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꿈을 꾸었어요. 제가 죽어서 엄마 옆에 돌아다니면서 엄마를 보고 있었죠. 처음에는 제가 죽은 줄도 모르고 계속 말을 걸었는데 엄마가 대답을 안 하시고 계속 하던 일을 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제가 죽은 것을 깨달았어요. 죽은 것을 깨닫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저에게 말하더라고요. 편지 한 통을 남길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고...
잠에서 깨고 보니 눈에서 눈물이 계속 흐르더라고요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거더라고요. 어쩌면 이 편지가 제가 어머니께 드리는 마지막 편지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살아 있다는 사실은 참 행복한 거 같아요. 하루는 24시간이고 1년은 365일이에요.
그 긴 1년이 매일 같이 왔다 가는 거더라고요.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생각해 보니 어제 화를 낸 제 모습이 정말 부끄럽네요.
화낸 거 정말 미안해요. 앞으로 완전 안 싸울 거라는 자신은 없지만 어머니께 먼저 화내지 않는 제가 될게요. 어머니 사랑합니다.
2024.2.21 어쩌면 삶의 마지막인 날일 수도 있는 00올림.
퇴근 후 집에 왔더니 아이의 편지가 식탁에 놓여있었다. 빨간 봉투에 정성스레 넣은 편지를 보니 내용이 사뭇 궁금했지만 조심스레 봉투를 열었다. 편지를 열자마자 눈물샘도 함께 열렸다. 글을 다 읽었을 즈음엔 눈물방울이 '톡' 편지에 떨어졌다.
편지의 내용은 아이가 죽음에 대한 꿈을 꾸고 나서 얻은 깨달음에 대한 것이다. 그걸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순간을 잡아 실천으로 옮긴 것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가슴 저 밑에서 울컥이는 감동이 밀물처럼 흘러나왔다.
나는 편지를 다 읽고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시간 이후 절대 아이를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아야지... 이 아이와 함께 사는 지금을 감사해야지... 이 시간을 평생 기억해야지...
엄마로서 두 아이를 키우며 셀 수 없이 많은 행복감과 또 그만큼의 좌절을 맛보았다. 그런데 이런 감정은 내가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특별한 감정이다. 그래서, 그런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을 선물한 아이에게 고마웠다.
사람은 잘 때 모두 꿈을 꾼다고 한다. 단지 기억을 못 할 뿐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꿈을 많이 꾸고 잘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나의 어머니도 악몽을 자주 꿔 자다가 소리를 지르기도 했는데 그럴 때 내가 어머니를 깨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나도 자다가 악몽을 자주 꾸어 아이가 나를 몇 번 깨우는 일이 있었다. 한번은 아이가 초등학생 때 나를 깨우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니, 엄마 언제까지 악몽을 꾸실 거예요? 키도 다 컸으면서..."
지나 보니 악몽을 꾸던 당시 나는 참 우울했고 불안했고 힘든 시기였다. 그 당시 내겐 해결하지 않은 감정의 응어리가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나를 안 이후 나는 꿈에 대한 책, 심리학 저서 등을 읽으며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그런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진 못하지만 현재의 삶을 도피하지 않고 직면하여 살아가게 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대부분의 꿈은 깨어남과 동시에 기억에서 증발해 버린다. 어느 날 문득 꿈을 꾼 후 잠에서 깼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부터 한동안 꿈 일기를 썼다. 그때가가 악몽을 자주 꿨던 코로나 시기였다. 가뜩이나 온 신경이 예민해져서 힘든 때 악몽까지 합세해 잠을 깨고 나면 온몸이 경직되고 기분마저 찜찜했다.
당시 꿈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읽은 책이 아테나 라즈<나는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고혜경<나의 꿈 사용법>이다.
나에게 도움이 된 책은 <나의 꿈 사용법>인데 꿈 일기를 꾸준히 써가며 그날의 전후 걱정들과 해결해야 할 일들을 기록하다 보면 그런 꿈을 꾼 것을 받아들이게 되기도 했다.
나의 경우 어린 시절에 힘들었던 경험들이 현재의 긴장 상황에 놓이게 되면 악몽을 꾼다고 나름 생각하게 되었다.
