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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나무 May 22. 2024

산책은 어떻게 삶을 사랑하게 하나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기적

풀숲 꿩의 붉은 볏은  양귀비꽃을 머리에 인 것 같습니다.

노란 붓꽃은 연둣빛 들풀 속에서 화사함을 뽐냅니다.

잔잔한 호수의 한 마리 오리는 외롭다기보다는 호수의 평화로움을 알려줍니다.

키 큰 떡갈나무 꼭대기 딱따구리는 벌레잡이에 한참입니다.

바닥에 간간이 떨어진 붉은 버찌는 곧 검은 버찌가 될 것임을 말해줍니다.

빨간 단풍나무 씨앗은 바람의 약속을 믿고 싶습니다.

내가 걷는 낡은 데크길 위의 걸음은 왜가리의 평온한 저녁식사를 방해합니다. 미안해집니다.

어스름 노을이 넘어가는 저녁, 찔레꽃 향기가 아무리 좋아도 집으로 가야 하지요.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그곳이 안전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아니, 어쩌면 기적일지도 모릅니다.

이 길에서 개구리울음이 요란하다 한들 그것을 누가 소음이라 할까요?

제각각 운다고한들  불협화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연약한 것들은 아무리 울어도 시끄럽지 않습니다.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돌아오는 산책길, 아파트에 드문드문 켜진  불빛과 색색이 작약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는 내가 좋습니다.


오늘은 집에 가기 싫다는, 집이 무섭다는 아이를 만나고 퇴근하는 길입니다.

그 아이가 언젠가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연이 주는 위로를 아는 아이로 자랐으면 합니다.

나는 그런 아이를 만난 날엔 꼭 산책을 합니다.

5.14. 산책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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