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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붉나무 Jun 28. 2024

두 번째 사춘기

수행평가

"엄마, 매운 떡볶이를 먹을까요? 매운 피자를 먹을까요? 왕창 먹어서 배탈 나게요. 그래서 내일 오전만 수업하고 조퇴하고 싶어요."

"배탈이 나길 바랄 정도로 조퇴를 하고 싶은 이유가 있는 거야?"

"네, 내일 수행이 두 개나 있는데 그중 하나는 준비가 안 됐어요. 갑자기 일정이 당겨지면서 오늘 알게 되었어요. 한 가지는 다음 주라 낼 한 가지 마치면 준비하려고 그랬거든요. 저 이번에 수행 망하면 등급이 내려가게 되거든요."

"아... 수행 준비가 안 돼 있어 걱정되는 거란 말이지?"

"당연하죠!"

"평가가 앞당겨진 건 너한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서 모두에게 똑같이 부담일텐데?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다 해 준비하면 되는 거지."

"근데 분명 내일 조퇴하는 애들이 많을 거예요. 걔네들이 수행을 잘 볼 텐데 그러면 전 당연히 등급이 떨어질 거고요."

"그걸 어떻게 미리 알아?"

"지난번 중간고사 수행 때도 그랬으니까요. 아예 아프다고 결석한 애, 걔가 수행 만점 받았어요. 수행 전 조퇴한 애 걔도요."

"그렇게 해서라도 시험 결과가 좋길 바라는 거구나"

"당연하죠! 시험은 결과로만 말해주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겠지. 네가 말하는 점수. 그러나 그렇게 해서 단시간에 원하는 점수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앞으로 이런 비슷한 상황들에 부딪히게 될 텐데... 만약 매번 그렇게 시험을 미뤄서 원하던 점수를 받으면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네 스스로에게 과연 떳떳할까... 설사 떳떳하다고 치자. 그러면 그럴 때마다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되면  불편한 상황을 피하려 하겠지. 과연 그게 옳다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올바른 해결책이 아닌 할 일을 뒤로 미루게 되는 것뿐이지."

"그게 불법은 아니니까요. 아프다면 조퇴는 당연히 할 수 있거든요. 선생님도 묵인하고요. 또, 좋은 결과를 얻어 좀 더 좋은  대학을 갈 수도 있죠. 순간의 결정이 등급을 좌우한다고요!"

"네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당장 아프다고 하는데 그 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으니 선생님은 믿어줄 수밖에 없을 테고... 하지만 그런일이 반복되면 선생님은 심증으로 네가 어떤 아이라는 걸 알 수는 있지. 한두 번은 속아줄지 몰라도 그게 반복된다면 선생님은 그런 너를 신뢰하긴 어려워질테지"

"어차피 학교는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 아니던가요? 어머니는 합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까지 왜 무조건 반대를 하려 들죠? 아들이 손해를 봐도 좋다는 말씀인가요?"

"무조건 반대는 아니고 엄마가 살아 보니 남을 잠깐 속일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을 계속 속이는 건 결국 과정과 결과 모두에 만족하지 못하게 되더구나.  결과물이 당장 좋게 나와도 결국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고, 결국 자책하게 된단다. "

"엄마는 제가 등급이 떨어져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 같네요"

"그런 말이 아니란다. 부모로서 바르게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언을 하는 거지. 하지만 결정은 네가 해. 엄마는 네 생각이 옳지 않다고 엄마의 생각과 가치관을 너에게 알려주는 것뿐이야. 그게 부모 역할이니까."


수행평가가 있기 전날, 아이를 학교에서 픽업해 데려오다가 한 대화다.

다음 날, 학교가 파하는 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학교 근처에 갔는데 아이가 자동차 문을 열어젖히자마자 조수석에 풀썩 주저앉더니 원망 섞인 어조로 말했다.

"거 봐요. 일곱 명이나 결석했어요. 그중에 지난번에 수행 만점 받은 애가 있다고요."

"그랬구나. 그래서 후회 돼?"

"아니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든 전 오늘 2개나 틀려서 등급 하나 떨어질 거예요. 그렇게 아세요."

"엄마는 네가 오늘  만족할 만한 시험을 치르지는 못했겠지만 조퇴를 하지 않은 건 잘 한 결정이라 생각한다."

"......"

아이는 눈을 감고 아무 말이 없다.


중학교 때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던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어 공부를 해보겠다며 학원을 보내달라, 독서실을 등록해 달라며 갑자기 공부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중학생 때 50점이던 과목이 90점을 받기도 하고, 20점이던 과목을 70점을 받기도 했다.

그러니 그 점수를 유지하고 싶은 욕심과 공부에 흥미가 없던 아이들도 대입이라는 현실적인 준비를 해야하니, 당연히 그런 유혹에 빠질 수 있을 테다.


다행히 아이는 그날 원하는 점수를 받지는 못했지만 더이상 내게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는데 등급이 나온 날 

등급이 1명 차이로 한 등급 떨어졌다며 다시 원망섞인 말로 신세한탄을 했다.

"엄마, 주요과목에서 2등급과 3등급 차이는 어머어마한 거예요! 엄마가 그때 조퇴만 해줬어도 제가 수행을 틀리지 않았다면 지금 2등급일 거라고요."

"글쎄다. 그건 네 추측이지 장담할 수는 없는 거지."

"전 정말 열심히 했을거라고요"

"아쉽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단다. 앞으로 이와 비슷한 일은 또 생겨날 거고... 그러니 네가 바꿀 수 없는 건 빠르게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해두는 게 좋겠다."

"......"


나는 그날 좋아하는 피자로 위로를 대신하고, 실패는 늘 배움의 기회로 온다는 걸 기억하라고 일러줬다. 뭐든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변수가 생겼을 때 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좋아하는 피자를 사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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