이 꿈은 개학을 앞둔 22년 2월, 코로나19가 6만 명을 향해 치닫고 있던 때 꾼 꿈이다.
나는 음악선생님이다. 마스크를 벗고 아이들과 노래를 한다. 그런데 직원들이 학교 강당에서 해묵은 소파를 뒤집어 털어서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2인 1조가 되어 소파 덮개를 일일이 뜯어내 터는 일인데 먼지가 뿌옇게 올라간다. 순간 어떤 교사가 이렇게 먼지가 나는 일을 마스크 없이 하라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나도 이런 일은 미리 알려줬어야 한다면서 주변에서 마스크를 찾는다. 근데 마스크가 모두 양옆이 들떠 있고 보풀이 나 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마스크가 없다. 갑자기 숨이 턱 막혀온다. 날숨이 안된다. 아... 천식의 응급상황은 이런 걸 말하는구나. 나는 내가 응급상황임에 빠졌음을 자각한다. 햇살은 강당의 문틈으로 강하게 들어오고 우리는 어둠에 갇혀 먼지를 털고 있다. 먼지들이 천장까지 떠오르며 춤을 춘다. 나는 숨을 쉴 수 없고 순간 세상이 멈춰진다.
나는 그때 이 꿈을 꾸고 앞으로 다가올 3월의 혼란은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란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많지 않겠구나,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확실히 할 수 있는 일을 하나하나 메모장에 적었다. 그러고 나자 나머지는 다른 누군가가 그리고 많은 것들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생겼다.
모든 것은 끝나게 되어있으니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확실히 준비하자,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고 개학을 하고 하나하나 일을 처리했다.
그 당시, 어떤 꿈은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에둘러 알려주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후 나에게 꿈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나의 현재 상태를 가만히 들여다보라는 신호로 다가왔다. 그러자 꿈을 꾸면 부정적 느낌이 아닌 그래, 이번엔 무슨 힌트를 주려고 그럴까,라는 궁금증이 생기기까지 했다. 신기하게도 꿈을 기록하고 나서 꿈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 건 물론 자주 꾸던 악몽 횟수가 점차 줄어들더니 악몽을 꾸지 않게 되었다.
만약, 누구든 밤에 악몽을 자주 꾸는 사람은 꿈 일기 쓰기를 권한다. 어느 순간 악몽으로부터 해방되거나 꿈에서 지금의 고민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꿈 일기를 쓸 때는 현재 내게 일어나는 중요한 일과 나의 감정의 상태를 세밀히 들여다보며 함께 기록하면 좋다. 그게 아니라면 많은 예술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창조의 이미지를 발견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꿈속에서 내가 주변인처럼 행동한다 해도 결국 꿈의 주인이 자신이듯 현실의 주인공도 그렇다. 살다 보면 내가 늘 주변인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고, 또 그런 시기를 지나는 때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나 자신에 대한 주인은 나를 대체할 사람은 없다. 우린 모두 자신만의 무대에서 자신만의 역할이 있으니까 나만이 나를 연기할 수 있다.
그러니 오늘은 이런 역할 내일은 저런 역할을 해내며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꿈 사용법>을 읽다가 잠든 날 꾼 꿈이다.
지붕이 빨갛고 벽은 회색이다. 마치 도자기로 만든 집 같았다. 그렇게 똑같은 작은 집이 여러 채 지어진 마을이다. 나는 그곳에서 집 한 채의 내부를 구경했다. 방 한 칸짜리 집인데 절반을 나눠 한 곳에 고려청자와 흡사한 도자기를 유리상자 안에 보관하고 있었다. 도자기는 내 몸보다도 1.5배 정도로 커 보였다.
이 꿈은 첫 책을 내기로 하면서 기쁘기도 했지만 내가 글을 잘 쓸지 걱정도 하던 때였다. 그즈음 나는 이 꿈을 꾸고 마음이 평온해졌다. 내가 걱정하고 고민했던 일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요'라는 편지봉투에 편지를 써 준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날마다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며 등교를 한다. 햇살처럼 밝은 미소를 선물해 주는 아이를 통해 내 일터에서 나는 다른 아이를 볼 때 그 미소를 돌려줄 수 있다. 내가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건 축복이자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