴에 점이 있다고 친구들이 놀린다고 울먹이며 온 아이가 있었다.
"선생님은 너만큼 어렸을 때 어른들이 못생겼다고 말해서 정말 못생긴 줄 알고 살았거든. 근데 중학생 때 담임 선생님이 지혜롭게 생겼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 이후 지혜로운 얼굴이라 생각하고 살아. 네가 보기엔 어때?"
"그런 거 같아요....(머뭇거리면서)"
"선생님이 너를 보니 어질게 보인다. 다른 사람 얼굴 얘기하는 애들은 다른 사람을 낮춰서 자기를 높이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그래. 내면이 덜 성숙한 거지. 진짜 아름다운 사람은 제 얼굴 자랑 안 하거든. 얼굴은 내가 선택한 게 아닌데 나 보고 뭐라 하는 애들이 있다면 내 얼굴에 대해 평가할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멈춰줄래?라고 말해주는 게 어때?"
"어질 게 생긴 게 어떤 건데요?"
"너처럼 생긴 거야."
"내 얼굴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부러움을 사게 하는 것이 아닌 편안함을 주는 건 이타적인 거지. 즉, 더 아름다운 얼굴이란 뜻이야.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해"
"......"
내 답이 그 아이의 속상함을 모두 헤아려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모를 평가하는 일은 옳지 않으며 선생님한테는 다 예쁘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건 사실이다.
세상에 똑같은 얼굴이 없는데 심미적 평가를 꼭 다수에게 결정하도록 두는 것이 옳은 일인가 말이다.
여럿이 있을 때, 어떤 한 친구의 외모를 지나치게 칭찬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아이를 배제하는 것과 같으므로 경계해야 한다. 나는 이런 경우를 자라면서 수도 없이 경험했다. 어른이 된 지금에도 종종 겪는다. 지금에야 그런 부분에 영향받지 않지만 그런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다.
가만 생각해보면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사라진 건 내가 아이들을 낳아 기르며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교육을 하면서부터다. 내가 예쁘지 않고 차라리 아이들이 보기에 부족한 부분이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올려 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외모에 당당하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거라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보건교육을 할 때, 다양성을 강조한다. 외부의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여 위축되지 말라고. 내가 가진 강점 약점이 모두 모여 내가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라고. '나'는 항상 변화가능한 사람이란 걸 잊지 말고 그 자체로 소중하다고.
중학생 때 나를 지혜로운 얼굴이라 말했던 선생님은 눈은 나만큼이나 작고 눈꼬리도 살짝 올라갔으며, 코 또한 오똑하지 않은 자그마한 내 코와 닮았다. 나와 다른 점은 피부가 하얗고 얼굴이 더 작다는 것이다. 그 선생님은 국어선생님이었는데 얼굴은 나처럼 지혜롭게 생겼으며 자신만의 개성 있는 옷으로 멋스러움을 연출하는 그런 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