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보다는 '급기야', '급기야'보다는 '결국'이란 표현이 맞겠다. 결국 회장이 되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회장님'이라는 말은 내가 맡은 회장역에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니라 모두가 기피하는 회장이라 그렇다. 언젠가 나는 친한 친구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 회장 순번 돌아오면 보건교사회 탈퇴할까 봐. 정말 못할 것 같아’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막상 내가 회장 순번이 되자 그렇게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회장이 되었다고 그간 소속해 있던 조직을 탈퇴하는 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건 나의 신념에도 반하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지금까지 ‘보건교사회’에서 탈퇴하지 않은 이유는 그 단체가 대단한 조직은 아니지만 학교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던 과거에 보건교사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또 아이들이 건강에 대해 배울 권리를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해 왔기에 지금 학교에서 보건교사로서의 자리를 정립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보건교사 직무를 배에 비유했을 때 배의 크기에 비해 닻이 너무 작은 것 같다. 풍랑을 만다면 언제라도 떠밀려 가거나 난파될 것 같다.
그간 보건교사회에서 추구하고 만들어가는 것들이 회원 모두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지만 모든 업무 추진과 목적이 아이들의 건강권 보장이라는 생각은 같다. 그리하여 조직을 탈퇴하려면 적어도 지회장을 해보고 이 단체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아닌지 알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즐길 수 없으면 경험해 보자. 보건교사를 그만두기 전에 이 조직에 한 번은 봉사를 하자’라는 마음으로 회장직을 수락했다. 사실, 울며 겨자 먹기로 수락했지만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기로 한 것이다. 그러고 나자 그토록 기피하고 하기 싫던 일에서도 아주 작은 의미를 찾고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회장 역할은 대단한 일을 하는 게 아니다. 내 시간을 조금 할애해 누군가의 시간을 내가 조금 더 벌어주는 역할이라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그것만으로 봉사의 의미가 있다 하겠다.
살다보면 '뜨거운 감자'를 만날 때가 있다. 내 손에서 잘 다루어야 내것이 될 수 있는데, 당장 뜨겁다고 던져버리면 내것이 될 수 없다. 어떤 불편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부딪혀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다보면 하나하나 의외로 해결점을 찾게되고 자신감이 생긴다. 속상하고 두려운 마음, 억울함 등 그런 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된다.
내가 보건교사가 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보건교사는 여전히 학교에서 소수다. 그러다 보니 의도적 또는 비의도적으로 많은 부분에서 소외되어 왔고 차별당해 왔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학교라는 조직에도 분명 있다. 그건 다수인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보건교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수인 사람은 연대를 할 수밖에 없다. 대치하여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간과하는 것을 짚어주기 위해서이고 덜 외로우려고도 그렇다. 이런 저런 이유로 보건교사라는 자리는 뜻하지 않는 어려움에 봉착할 때가 많은데 이런 문제를 나눌 동료가 학교에는 없다. 팬데믹 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우리의 업무를 아는 이들과 고충을 나눌 동료도 필요하다. 다 함께 좀 더 공정하고 합리적인 조직이 되려면 소수의 목소리가 늘 묻히는 건 옳지 않다. 이런 일은 사회의 수많은 조직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그간 소수자에 대한 의견을 무시하고 묵살한 오랜 역사가 있지 않은가.
어떤 단체가 있으면 명목적으로 대표가 필요한 것, 이름만 있는 힘없는 조직의 대표라는 자리가 대부분 봉사직인 것처럼 보건교사회 지회장 또한 그런 자리다.
예를 들면 지역 보건소, 교육지원청 등과의 협업에 관련된 사항, 대신 출장을 가는 일, 회원이 겪는 고충을 들어 내가 조언해 줄 수 있는 경우 조언을 해준다든가 단체를 운영함에 있어 건의사항이 들어오면 임원과 회의를 거쳐 안건으로 상정해 회칙을 바꾸어 좀 더 발전적 조직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역할이다.
암튼 나는 내가 보건교사를 그만둘 때까지 안 하고 싶던 역할을 1년간 맡게 되었다.
초등학생 때 학급 회장의 경험이 내겐 굉장히 부정적인 기억으로 남았기에 나는 어딘가에서 대표를 맡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물론, 내향적 성격인 이유가 가장 크다.
초등 5학년 때 시골 학교에서 반장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의 중압감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렇다고 선생님한테 못하겠다고 말하지도 못하는 시절이었기에 선생님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꾸역꾸역 해냈다. 청소 다 했다고 선생님께 알리는 일, 아침자습 내는 일,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회의를 하느라 몇 시간째 교실을 비우면 학급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고 자습을 시키는 일, 시험지 채점을 돕는 일, 문제집을 풀리는 일, 뭐 그런 걸 했다. 말하자면 선생님을 보조하는 보조교사 역할을 한 것이다. 당시 군말 없이 시키는 일을 잘 따랐던 나는 선생님 역할이 맞지 않는 선생님이 보조로 두기에 좋았을 것이다. 초등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지각하는 건 물론, 툭하면 우리들에게 자습을 시키고 본인은 운동장 구석에서 기사님과 학교 앞 막걸릿집에서 술을 받아와 술을 마시기도 했다. 오일장이 서던 날엔 어린 아들을 학교로 데려왔고 우리 반 여자아이들이 보모가 되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은 선생님이란 직업을 하기 싫어 억지로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지금 같으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 80년대 시골에선 버젓이 자행되었던 것이다. 암튼 나는 그때 1년을 내가 학생인지 선생님 보조인지 모르면서 힘든 학교 생활을 했다. 5학영 담임선생님은 학창생활을 통틀어 기억나는 선생님이 몇 분 있는데 그중 한 명이다. 신기하게 좋은 선생님 못지않게 싫었던 선생님이 잊히지 않는 건 모두에게 비슷한 것 같다.
나는 당시에도 앞에서 말하는 걸 어려워했지만 선생님이 하라고 했으니 참고했다. 교탁 앞에서 아이들이 푼 문제집 정답을 알려주다가 틀린 적이 있었는데(틀릴 수도 있는데), 선생님은 그때마다 반장이 그것도 틀렸느냐고 면박을 주곤 했다.
그로 인해 앞에 나가서 뭔가 대표라는 직으로 말을 하는 것 그런 건 정말 어려운 것이고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모른다. 학창 시절 말에 대한 긍정적 피드백의 경험이 거의 없었던 나는 그런 생각을 더욱 공고하게 갖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의외로 주위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꽤 있다는 걸 알았다. 그걸 알고 나니 그들도 나처럼 비슷한 고민과 걱정에서 회장역을 피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내가 다수 앞에서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실수를 할까 봐, 다른 사람으로부터 제대로 못한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즉 잘하려는 욕심이 크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나서 까짓것 대단한 자리도 아니고 내가 원해서 하는 역할도 아닌데 내가 실수를 한들 남들이 뭐라 하겠어하는 생각으로 정리를 하자 '회장'역할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됐다. 내가 못하는 영역은 임원에게 물어보면 되는 것이다. 내가 실수하는 건 모두가 기피하는 역할을 대신해주는 거니까 문제가 될 게 없다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는 회장을 처음 한다.
누군가가 하기 싫은 역할을 하지만 누군가는 해줘야 하는 역할을 꾸역꾸역 해내는 자, 나는 그것도 봉사의 영역이라 생각하기에 그런 나 자신을 미덥게 생각하기로 했다.
얼마 전, 고등학생이 된 아이가 부회장 선거에서 아쉽게 떨어졌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학급에 남자보다 여자가 5배나 많아 남자인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것이다. 친분이 없는 3월 초라 여자 애들은 분명 여자에게 표를 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자신의 공약이 훨씬 좋았음에도 탈락한 건 분명 남녀 성비가 좌우한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공약이란 상대적일 수 있는 것이기에 그것만 가지고 결과를 말할 수 없고, 공약과는 별개로 사람에 대한 호감도도 좌우하기에 이유를 정확히 파악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나마 서로 모르는 사이에서는 오히려 아이 말대로 같은 성으로 표가 기우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래서, 억울하고 아쉬워하는 아이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살면서 그런 비슷한 일은 종종 일어난단다. 소수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승패에서 불리한 경우가 있지. 그래서, 어떤 집단에서 소수인 경우는 그 자체로 이미 차별을 받는다는 전제하에 그들을 좀 더 세심히 배려해야 하지. 사람은 다수의 집단에 속할 때와 그 집단에서 한 명일 때 세심한 배려가 없으면 소수의 의견은 자주 무시되곤 한단다. 엄마가 지역에서 회장을 맡게 됐단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엄마는 걱정이 컸단다. 얼마 전에 총회가 있었는데 며칠 전부터 실수하면 어쩌지, 할 말을 다 잊어버리면 어쩌지, 목소리가 안 나오면 어쩌지... 그런 걱정이 들었단다. 그래서 포스트잇에 순서대로 할 말을 간단히 적었단다. 그리고 그걸 몇 번이나 큰 목소리로 말해보았어. 그랬더니 당일에 적어도 떨지 않고 그 말을 할 수 있더구나. 물론 횡설수설도 했지만 말이야. 어떤 그룹에서 대표를 맡는 건 지금이 아니어도 언제든 기회가 온단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이야. 이번에 대표를 못했지만 선거 공략을 발표하며 분명 과정에서 배운 게 있을 거야. 그거면 네가 얻은 게 있는 거야. 좌절감을 맛보는 것, 즉 실패도 배움의 과정이란다. 엄마처럼 하기 싫은 역할을 해야 하는 것도 배움의 기회로 삼으면 되는 거고. 하고 싶은 역할을 못한 것도 하기 싫은 것을 하는 것도 결국 배움의 과정이지. 둘 다 불편한 감정을 이겨내야 하는 과정인 거지. 삶에서 불편한 상황을 회피하려고만 하고, 귀찮아서 무언가에 도전하지 않으면, 더 큰 시련이 왔을 때도 회피하려고만 하거든. 그래서, 때론 하기 싫은 걸 겪어내며 지나가야 할 때가 있단다. 그 어색하고 낯선 역할을 해내고 나면 분명 스스로가 달라져있음을, 그리고 단단해졌음을 스스로 느낄 수 있단다. 그런 것들이 삶의 거름이 되곤 한단다. "